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와 체임벌린
노무현 대통령이 수시로 꺼내드는 협박술책은 임기단축카드다. 내가 지금 이 상태에서 하야하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장악할 테니까 너희들 모두 꼼짝 말라는 소리다. 대통령이야 이미 합리적 사고력을 상실하고 민심과의 소통을 포기한 양반이므로 새삼스럽게 성토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청와대의 으름장에 설설 기는 새가슴들이다. 노무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대권의 야망을 접은 고건 전국무총리와, 아직도 판세를 읽지 못한 채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전형적 사례다. 고건과 김근태는 노짱의 근육 키우기를 위해 준비된 정치적 닭가슴살인 셈이다.
고건의 경우는 이해할 측면이 크다. 본디 관료는 배짱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고건이 담대한 성격이었다고 가정해 보라.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공직사회에 사표를 던졌으리라. 정말 미스터리는 GT다. 그가 노무현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를 누가 좀 설명해주시기 바란다. 혹시 모종의 금전적 채무관계라도 있는 걸까? 김의장이 체통에 어긋나는 짓, 예컨대 코딱지를 후비는 광경을 지나가던 노대통령이 우연히 목격한 때문일까? 천하의 근태형이 고작 노무현의 밥이라니! 참 나쁜 먹이사슬이다.
이쯤해서 다시금 나의 판단착오를 반성해야겠다. 노사모 대표를 역임한 영화배우 명계남씨가 열린당 당권에 도전했을 때 나는 이렇게 점쳤다. “노무현 대통령에 명계남 당의장으로 짜여진 정부여당진용, 말아먹기 딱 좋은 구조다!” 명계남씨가 주변의 만류로 말미암아 출마의 뜻을 꺾은 까닭에 진위를 검증하기 곤란한 예언이었다. 한데 열린우리당이 멸망하는 시나리오가 결국은 이루어졌다.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명계남이 반납한 주연역할을 김근태가 대신한 것이다.
김근태의 치명적 실수는 정동영과 격돌한 전당대회에서 유시민과 전략적으로 제휴한 데 있다. 단기적 목표에 눈이 멀어 악마와의 거래를 감행한 형국이다. 영남친노를 향한 김근태의 유화정책은 집권여당의 관뚜껑에 못을 박았다. 히틀러한테 유화정책을 펴다가 유럽을 전쟁의 불바다로 몰아넣은 대영제국의 체임벌린 수상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김근태나 체임벌린이나 개인의 층위에서는 매우 괜찮은 정치인이었다. 깨끗한 매너를 갖춘 신사들인 데다가 청렴하고 또한 정직했다.
허나 양자 전부 시대의 거대한 흐름(Megatrends)을 포착하는 역량은 지극히 수준미달이었다. 체임벌린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안목과 담력이 부족했다. 김근태는 정계개편을 주도할 혜안과 결단력이 모자랐다. 이들의 계속되는 헛발질은 나치독일의 팽창으로, 혹은 영남친노의 발호로 귀결되었다. 정치지도자들의 소심함과 단견이 지구적 규모에서는 세계대전을 불렀고, 일국적 차원에서는 사이비 짝퉁 개혁세력의 득세를 야기했다.
그럼에도 나는 김근태만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선량했으되 다만 능력이 없었을 따름이니까. 더구나 김근태는 체임벌린과는 달리 국가운영의 조타수까지는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진실로 여론의 심판과 역사의 단죄를 받아 마땅할 대상은 김근태를 철저히 이용한 다음 토사구팽한 영남친노다.
걸핏하면 벌어지는 노대통령의 사임소동을 면밀히 해부해보자. 대통령이 실제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면 가장 손해 볼 권력집단이 어디일까? 정답은 명백하다. 영남친노그룹이다. 영남친노에 관한 정동영의 안일한 인식과 대응자세를 여기서 잠시 질타할 필요가 있겠다. 영남친노가 개혁모험주의자라고? 이는 개혁론자는 물론이려니와 수많은 모험가들에 대한 전폭적 모독이다. 대통령 빨아주는 글 인터넷에 몇 차례 올린 이력과, 동일한 경상도 출신이라는 인연 핑계로, 거액의 월급과 판공비를 챙겨주는 공기업과 정부산하단체에 낙하산 타고 취직하는 행태가 개혁이고 모험인가? 영남친노가 개혁모험주의자면 패리스 힐튼이 내 마누라다.
