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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자가 넘을 수 없는 벽, 포털

하루종일 포털 뉴스면만 쳐다봐야 하는 운명

영화기자 A의 하루

영화기자 A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급히 컴퓨터를 켰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른 기자들보다 늦게 기사를 올린다는 조바심은 메일을 로그인하는 키보드 손놀림을 더욱 빠르게 했다. 각 영화 홍보사에서 보낸 보도자료들이 넘치는 모니터를 보며, A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기사 양을 어느 정도 채워야 오후에 조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A 는 날렵한 솜씨로 빠르게 보도 자료를 드래그 해서 메모장을 거친 뒤, 기사를 업데이트 했다. 유난히 아침에 부산을 떨긴 했지만,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A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곧바로 편집국장의 호출이 떨어졌다. 아뿔싸, 그제서야 A는 기사를 급히 올리는 데만 신경 쓴 나머지, 다른 매체의 기사를 살펴보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수십 군데 언론사, 수백 명에게 보도자료가 뿌려지는 까닭에 먼저 기사를 올리는 기자가 1등이고, 나머지 기사는 전부 중복이기 때문이다. 편집국장에게 혼쭐이 난 A는 30분만 일찍 일어났어도, 보도자료를 먼저 기사화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점심시간 때까지 4건의 기사 밖에 쓰지 못한 A는 동료들이 식사하러 나간 후에도, 사무실에 남아야 했다. 하루에 몇 건 기사 업데이트를 하라는 구체적인 방침이나 강요는 없었지만, 다른 기자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선 적어도 10건 정도의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 A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A, 깊이 있는 영화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그는, 이제 기사 양을 채우려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닌 방송, 음악 보도자료를 드래그 하느라 헐떡이고 있었다. 시사회, 제작 보고회 정도를 제외하곤 특별히 취재를 나갈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현장에 나가 아는 기자들과 비애 어린 담소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A. 오늘은 아침에 늦게 일어난 바람에 그러지도 못한 채, 기사 양을 겨우겨우 채웠다.

비록 보도자료를 드래그 해 기사를 올리더라도, 자신의 의견도 달고, 영화 홍보사에 전화를 걸어 크로스 체킹도 했던 어제, 그제가 생각나 기분이 씁쓸했지만 A는 다른 기자들도 다 그럴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으로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고 싶지만, 편집국장은 저녁 8시와 10시에 쇼케이스가 있다며 이번엔 꼭 빨리 기사를 올리라는 서글픈 특명을 내릴 뿐이었다.

인터넷 연예기자가 넘을 수 없는 벽

다소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위 에피소드는 인터넷 연예매체에서 오늘,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다. 종이신문, 잡지, 무가지에 이르기까지 유료 독자가 떨어져나가고, 각기 다른 저마다의 애환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특히 포털 사이트에 연예 뉴스를 공급하는 인터넷 연예매체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 달에 몇 건의 기사를 공급하는 계약에 따라, 하루 기사 최소량이 결정되고, 이에 대부분은 연예 기획사, 홍보사의 보도자료를 드래그 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물론 취재를 아주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기사 업데이트 스트레스 속에서도 취재를 나가긴 하지만, '진짜' 취재는 이뤄지지 않는다. 거의 매일 열리고 있는 드라마 제작 발표회, 영화 시사회, 음반 쇼케이스 현장 그 어디에서도 언론의 고유 기능인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는 기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로 보도자료 긁듯이 주최 측의 말을 그대로 말하는 앵무새 노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마저도 빠른 타자 실력이 없다면 앵무새 무리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일반 스트레이트 기사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긴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인터넷 연예기자들은 심도 있는 기획 기사도, 탐사 보도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인터뷰, 자료 조사를 하는 것도 경력이 조금 쌓인 선배들의 몫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이 한 몸 바쳐보겠다는 부푼 꿈을 가진 신입 기자들이 넘기엔, 작금의 부조리한 벽은 너무도 높다. 연예기자가 타 분야에 비해 끊임없이 비하 당하기 일쑤인 것은 어쩌면 이런 벽 앞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열망한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박봉에 시달리는 경제난은 서로 맞물려 중도포기를 불러오고, 유난히 인터넷 연예 섹션에 있어 기자 교체가 잦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어있던 기자가 다른 일자리를 수소문해야 하고, 그 자리엔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기자란 직업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새내기가 들어온다. 저마다 각기 다른 글재주와 노력으로 기자란 직업을 얻었건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처사로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셈이다.

오늘도 인터넷 연예기자들은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 배치', '가장 많이 본 뉴스' 성적표를 실시간으로 받아들고,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은 언제 정말 ’기사’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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