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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10 항쟁으로 한국 사회를 20년 동안 이끌어온 이른 바 `87년 체제'를 접고 무한경쟁 시대인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참여 민주주의로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던 그 날의 함성이 지난 20년간 그 역할을 충실히 마무리하고 이제는 세계화 조류와 맞물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로 도약할 정치체제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87년 체제'란 민주주의의 열망을 안은 6.10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헌정체제 변환 등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틀을 가져다준 정치.사회적 틀을 말한다.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했던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5공화국까지 군정(軍政)의 종식이라는 시대정신을 안고 태어난 `87년 체제'는 20년이 지난 2007년 현재 대한민국에 그 한계와 과제를 새롭게 던져주고 있다.

우선 `87년 체제'의 긍정적 역할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물길을 돌려놓았고, 절차적 민주화를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첫 민주정부인 1993년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맹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평가도 있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개혁의 완성도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독재 타도'라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상정한 체제였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한계도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가 대중정치의 틀로 고착화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6월항쟁은 성공했지만 87년 대선의 정권교체 실패 결과로 군부정권의 수구세력이 생존해 형식만의 민주주의 요소가 상당부분 잔존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당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을 `87년 체제'의 최대 한계로 꼽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중재하는 정치 본래의 역할이 취약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 제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올해 대선의 경우 정치권의 복잡한 사정으로 대선 후보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을 정당정치 미숙의 사례로 꼽으며 정당정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정당 내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87년 체제'의 핵심인 대통령 단임제에 대한 폐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된 현 시점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단임제가 장기집권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1노3김' 누구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한 상황에서 졸속 합의된 것이라는 주장이 이런 시각의 근저에 깔려 있다.

87년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 까지 단임제 대통령은 마지막 임기 1년을 `절름발이'로 보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참여정부 역시 행정부와 국회가 잦은 충돌을 빚는 등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구현하는데 한계에 봉착했고, 단임제에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레임덕(임기말 현상)으로 소신있는 국정운용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적지 않게 노출됐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했으나 정치권과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끝내 좌절했다.

노 대통령은 개헌안을 예정대로 발의했을 경우 준비했던 국회연설문에서 "단임으로는 책임정치를 하기 어렵다. 연임을 걸고 국정을 수행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본질에 맞는 것"이라며 개헌제안의 취지를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식'의 새로운 정치 환경 구축 방안이 여론의 압박에 밀려 날개를 펴지도 못한 셈이 됐지만, 정치권이나 여론은 '임기말 개헌'이라는 그 시기와 방식에 대해 반대했을 뿐 대통령 단임제로 상징되는 '87년 체제'의 극복의 공감대는 확산됐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87년 체제'가 국가 경제를 뿌리째 흔들었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혀 새로운 위기론을 불러왔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로 이른 바 `민주세력 무능론'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만든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되고 있다.

즉 6.10 항쟁이 정치사회적 민주화에 대한 기제로 작용했다면, 외환위기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부각하며 신자유주의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진단속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그에 대한 대처가 미흡해 국민 신뢰 하락과 정치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또 정치권 분열로 행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지지도는 나락의 길을 걸었다.

이 같은 진단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이제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대안 등 새로운 정치적 패러다임이 절실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세력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국민의 구체적 실생활과 관련한 대안을 제시해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세력의 단합은 물론 연합정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 교수는 "한국사회의 분화와 다양성 속에서 사회 갈등이나 정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제는 타협과 협의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은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각각 6개월여, 10개월여를 남겨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화 속에서 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민주화 속에서 세계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우리 정치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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