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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합의'에 막힌 쌀차관..남북관계 주목

경협위 당시 입장 유지...속도조율론도 관심



정부가 대북 식량차관을 `2.13합의'의 이행상황을 봐서 보내는 쪽으로 일단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는 것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가깝지만 남북관계에는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주말에 최종 입장을 밝힐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는 오는 29일까지 2.13합의 이행을 위한 진전이 없는 한 쌀 북송이 어려워지고 장관급회담이 파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북핵과 남북관계의 속도에 대해 제기한 이른바 `속도조율론'이 다시 한 번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 BDA에 걸린 쌀 차관 = 정부 당국자는 24일 쌀 차관 북송 시기와 관련, "지난 달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에서 밝힌 입장에 따라 2.13합의의 이행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는 지금은 2.13합의의 이행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쌀 차관이 사실상 2.13합의의 이행 여부에 연동된 상황은 제13차 경협위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당시 우리측은 쌀 차관 40만t을 5월말 첫 항차를 시작으로 제공한다고 합의하면서도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북측과 국민 앞에 구두로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에는 2.13합의 이행의 발목을 잡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자금의 송금문제가 곧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강했던 만큼 5월말에도 쌀 북송을 고민하게 될지를 놓고서는 설마 하는 관측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BDA 문제는 해결 노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구체적인 해결 시기를 점치기 힘든 상황이 되면서 설마 하던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고 지금도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경협위 때 입장이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시기와 속도를 `조정한다'가 아니라 `조정할 수 있다'로 돼 있는 만큼 `선(先)2.13합의 이행, 후(後) 쌀차관 북송'을 도식화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지적에는 2.13합의의 이행이 지체되고 있는 책임이 북한에 있다기 보다는 애초 합의대로 BDA자금을 계좌이체 방식으로 돌려주지 못한 미국 쪽이 더 크다는 시각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5월말에 첫 배를 보내 남북 간 합의를 지키고 그 이후의 북송은 2.13합의 이행 때까지 보류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첫 항차의 `시기'는 지키되 그 후 `속도'를 조절하자는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이 2.13합의 이행 때까지 쌀 북송을 보류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배경에는 국민 여론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 2.13합의 이행이 지체되는 상황에서 쌀 차관을 북송할 경우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여러가지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다 자칫 대북 정책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를 수 가능성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미국의 따가운 시선도 감안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지난 4일 "남북관계 진전은 2.13합의, 9.19공동성명과 조율돼야 한다"며 속도조율론을 내세운 데 이어 23일에도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도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한 미 대사관 측이 최근 외교통상부와 통일부에 쌀 차관 상황에 대해 문의한 것은 쌀 차관 북송을 보류해 달라는 요청은 아니었지만 외교관행상 우회적인 의사 표시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가능한 절차는 미리 밟아 나가고 있다.

쌀 구매계약처럼 실질적인 행동은 힘들지만 남북협력기금 집행의결이나 `남북 식량차관 제공합의서' 공포 및 발효, 한국수출입은행과 조선무역은행 사이의 차관 계약 등은 미리 이행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남북 합의에 대한 우리측의 이행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극적으로 BDA 문제가 해결될 때 쌀 차관 제공에 필요한 절차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 남북장관급회담이 풍향계될 듯= BDA 문제가 당장 타결되지 않는 한 제21차 장관급회담은 향후 남북관계를 점칠 수 있는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상황을 놓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우리측이 쌀 차관과 비료 제공을 보류한 뒤 열린 지난해 7월의 제19차 장관급회담을 다시 떠올리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당시 북측은 쌀 차관과 경공업 원자재를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책임을 따지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맞서면서 회담이 결렬됐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7개월 가량 경색됐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도 현재 상황에 대해 "지난 17일 열차시험운행으로 큰 산을 넘었는데 한동안 내리막길로 접어들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남북은 24일 현재까지 이번 장관급회담에 대한 일정을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5일에는 이에 대한 판문점 연락관 사이의 입장 교환이 있을 예정이어서 북측이 일단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당장은 북측의 회담 참가 여부를 우려하는 관측도 있지만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 비춰 회담에는 나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이런 예상은 남북관계에 쌀 차관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열차시험운행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사업 등 경협 현안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BDA문제만 풀린다면 쌀 차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13합의의 지체 이유가 미국에 있다는 점을 들어 북측이 우리측을 몰아세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prin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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