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4년 7월 2일 브레이크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1997년 안티조선의 이론적 틀을 제공했던 전북대학교 신방과 강준만 교수는 저널룩 인물과사상을 창간하면서 "내가 혹시라도 DJ정권에서 정부 산하 위원회 감투라도 하나 쓰면 개새끼다"라는 선언을 했다. 이러한 과격한 표현까지 쓴 것에 대해서 그는 이듬해 서울대 강연에서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KBS의 박권상 사장에게 그 따위로 할 바에야 물러나라는 비판을 했더니 주위에서 '너 KBS 사장 하고 싶어서 그러니?'라는 말들이 나왔다. 하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내가 한 자리 하면 개새끼다'이런 말까지 해야 간신히 당파성의 의혹을 해명할 수 있다"
그때 청중 학생들은 큰 박수를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도 강교수의 이런 결벽증 수준의 권력과의 단절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꼭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부터, 다들 저러고 권력과 유착하더라는 말 등등, 강교수의 당파성?정치권력의 유착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같은 안티조선 성향의 논객 진중권조차도 "왜 시민의 기본권을 포기하는가"라는 투의 반문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때 당시만 해도 강준만 교수든 진중권이든 안티조선 운동이 정권이 밀어주는 거대한 권력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참여연대와 경실련 그리고 환경련 등을 비판하면서 "언론개혁운동은 도저히 뜰 수 없는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안티조선운동의 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무런 지적 기반이나 개혁적 신념이 없이도, 안티조선의 깃발 하나만 들면 '진보'와 '개혁'의 브랜드를 독차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그 안티조선의 콘텐츠 내용도, 파병반대와 같은 정책적 사안이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권을 비호하는데 써먹는 일도 이미 비일비재하다.
아이큐 80정도만 되어도 조선일보의 사설과 기사 중 정권 비판하는 것만 발췌해서 반대로 비판하면, 그것이 곧 개혁과 진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메바식 비판 작업만 하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권과 연을 맺고, 자리를 차지하며 권력에 서서히 다가가게 되었다. 그야말로 안티조선은 언론민주주의와 평화개혁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출세와 권력을 위한 지름길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논객이든 교수든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하는 것은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보다 더 과격하게 조선일보를 두들겨패면서 간접적으로 정권을 비호하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이러한 목표를 갖고 안티조선의 깃발을 든 사람들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설사 없다 하더라도 이미 안티조선이 노무현을 지키는 권력이 된 이상, 더 이상 독립적인 언론개혁 운동이라 우길 수는 없는 일이다.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대표는 특별하게 인격적 결함을 지닌 사람은 아닐 것이다. 즉 서영석 하나 날려버린다고 권력에 물들은 안티조선운동과 언론개혁운동이 다시 세탁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총선을 앞두고 안티조선은 진영의 함정에 빠져있는 듯, 내부 비판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내부가 썩어문들어져도, 일단 조선일보라는 거대악을 상정해놓고, 이에 폭격을 퍼붓는 한, 내부의 타락은 비판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의 서영석의 인사청탁 문제는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이미 지난 해 서영석과 서프라이즈는 청와대 수석들로부터 밥을 얻어먹으면서 '비전투병 파병론'이라는 허위담론을 유포한 전력이 있다. 그 뒤로 파병반대를 외치던 언론개혁세력들이 서프라이즈와 서영석에 대해 비판을 해본 적이 있던가? 특히 안티조선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민주화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은 언론개혁 토론회가 있을 때마다 서영석을 단골 패널로 초청하는 포용력을 보였다. 심지어 오늘 7월 2일 민언련 주최 토론회에서조차 서영석이 패널로 초청되어있다.
- 김선일씨 피살사건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토론회
일 시 : 2004년 7월 2일(금) 오후 2시∼5시
장 소 : 한양대학교 도심캠퍼스(프레지던트호텔 603호)
사 회
- 이재국(언론개혁국민행동 기획단장)
발 제
-신문보도 - 양문석(언론노조 정책위원)
-방송보도 - 박웅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
토 론
-강정구(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영석(서프라이즈 대표)
-이진숙(MBC 국제부 차장)
-정운현(오마이뉴스 편집장)
주 최 : 언론개혁국민행동
주 관 :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노조
민언련은 서프라이즈와 서영석의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입장도 모르는가? 어떻게 해서든 정부의 실책을 온몸으로 막아주고, 심지어 이라크 파병 강행논리마저 제공하는 매체의 대표가 그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매일 같이 저렇게 함께 어울려다니니까 그에게 안티조선의 권력이 부여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끼리끼리 뭉쳐서 서로 도와주고 감싸주고 권력과 함께 즐기고 있는데, 무슨 자격으로 언론개혁을 외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조선일보와 맞장을 뜨겠다는 오마이뉴스는 자신의 논설주간이 여당 공천심사위원, 비례대표 출마 등을 통해 정권에 기어들아갔는데도 아무런 사과나 해명글조차 올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권력과 붙어 최다 장관과 최다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자랑하던 조선일보를 권언유착이라 비판했던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아직까지 민언련, 미디어오늘 등 안티조선과 언론개혁을 외치는 단체와 매체들도 이런 오마이뉴스의 권언유착에 대해서는 입도 열지 않고 있다. 다 같은 식구이고, 다 함께 권력을 누리겠다는 것인가? 서영석 역시 어용성이 드러난 이후에도 오마이뉴스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날카로운 언론비평을 통해 언론개혁의 담론을 이끌어왔던 미디어오늘 역시 안영배라는 어용 편집국장이 노무현 정권에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참여하면서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김재홍 논설주간도, 미디어오늘의 안영배 편집국장도, 이들은 정권에 참여할 때 조선일보마저 감안하는 공직자 사퇴 시한 6개월도 지키지 않는다. 어제까지 정권을 비호하는 글을 올리고, 바로 내일 권력에 참여하는 전두환 시절의 어용논객질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디어오늘 전체가 다 타락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사가 올라와서 이를 지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디어오늘의 이수강 기자는 서프라이즈의 사업확장에 관한 홍보성 기사를 쓰면서 이미 인터넷판에서 의혹이 불거졌던 부분에 대해서 단 하나의 비판적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서영석 대표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미디어오늘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한 것과 연관이 없는지 묻고 싶다.
