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탄핵은 민주당의 원한으로 시작
노무현 대통령은 일전에 “부동산 말고는 꿇리는 게 없다”는 발언을 하여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노대통령은 물론 그의 참모들의 발언을 보면, 정말로 잘못한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잘했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에 한미FTA 역시 이러한 노대통령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 자평하는 것은 물론이다. 순간적으로 지지율도 10% 이상 올랐다. 대성공이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민주당 분당 때도 그랬다. 노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당개혁을 명분으로 희대의 대통령 여당 탈당 사태를 만들었다. 그때 역시도 “좋은 일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여, 민주당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노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바로 이러한 민주당의 원한으로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로 선출된 권력은 선거 전의 공약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반대 측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즉 자신의 지지층에 약속한 공약을 반대 측과의 적절한 타협과 협상을 통해 국가 정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선출된 권력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보면 노대통령의 통치방식은 전형적인 반선거주의이자 반민주적이다.
노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3당합당에 참여한 이인제 후보를 비난하며, “저는 민주당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당심을 얻었다. 그리고 그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집권에 성공했다. 국민들은 개인 노무현에게 표를 준 것이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에게 표를 준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당을 깨는 일을 해선 안 된다. 현재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법한, 민주당 대선 빚 44억의 부채는 과연 노무현이 갚아야 하나, 민주당이 감당해야 하는가. 노대통령 스스로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진보좌파의 노대통령 맹공격은 배신감 탓
민주당이 노대통령을 탄핵한 뒤, 진보좌파적 시민단체는 노대통령을 엄호했다. 노대통령 탄핵은 민주당이 보수세력인 한나라당과 공조해서 벌인 의회쿠테타라는 논리였다. 이들은 언론과 시민단체의 영역을 벗어나면서까지,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렇게 해서 노대통령은 위헌적 선거개입이 인정되었음에도, 여론의 힘으로 다시 대통령직에 복직했다. 이때부터 노대통령은 진보좌파적 시민단체와 언론의 힘으로 움직이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한미FTA 협정 타결 이후, 범진보진영은 연일 노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그 공격의 수위는 기존의 피상적인 비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는 노대통령 탄핵까지 주장하고 나왔다. 탄핵반대 운동을 참여연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노대통령의 경제참모로서 한미FTA 체결 반대를 위해 노대통령과 결별한 정태인씨의 경우는 더 드라마틱하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KBS 정연주 사장과 MBC 최문순 사장을 직접 비판하며, “방송이 연일 한미FTA 특집을 내보내며 여론을 조작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태인씨는 노대통령 탄핵 당시 방송의 힘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재 진보좌파 진영의 노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은 민주당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자신들이 지키고 만들어낸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이 방송과 광고를 통해 자신들은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진보진영 전체를 무능력하고 폐쇄적인 집단이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노대통령은 10%의 지지율 상승을 얻어냈다. 그러나 개헌 발의가 시작되면, 보수진영은 그 사안 하나만으로도 다시 노대통령에 대해 일제히 공격할 것이다. 그때 과연 노대통령을 위해 누가 나서서 보수진영의 공격을 막아줄까?
민주당 분당과 한미FTA는 노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배신한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이다. 한미FTA를 체결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FTA를 체결하려 했다면, 노대통령이 주장하는 무능한 좌파 시민단체의 힘을 처음부터 빌었으면 안 되었다. 그들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한미FTA 지지세력인 보수층과 평소부터 생산적인 소통을 이어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진보좌파의 도움을 받으며 보수세력을 상종도 하지 못할 세력으로 맹비난을 퍼붓곤 했다. 그러니 보수층은 한미FTA 체결에도 여전히 노대통령을 적으로 생각하고, 진보좌파 측에서는 배신감을 토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정책을 펴나가더라도, “배신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노대통령이 원하는 정책을 국민적 갈등없이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은 듯하다. 이제 개헌이 발의되면, 노대통령을 도와줄 세력은 노사모 이외에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열린우리당 역시 사실 상 해체의 길을 걸으며, 100석 이하의 소수정당으로 전락할 예정이다.
시민사회, 국회, 언론에서 고립된 왕따 대통령, 그런 대통령이 개헌, 남북정상회담 등 거대한 국정 과제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한미FTA는 대한민국 전체로 볼 때는 성공이지만, 노대통령 개인으로 볼 때는, 치명적인 정치적 실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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