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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열아홉 순정'을 짓밟다

'핵폭탄 장난'에 남한의 드라마까지 결방

*사진설명 :국민원로 논객 공희준 ⓒ빅뉴스
 “이런 개~뽀글이!” 두 시간 전부터 방송이 시작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려온 드라마였다. 특별방송으로 말미암아 결방된다는 안내자막에 내 인내심은 드디어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놈의 인간말종 뽀글이가 하다하다 안되니까 ‘열아홉 순정’에마저 남조선해방의 마수를 뻗치는구나.

 추석연휴에 들어가기 직전부터 낌새가 수상했다. 9시 뉴스 도입부에 김정일 관련소식이 고정꼭지로 편성되었다. 그랬다. 명절이면 찾아오는 단골손님은 비단 성룡과 이연걸만이 아니었다. 김정일 역시 고정게스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물론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다. 작년 추석과 금년 추석의 경우, 뉴스내용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와, 꼬여만 가는 북핵사태.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김정일이 무슨 수작을 부리건 관심이 없다. 친애하고 경애하는 뽀글이 국방위원장님께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는 먹고살기 바쁜 탓에 신경을 기울일 틈이 없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욱 적당하겠다. 세계가 만류해도 들은 체 만 체하는 성격이 김정일이다. 한반도 남녘의 이름 없는 백성들의 민심과 여론이 귓구멍에 접수될 턱이 있겠는가. 다만 김정일 동무에게 바라는 게 한 가지 있다면 제발 우리네 남한서민들의 소소한 행복에 어깃장은 놓지 말아달라는 부탁뿐이다.

 이 소박한 소망조차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지없이 무참하게 짓밟았다. 조선노동당 창건일 좋아하고 자빠졌네. 네가 세종대왕이냐? 10월 9일 한글날에 발맞춰 핵폭탄 창제하게. 우리 안 불쌍하걸랑요. 지도자 선생님께서 굳이 어여삐 여기실 필요 없걸랑요.

 김정일 정권이 함경도 모처에서 핵실험인지 뭔지를 실시한 모양이다. 북한 위정자들이 워낙 허풍이 심한지라 진짜로 핵폭탄을 폭발시켰는지, 아니면 동굴에 낡은 폭탄과 포탄들 잔뜩 쌓아놓고 터뜨린 건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단다. 허나 중요한 건 핵실험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북한의 김씨 조선 왕족들이 남한민중을 어떻게 취급하는지가 이번 사건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이다. 즉 김정일을 위시한 북한의 지배계급은 대한민국 서민대중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읽었던 북한정세를 분석하는 신문칼럼 가운데 가장 공감한 논조는 이거다. 북한체제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경청할 만한 의견이라 하겠다. 우리가 평소 수구꼴통이라 손가락질하는 남한의 기득권세력은 북한의 현존하는 통치집단과 비교하면 대단히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다. 강남부자들이 비록 부동산투기를 수단으로 온갖 농간을 부린다지만, 자기들이 향유하는 부와 권력을 사수하고자 핵무기를 가지고 수천만 동포를 협박할 엄두는 감히 내지 못한다.

 김정일은 정말 큰 실수를 저지른 거다. 그는 그동안 북한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한국민중들의 염장을 들쑤셔 적으로 돌리는 치명적 오판을 범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이란 존재에 대해, 김정일 정권이란 정치적 실체에 관해 기존에 품어왔던 인식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받고 있다. 조선일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 네오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김정일 본인에 의해서. 변화의 방향은 북한 집권층이 의도했던 쪽과는 분명 정반대로 흐를 전망이다. 김정일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부시와 동급으로 완전히 낙인찍혔다.

 우리는 부시가 한반도를 무대로 삼아 꾸미는 치졸한 음모에 동의는 못해도 이해는 한다. 왜냐? 어차피 부시는 우리와는 남남이다. 부시는 단지 외국을 상대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따름이다. 역지사지해보자.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가 전쟁을 한다고, 우리가 중간에서 갈등을 부추기며 이익을 챙길 기회가 생겼다고. 그럼 당장 나부터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 다음, LA와 뉴욕의 분쟁을 조장하겠다.

 김정일은 겨레를 인질로 잡고 정권의 수명연장을 꾀하는 중이다. 지구촌에 김정일 정권만큼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정권이 있던가. 그런 김정일 정권이 이민족인 미국에게는 이득을 안기고, 동포인 한국인에게는 끊임없이 짜증을 유발한다. 미국에게는 악의 축을 빙자한 이윤의 축인 북한이 남한한테는 에누리 없이 순수한 ‘짜증의 축’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우리는 무지하게 약이 오른다. 김정일로 인해 즐겨보는 드라마가 결방이 되었다. 구혜선의 상큼한 미소를 감상해야 할 때에 피둥피둥 살이 오른 김정일의 역겨운 상판때기를 억지로 구경해야 하다니!

 평범한 국민들은 김정일이 어떤 불장난을 하든 의연하게 평상심을 유지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PD든 기자든 아나운서든 잘나고 똑똑한 인간들이 즐비하다는 한국방송 KBS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북한 핵실험을 핑계로 TV전파를 허겁지겁 사재기한다. 안보장사는 한나라당과 조중동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노무현 정권에 충고하는 바이다. 그나마 덜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국민들에게 일상의 삶을 돌려줘야 옳다. 남조선인민들이 불안에 떨며 우왕좌왕하고, 겁에 질려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야말로 김정일이 노리는 궁극적 목표다. 그래야 판돈이 커지는 까닭에서다.

 김정일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남한드라마 챙겨보는 것이란다. 저도 눈깔이 달렸을 터이니 양국화 구혜선 예쁜 거야 잘 알겠지. 지도자 선생님 역시 여느 대한민국 시청자들 같이 월요일 저녁 8시 25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으리라. 국화와 윤후의 입맞춤 전야였으므로.

 시청률 30프로의 인기드라마를 결방하면서까지 영양가 전무한 자타칭 북한 전문가들의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들려준 결과로 우리가 얻은 소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로지 스트레스였으리라. 북한 핵실험으로 놀라고 실망한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의 선물은 선호하는 드라마 제시간에 시청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핵실험을 구실로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침해해서는 곤란하다. 참여정부 수뇌부와 KBS 고위층은 괜히 쓸데없이 경거망동하지 말기 바란다.

 한국정부의 딱하고 무기력한 처지를 생각하니 무척 씁쓸하다.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일 도당을 제재하는 최대의 강위력한 자위적 응징조치가 뽀글이 또한 필시 열렬한 시청자일 애꿎은 연속극 결방시키는 결정이라니. ‘열아홉 순정’이 일방적으로 쉼으로써 몸에 경련이 일은 사람은 남한땅에 훨씬 많았겠지만. 다행히 ‘주몽’은 MBC에서 예정대로 방영되었다. 국민의 안보의식은 ‘소문난 칠공주’에서 설칠이가 비상대기하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제고된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국민들을 정부당국이 앞장서 호들갑 떨면서 흔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제 김정일도 자신이 치러야 할 응분의 대가를 깨달았을 테지. 핵으로 장난치면 뽀글이 장군님께서 환장하시는 남한드라마들이 족족 결방된다는 쓰라린 현실을. 그러니 장군님, 우리 드라마 좀 안심하고 제때제때 봅시다래. 지도자 선생님 때문에 서지석과 구혜선 키스씬 수요일로 미뤄졌잖아요. 저 빌어먹을 김정일 부자세습 독재정권은 아무튼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부모 잘 만난 덕으로 출세한 종자들 하는 짓거리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그렇지 뭐. 뽀글아, 옛다 관심!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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