참 비열한 영남친노
대통령은 여간해서는 중도하차하지 못한다. 이념과 노선의 차별성에 기인해서가 아닌, 실력이 달려서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못한 영남친노들이 노무현 정권 아래서가 아니라면 언제 연봉 1억 짜리 직장에 다녀보겠나? 영남친노는 강남아줌마들 뺨치는 한국사회 최대의 특권세력이자 기득권계급이다. YS의 민주산악회 및 DJ의 민주연합청년회, 심지어 군사독재정권시절의 하나회 회원들조차 영남친노들처럼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밥그릇사수에 올인하지는 않았다. 단지 김근태와 정동영 같이 여전히 쌍팔년도 추억에 젖어있는 어리석은 정치인들만이 영남친노를 개혁의 동반자라 믿을 뿐이다.
고향사람 고위관리 만드는 게 노무현식 개혁이다. 청와대에 아부하는 칼럼으로 출세하는 것이 노무현표 모험이다. 요런 얄팍한 처세술이 개혁이고 모험이면, 불쌍한 돼지새끼 밧줄로 꽁꽁 묶어 번지점프시키는 방송국 제작자들은 혁명의 전사들이렷다.
떡 하나 더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영남친노에게 마침내 간과 쓸개까지 떼어준 김근태, 스스로가 워낙 보수우익 성향인지라 떡고물과 기득권의 화신 영남친노를 개혁모험주의자로 착시하는 정동영, 굳이 명계남이 아니었어도 열린우리당을 말아먹을 인재(?)들은 차고도 넘쳤다. 천정배와 임종인 등 민생개혁세력으로부터 버림받은 열린우리당의 미래는 어떻게 낙착될까? 전망하기가 별로 어렵지는 않다. 경로당, 아니 경노당이 될 게다. 경상도 노빠당.
노무현 정권과 결별하라는 최장집 교수의 주장은 대단히 타당하고 날카로운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지점은 노정권과 영남친노의 수구보수성이 아니다. 그들의 비열함과 교활함이다. 정동영이 노인폄하발언으로 궁지에 몰렸을 당시, 그의 당의장 사퇴를 제일 집요하고 강력하게 압박한 무리는 의외로 한나라당이 아니었다. 영남친노들이었다. 자기들 입맛에 맞으면 등에 업고 뛰겠다고 아양을 떨다가, 상대방의 효용가치가 사라지자마자 뒤통수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게 영남친노의 특징이며 본질이다. 당해보면 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과 대다수 지지자들이 빠져나간 열린우리당, 또는 경노당에는 엄청난 양의 젖과 꿀이 풍부히 흘러 넘칠 게다. 국민들의 혈세로 조성된 수백 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그들끼리 ‘뿜빠이’하면서 영남친노의 밥상은 진수성찬으로 가득하리라. 철밥통에 담긴 산해진미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영남친노들은 입으로만은 태연하게 개혁을 노래할 터. 개혁아, 너 참말로 욕본다. 동토 영남, 불모의 땅 경상도에서 힘들게 민주화투쟁과 사회변혁운동에 헌신했던 훌륭한 인물들마저 저질 영남친노와 도매금으로 함께 엮여 한통속으로 분류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노무현과 그 일행은 개혁 팔아 출세한 신흥귀족으로 민생을 어렵게 만든 주범이라는 비판이 압도적으로 많다.” 강준만 교수가 정확히 간파했듯이 영남친노는 사상은 좌파, 생활은 우파인 위선적 지역주의자들의 집합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조선일보야말로 영남친노의 모태이자 원형질일 개연성이 짙다. 체제의 근간과 기존질서에 사실상 위협이 되지 않는 고상한 문화예술 컨텐츠를 거론할 적엔 한껏 진보적인 체하다가, 백성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주택·교육·의료·복지 등의 현안들이 전면에 부각되면 이내 낯빛을 바꾸고 미제 천민자본주의 시스템을 옹호하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충청과 호남 유권자들을 배신하고, 진보개혁진영이 통째로 무능한 놈들로 낙인찍히게끔 이끌고, 영남의 진짜 민주화세력마저 탐욕스런 국물족으로 평가절하시킨 영남친노. 개혁을 죽이고, 진보를 죽이고, 서민대중을 죽이고, 시민사회의 꿈과 희망을 죽이고, 정동영과 김근태를 죽인 영남친노가 이제는 국민보다는 법이 가깝다며 열린우리당을 장사지내려 한다. 험상궂은 표정의 사악한 영남친노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저분한 양아치소굴에서 진보색채의 현역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탈출한 임종인 의원에게 축하의 인사와 아울러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바이다. 임제독님, 오늘 대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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