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갑작스런 회동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온갖 소문과 억측이 장강을 이룬 마당이므로 나 역시 소설 하나를 추가해볼까 한다. 전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만나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소가 웃을 노릇이다. 더구나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의 재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염화미소로 공유하는 처지다. 모종의 무언의 메지시가 오갔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자 분석이다.
정치든 장사든 ‘Give and Take’가 전제되어야만 성립이 가능하다. DJ와 대통령 사이에 암묵적인 양해가 있었던 듯싶다.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는 대신, DJ는 정계개편과정에서 영남친노세력의 지분과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걸로 거래가 낙착되었을 개연성이 짙다. 열린우리당의 해체가 도로민주당, 혹은 도로호남당의 부활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는 노대통령의 문제의식을 김전대통령이 동의 내지 수긍했다는 뜻이다.
도로열린당이건 도로민주당이건 비전이 없기는 피차일반이다. 정권재창출은 고사하고 차기 총선에서의 생존여부마저 불투명하다. 기껏해야 특정지역에서의 압승을 바탕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게다. 국민이 도로열린당과 도로민주당에 냉소적 반응을 표출하는 원인은 간단명료하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얄팍한 정치공학 이상의 의미와 내용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호남의 전통적 지지기반 복원? 영남진출의 교두보 구축? 요 낡은 레퍼토리로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을 선도할 역량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화두인 정치는 한 물간 레퍼토리다. 설령 운 좋게 정권을 쥔다고 해도 결국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념적 차이가 없다는 통치권자의 ‘양심선언’이나 이끌어낼 게다.
그렇다. 정책과 노선의 차별성이 선거지형을 규율하는 근본모순으로 기능해야 한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사는 영남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실제 거주지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인 호남출신의 열린당(민주당) 정치인의 나와바리 다툼이 한국정치의 지배적 균열구조로 계속 자리한다면 대한민국은 정말로 미래가 없다. 입으로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할 뿐, 정체성은 일개 강남부자에 불과한 인물들에게 정치권력을 위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린당의 창당정신은 탈지역주의와 정책대결에 있었다. 이러한 약속을 청와대와 집권여당 수뇌부는 완전히 파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지방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작업에 올인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강남부자들 시늉에 여념이 없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열린우리당 386 국회의원들을 하루만 따라다니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해보시기 바란다. 연봉 1억을 받는 테헤란로의 펀드매니저와 판박이다.
노무현 정권이 강북주민을 대접하는 태도는 이승만 정권과 쌍둥이였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을 비롯한 정권의 고위인사들은 강북시민들에게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거짓말을 하고서는, 정작 본인들은 죄다 한강 이남으로 도주했다. 유일한 탈출구인 한강 인도교마저 끊고서.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서민들한테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되레 자기네는 자식들을 조기유학 보내거나, 전국 각지의 알짜배기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들에게 강북은 오로지 표 찍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참여정부에 들어와 가장 푸대접받은 동네가 어디일까? 당연히 강북이다. 재차 강조하겠다. 강북은 서울의 강북지역만을 일컫지 않는다. 강남을 뺀 대한민국 전체가 강북이다. 한국의 서민대중은 원조 강남당인 한나라당과, 짝퉁 강남정당인 열린우리당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고 농락당했다. 민주노동당? 무능한 아들녀석에서 부와 권력을 대물림해준 김일성 생가나 방문하는 한심한 족속들 모인 단체가 얼어죽을 놈의 진보정당이냐? 위선에 찌든 웰빙좌파지.
이제 정계개편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히 밝혀졌으리라 믿는다. 소수 강남부자들의 금전적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에 대항할 진짜 강북정당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올바르다. 제대로 된 강북정당 없이는 진정한 정책경쟁의 구도는 마련되지 않는다. 서민들이 피땀 흘려 일하여 이룩한 노동의 대가가 강남부자들의 지갑만 두둑이 채워주는 야바위 시스템을 혁파하지 않으면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도, 동북아중심국가 건설도, 신성장동력산업 육성도, 창의적 지식기반경제 창달도 한낱 공염불이나 구두선에 그칠 것이다.
무강북 무국가! 강북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강남집값은 1년에 수억 원씩 올라가는 판에 강북에 뉴타운 몇 개 지정하고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니, 서민들 입장에서 분통이 터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뉴타운사업으로 신축된 고가의 중대형 아파트는 강남부자들 소유의 재테크도구로 귀착되기 일쑤다. 강북 산동네마다, 시골 들판마다 강남복부인들이 탄 고급 외제승용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러고서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떼버리고 하는 방식의 정계개편은 본질을 호도할 따름이다. 강남부자들의 싹쓸이를 막을 의지와 능력만 있는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신당창당과 정계개편이 필수적이다. 강남의 막강한 재력과 인맥에 맞서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할 데라고는 오직 머릿수뿐임을 명심하자.
강남이 두려워하는 사태는 강북의 대통합과 일치단결이다. 지금처럼 우리끼리 서로 사분오열되고 있는 광경을 강남부자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서초구와 강남구는 일심동체가 되어 강남정당 한나라당의 단합을 촉구하는데, 도봉구 노빠와 구로구 난닝구가 단지 서로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과 열린당의 골육상쟁을 부추겨서야 쓰겠는가? 강남부자들이 폭등시킨 부동산가격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신음하기는 난닝구와 노빠가 동일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학생들의 평균적 장래희망이 무엇인줄 아는가? 빌딩주인이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빌딩 한 채를 장만해 임대료나 챙기면서 평생 놀고 먹는 게 우리 청소년들이 꿈꾸는 내일의 자화상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 할 미국과 영국의 청소년들조차 장래의 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빌딩임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응답을 써내지는 않는다. 빌딩주인은 아무나 하나?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은 극소수 임대사업자만 행복한 나라, 나머지 국민들은 편의점에서 저임금의 비정규직 알바로 바코드 긁으며 살아가는 나라, 이게 강남공화국의 궁극적 모습이다. 강북이 죽어버린 조국의 암울한 잿빛 미래다.
산업화를 일군 주역도, 민주화를 쟁취한 주인공도 강북의 서민들이다. 한데 나라의 성장과 발전에 하등 기여한 바가 없는, 무임승차가 전공인 한줌 강남부자들이 산업화의 과실을 독차지하고, 민주화의 단물을 모조리 빨아먹는다. 이것이 과연 살맛 나는 세상인가. 일하는 인간 따로, 즐기는 인간 따로인 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겠는가? 현재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정체와 답보상태는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의 성과물은 강남에 빼앗기고, 자존심과 긍지마저 사라진 강북이 자포자기에 빠진 결과다. 강북의 것을 강북인에게 돌려줄 때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강북이다. 강북이 없으면 정권은 물론이거니와 나라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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