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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강재섭에 박철언처럼 당하다

"뭐 재섭이가?" 이 한 마디밖에 할 말 없는 상황

“뭐, 재섭이가?” 이 한마디 외에는 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믿는 사람으로부터 뒤에서 칼질당하는 비참한 심정이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을 맡겼던 참모장의 배신으로 모든 구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함께 하겠다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찔린 것이다. - 박철언 회고록에서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로 군림했으며, DJP연합의 성사에 일익을 담당했던 풍운아 박철언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펼쳐들었다. 그가 강재섭에 대한 울분을 토하는 구절을 읽었다. 과거 박철언이 느꼈던 처절한 배신감을 지금은 박근혜가 곱씹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가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적중했다. 박철언과 박근혜 모두 대권쟁취의 문턱에서 강재섭한테 뒷덜미가 잡힌 형국이다.

박철언의 회고록에서 제일 많이 욕을 얻어먹은 인물은 당연히 YS다. 김영삼 다음으로 박철언의 분노를 자아내는 정치인이 현재 한나라당 대표로 있는 강재섭 의원이다. 박철언이 10년 넘은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까지 원망을 삭이지 못한 사실을 헤아리면 그가 강재섭을 얼마나 믿고 신뢰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같은 경북고-서울법대 라인이라는 인연에 더하여 안기부에서 장기간 함께 근무하면서 강재섭의 출세길 또한 열어주었으니까. 칼부림 나지 않은 게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다.

허나 강재섭만을 탓할 건 아니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진리를 망각한 박철언의 잘못 역시 크다. 더욱이 박철언은 강재섭의 인간성을 누구보다 소상히 파악할 위치에 있었다. 꾀돌이 박철언을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할 정도의 솜씨라면 강재섭의 두뇌회전속도는 평소에도 범상치 않았을 게다. 역시나 박철언은 시종일관 강재섭을 똑똑한 친구로 묘사한다. 박철언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강재섭이 의도적으로 바보연기는 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똑똑한 친구를 믿은 박철언의 실수다.

나는 박근혜가 소위 ‘곤조’에서 이명박을 압도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하지만 곤조에만 의지해 정권을 창출하기는 힘들다. 머리가 따라야 한다. 상대방의 전략에 관한 치밀한 분석과 빈틈없는 대응책 마련 없이 원칙을 걸레로 만들었다고 징징 짜는 것만으로는 게임을 지배하기 어렵다. 일부러 자살골을 넣을 선수에게 자기팀 주장완장을 채우는 상황이면 박근혜 캠프는 거의 막장 수준이다. 밥값 못하는 식충이들만 우글거린다는 뜻이다. 서초구 부녀회장 하면 딱 알맞을 이혜훈과 방송국 관계자 만나 드라마 뒷담화나 해대는 유승민이 기획자로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여옥이 짐 싸들고 가출한 게 이해가 된다.

강재섭은 항상 이기는 편에 붙는 체질이다. 박근혜 진영의 참모와 지지자들 가운데 박철언의 회고록을 꼼꼼히 살펴본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어도 무작정 강재섭만 믿다가 등에 비수가 꽂히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리라. 강재섭에게 의리를 지키라는 요구는 노무현더러 ‘닥치고 영남후보’ 카드를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소리다.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주문인 셈이다. 주판알을 굴릴 때의 강재섭은 대단히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계산을 끝낸 강재섭은 시베리아에 떨어뜨려도 얼어죽지 않을 만큼 싸늘하고 단호한 얼굴로 돌변한다.

강재섭은 수십 년을 허물없이 알고 지낸 직계선배 박철언의 SOS 신호를 매정하게 뿌리쳤다. YS가 이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이명박이 승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가 무슨 수를 쓰든 그의 결심은 바뀌지 않는다. 박근혜에게 남은 선택은 유일하면서도 명백하다. 박근혜 자신이 앞장서 구축했던 강재섭 체제를 뒤집어엎던지, 조용히 이명박의 선거운동 도우며 동생으로부터 육영재단 되찾을 궁리나 하던지 둘 중 하나다. 다른 대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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