"언론계의 관심은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를 뒷받침할 재정적 토대와 수익 구조에 쏠리고 있다. 서 대표는 이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아끼면서도 매우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올해 초부터 매출액 규모가 급증하고 자금 사정이 크게 좋아졌다"며 "주로 정치와 관련한 비즈니스를 통해 매출이 커졌다"고 말했다. 서 대표에 따르면, 광고 비중은 매출액의 20% 밖에 되지 않으며, 애초 자본금(1050만원) 이외에 따로 증자를 받은 부분은 없다고 한다. 서 대표는 "내년 5월 법인세 신고를 하고, 결산 내역을 공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친정권 어용매체가 모든 언론사가 규모를 줄이는, 이러한 불경기에 무려 30명의 직원으로 대폭확장에 나선다면 이는 그간 미디어오늘의 셈세한 눈으로 반드시 캐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개혁과 안티조선의 선두에 서겠다는 사이트에서 '정치와 관련된 비즈니스를 통해 매출액의 80%를 올렸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는가? 서프라이즈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 수 있겠지만, 원래 그런 곳이라면 서프라이즈는 처음부터 언론개혁의 깃발을 내렸어야 했다. 서프라이즈의 사업담당 산맥처럼 (황동렬)이 서프라이즈에 올린 내용이다.
"선거법상 합법적인 후보자들의 영상 홍보물(차량용, 인터넷 홈페이지용)을 계약하여 제작하는 것의 아이디어를 내고 그 제작은 서프라이즈의 네티즌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마침 시기적절했고 서프라이즈에 동영상, 플래시, 애니메이션, 패러디 포스터 등 멀티미디어 제작 능력이 있는 네티즌들이 많아 높은 품질의 제품을 제작할 수 있었으며 후보자들도 만족하였습니다. 하지만 과정에서 세상사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듯이 이 역시 마찬가지로 허구헌날 밤새기 일수였고 본격적인 영업 및 제작업무를 한 석 달 동안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푼 없이 시작해서 총선 기간 동안 영상 제작물을 통해 3억 여원의 수입을 올린 서프라이즈는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수강 기자와 미디어오늘은 이 내용을 모르고 기사를 작성했는가? 알고도 덮었다면 앞으로 미디어비평을 집어치우고 서프라이즈와 똑같이 정권용 웹진으로 개편하기 바란다. 만약 알았지만 별 것 아니라 생각한다면, 특정 정권의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홍보 인터뷰를 해주고 홍보대행권을 따서 3억원을 챙기는 것이 언론개혁에 적합하다는 논리를 만들어보기 바란다.
어쩌다 한 번씩 인터뷰를 통해 광고 한두 건 하는 거야 운영의 묘라 볼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정치인 홍보대행 영업으로 돈을 모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이런 관변매체가 언론개혁의 중심에 들어서 있는데, 무슨 낯짝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하느냐는 말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하루이틀 고민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안티조선과 언론개혁을 내세우며 권력과 유착하여 빌붙어대는 논객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매체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지적해야하는 글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사태는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안티조선 운동은 권력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학맥과 지연 등을 통한 패거리 조직에 균열을 내어 자유로운 비판과 의사소통이 살아있는 언론민주주의를 이룩하겠다는 하나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시작한 지 5년도 안 되서, 이미 정치권력과 어울리고, 권력을 위해서 패거리를 형성하여 서로 '형', '아우'하며 감싸고 밀고 끄는 행태는 수구세력들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그걸 믿으니까 명백한 부정부패를 저지른 서영석이 마치 자신이 조선일보의 음모에 당한 듯 엄살을 떨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서프라이즈든, 미디어오늘이든 오마이뉴스든 민언련이든 진정한 언론민주화를 위해 치열한 내부비판과 경쟁을 해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안티조선이라는 진영 카르텔에 안주하지 말고, 초기 정신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서영석 하나 매장시킨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서프라이즈 하나 무너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도대체 우리가 조선일보와 무엇이 달라 싸우고 있는지, 그 해답을 찾지 않으면, 더 이상의 안티조선운동은 무의미하다.
최소한 나 개인은 앞으로는 조선일보 비판보다는 안티조선의 명분 아래 어용짓을 해대는 매체와 논객에 대한 실명비판을 주로 할 것임을 밝힌다. 그런 내부비판이야말로 진정한 안티조선의 정신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선일보 비판할 사람들은 줄서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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