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남, 문성근의 획기적인 정치 참여
1999년도, 필자는 <스타비평2>라는 책에서 ‘스타의 정치 참여에 관한 글을 게재한 바 있다. 당시, 양심수의 밤에 참여한 김혜수, 김종서, 동강살리기 운동에 참여한 최민식 등을 소개하며, 한국의 연예인들도 미국이나 유럽의 연예인들처럼 적극적으로 시민사회 운동이나 정치에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뒤, 2002년 대선, 실제로 한국의 연예인 및 스타들은 대거 정치에 참여했다. 유력후보였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측에서는 설운도를 비롯하여 무려 800여명의 스타가 참여했다. 특히 연예인 지원단 발족식에는 아이돌 스타 베이비복스가 축하공연을 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 당시 스타 참여에 관해서라면 노무현 캠프 측이 보다 획기적이었다. 문성근, 명계남, 권해효 등 이른바 안티조선 스타 3인방이 캠프의 홍보를 이끌었다. 대선 직전에는 윤도현, 신해철 등도 간접적인 지원유세에 나섰다.
노무현 캠프 측의 스타 참여방식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이들은 동원되었다기 보다는 스스로 판단을 내려,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다했다. 특히 명계남 등은 스크린쿼터 사수라는 대의명분으로 영화계 인사들을 대거 참여시키며,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정책적 선거 참여의 길을 열어주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연예인들은 또 다시 대선판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명박 측에는 유인촌, 이덕화, 박근혜 측에는 전원주, 설운도 등이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뚜렷한 대선후보가 없는 범여권 진영에서도, 조만간 후보가 확정되면 연예인 지원단을 구성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스타의 정치참여를 적극 지지했던 필자 입장에서, 2002년 대선 이후, 그리고 2004년 탄핵과 총선을 거치면서,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스타의 정치참여가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윤도현의 국회 모독과 명계남의 배신
명계남과 윤도현의 경우를 보자. 명계남은 오랫동안 안티조선 운동에 나섰고,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노무현 측을 도왔다. 그뒤 그는 사실 상 노대통령 측의 실세로 활동하며,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한미FTA 체결을 주도하며, 일찌감치 스크린쿼터 축소에 나섰을 때, 명계남은 영화판의 현장에 없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연대 측에서는 명계남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 노대통령을 지지하자더니, 대체 노대통령 스스로 스크린쿼터를 무너뜨리는데 명계남은 뭘 하고 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문성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계남은 여전히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노무현 측 선거운동원의 역할만 지속하고 있다.
2004년 탄핵 당시 가수 윤도현은 국회로부터 받은 명예훈장을 반납했다. 의회쿠테타를 주도한 국회로부타 받은 훈장은 불명예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과연 윤도현이 탄핵의 법적 타당성과 절차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하고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부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논의가 수시로 벌어지는 미국 의회에 대해서도 윤도현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스타들이 미국의 스타들과 달리 정치 참여에 소극적인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달리 정치가 너무나 복잡하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순간에 대세론에 휩쓸려 후보 캠프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스타들은 계속 민주당을 지지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스타들은 계속 공화당을 지지한다. 그리고 티벳독립 등 국제분쟁 사례에 대해서도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참여한다.
반면 한국은 언제 어떤 당이 사라지고, 어떤 당이 창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사실 상 이를 지지한 명계남, 문성근, 지금 이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정당 정치가 불안정하니, 스타들은 정당 참여를 하지 않고, 대선 때만 되면 대선후보 캠프를 기웃거린다.
미국의 스타들처럼 뚜렷한 정책 참여도 없다. 유일한 정책 참여였던 스크린쿼터 사수에 대해, 명계남과 문성근은 그들을 지원한 영화인들을 배신했다. 논리적으로라면 명계남과 문성근은 스크린쿼터를 무너뜨린 노무현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이 너무 막강하여 스타들이 정권의 정책에 반하는 소신을 지키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크린쿼터 폐지와 관련하여 젊은 영화 배우 이준기를 불러 “이준기씨 한국영화 그렇게 자신없습니까”라는 발언으로 압박했다. 이후 이준기는 노대통령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다, 문제가 커지자, 완전되었다며 머리를 숙였다. 바로 이런 것이 현재 한국의 스타들의 정치참여의 현실이다.
연예계의 구조적 모순 해결하려는 스타는 없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은 지속될 것 같다. 국내 정치는 물론, 북핵, 북미관계, 대중관계 등, 워낙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스타들이 함부로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는 것이 쉽지 않다. 오히려 별다른 고민없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면, 섬세히 분석해야할 사안들이 스타들의 대중선동에 휩말릴 가능성도 높다.
현재, 한국의 연예 및 대중문화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거대 스타 기획사들의 독점, 영화제작사, 배급사, 극장 간의 수직 구조, 음반사들의 붕괴, 한탕식 한류 투기 등등, 자체 모순점들이 즐비하다. 스타들 중 오히려 이러한 대중문화계의 내적인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사람도 없다. 정치에 참여하는 스타들 중 한 명 정도는, 대선후보로 지지해주는 대신, 이런 연예계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없다.
영화배우 이덕화는 이명박 대선후보 앞에서 “당신은 미래가 아니라 우리들의 챔피언입니다. 각하, 힘내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정당 정치의 기본도 모르고, 민주당 분당을 선동해댄 명계남,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탄핵권리를 무시하고, 국회를 모독한 윤도현, 이들이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기엔 아직 미숙하다.
오히려 연예산업 내의 구조적 모순 해결에나 힘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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