가수 이승철은 자신의 기자회견장에서 “음반 제작비 절감 때문에 기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조용필 형처럼 완벽한 음반을 만드는 선배들의 활동이 필요하다”며 음반제작 현실을 안타까와 했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음반시장은 4000억대에서 1000억대로 떨어져, 연간 10만장 이상 팔리는 앨범을 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하는 상황이다. 모바일 시장이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음악을 휴대폰 벨소리로 전락시켜, 졸속 제작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2006년 한국의 음악계에서, 좋은 음악을 제작하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음반사도 없고, 음악 하나만 잘하면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가수도 없다는 점이다. 음악으로 지명도를 높여, 드라마, 영화, CF로 빠져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보편적인 음악사업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겨울연가>의 대성공으로 일약 한류의 주역으로 떠오른 드라마 분야도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한류스타들의 몸값이 급상승하며 연예기획사들의 영향력이 기형적으로 커졌다. 그나마 <주몽>, <대조영>, 등의 역사극이 주목받고 있을 뿐, 정통멜로나 홈드라마는 국내외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예기획사들이 대형스타를 무분별하게 스카웃하면서, 정당한 계약대행 수익 대신, 드라마와 영화 제작분야에 직접 뛰어들며, 시장을 교란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흥행보다는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제작된 윤석호 감독의 <가을동화>나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는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영화계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60%대이고, 미국영화는 36%대를 기록하고 있다. 둘이 합쳐 무려 96%이다. 이미 한국 극장가에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영화를 보기란 사실 상 불가능하다. 또 다른 아시아의 영화 강국 일본과 홍콩의 경우만 해도 서로의 영화 및, 인도, 브라질 등 다양한 국가의 영화가 개봉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세계의 영화가 개봉되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향후 한국 영화의 세계진출에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실례로 일본은 영화와 드라마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수입했고, 그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나나> 등이 전 아시아 지역에서 히트하는 등, 일본 영화 시장은 점차 살아나고 있다.
일본의 역사학자 와다 하루끼는 일찌감치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심이 되어 아시아 문화공동체가 형성될 것을 예견했다. 그 근거로 그는 한번도 외국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의 역사성, 광범위한 한민족 세계 네트워크, 민주화운동으로 축적된 문화 창달 원동력 등을 들었다. 이는 한류라는 우리조차 인지하지 못한 문화수출 흐름으로 증명되었다. 와다하루끼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대중문화의 힘은 역사의 흐름이자 필연이지, 몇몇 스타들의 재능이나, 투자회사들의 경영적 마인드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오히려 허울만 좋을 뿐 한국의 대중문화는 뼈속 깊숙이 병들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시급히 대안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인터넷포털 업체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음악 등의 저작권 침해를 막아야 한다. 포털에서 검색 한 번만 하면 모든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는데, 돈주고 음악을 사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유통업체들이 제작자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문화가 발전된 예는 없었다.
둘째, 스타의 권력을 이용해, 문어발식으로 회사를 인수합병하여, 직접 영화 및 드라마 제작에 나서는 연예기획사들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미국이 전 세계 대중문화를 지배하게 된 계기는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스타의 계약 대행사를 운영할 수 있고, 겸업을 철저히 금지시킨 공인에이전시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이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셋째, 음악,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한국은 세계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너무 인색하다. 시장의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다면, 정부 차원에서라도 아시아 대중문화 채널을 개설하여,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필리핀과 태국의 음악 등이 국내에 보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없다.
* 이 글은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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