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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신드롬은 되고, '심형래'는 안 된다는 평단

박찬호, 박지성 등 해외스타의 관심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


흥행하면 침묵하는 영화계

영화 <디워>에 관한 논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담론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채 네티즌과 비평집단이 각기 둘로 나뉘어 치열한 감정싸움만을 계속하고 있다. 디워 비판세력은 영화를 두세 번 봐가며 디워에 대한 흠집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디워 지지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떼지어 몰려다니며 디워를 변호하기 바쁘다. 서프라이즈 김동렬의 말처럼 그야말로 디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 논쟁은 스크린쿼터 찬반, 스태프 처우개선 등 영화계 내부 문제나 영화평론가들 사이의 갑론을박 정도가 대다수였다. 일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놓고 치열하게 설전이 오가는 것 자체가 한국 영화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시청률이 30% 넘게 나오면 좋은 드라마, 앨범이 10만장 넘게 팔리면 대단한 가수라는 평가를 얻듯이 일단 흥행하게 되면 되도록 단점을 덮어주려 하는 것이 한국 영화계의 관례였다.

영화 <괴물>이 반미정서로 인해 어설프게 도마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잠깐이었고, 그나마 그것도 역대 최고흥행 영화라는 타이틀 속에 가볍게 묻혀버렸다. 영화 <친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등 역대 흥행작들도 마찬가지였다. 폭넓은 영화감상의 기회와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커녕, 온통 흥행레이스 기록 갱신에만 포커스를 맞출 뿐이었다. 설령 영화 속에서 빈약한 내러티브와 억지설정이 발견이 되더라도 관객들이 선택했다는 이유로 감싸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처럼 한국영화에 대한 논쟁은 흥행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단 국내에서 흥행하거나,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다면 작품에 대한 일체의 왈가왈부는 사라지고 화려한 축배를 들며 이구동성으로 한국영화 화이팅을 외치던 것이 우리나라 충무로의 현주소였다.

디워는 모든 세대가 즐기는 오락물

하지만 디워에 관해서는 무척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해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강세를 나타내는 여름시즌에 개봉, 3주 만에 5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디워는 계속해서 논쟁에 휩싸여있다. 오히려 흥행을 하면 할수록 논쟁거리가 쌓여가고, 논쟁거리가 생기면 흥행에 가속도가 붙는 진귀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디워에 대한 핵심적인 논란은 아주 간단하다. 컴퓨터그래픽을 빼고 나면 형편없는 영화임에도 관객이 많이 찾고 있고, 이는 심형래 감독 개인의 인간사와 애국주의적 마케팅 때문이란 것이다. 분명 틀린 소리는 아니다. 디워는 영화적 완성도가 많이 부족하고, 특히 이야기 구조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하고, 억지설정도 잦아 흐름이 끊기기 일쑤다.

문제는 유독 디워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데 있다. 어차피 컴퓨터그래픽 하나를 보여주려는 결심에서 만든 영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비교를 하면 상대가 되겠는가. 더구나 심 감독이 집중적으로 공략하려는 것은 미국 시장 내 1500여개 개봉관이 아니라, 비디오 렌탈시장을 비롯한 가정용 2차 판권이다. 비록 극장에서 무한한 감동을 안겨주는 대작이 아닐지라도, 가정에서 가족들과 두 시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워는 SF로 선전되고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괴수를 소재로 한 아동오락영화에 가깝다. 1984년 <각설이 품바 타령>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하고, 1992년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로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심 감독은 지독하게도 아동오락물에 집중했다. 총 58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9편을 감독하는 동안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아동오락물 시장을 휩쓸었다.

디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개그맨이기 이전에 희극배우로서 영화에 출연, <우뢰매>와 <영구와 땡칠이>를 통해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던 것처럼 디워도 아동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오락물인 셈이다.

박찬호는 되고, 디워는 안 된다

또 한 가지, 디워에 대해 따라붙는 꼬리표는 심 감독 개인의 인간사와 애국주의적 마케팅 부분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로부터 받은 설움과 울분을 동정표로 강요하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애국주의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점도 일정부분 맞다. 보통 창작자가 그동안의 모든 노고를 작품 안에서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고 할 때, 디워의 엔딩 크레딧은 다소 황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심 감독 개인사가 아무리 애국주의, 전체주의와 맞물려 돌아간다고 해도 개봉 3주 만에 500만명을 넘는 관객을 모을 수 있다고 보긴 힘들다. 마침 방학을 맞아 영화를 보는 수요가 급증했고, 가족 나들이용 영화로서 제격이라는 분석이 오히려 타당해 보인다. 일단 심형래 하면 컴퓨터그래픽에 목숨 건 사람으로 인식되는 만큼 컴퓨터그래픽이 기대 이하였다면 분명 디워는 망했다. 디워의 폭발적인 흥행에는 컴퓨터그래픽이 1등 공신이다.

인간 심형래의 개인사, 애국주의적 마케팅도 초점이 빗나가긴 마찬가지다. 미국 메이저리거 박찬호, 영국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그리고 언제나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축구 국가대표팀을 향해 다분히 비이성적으로 열광할 때는 침묵하고 있던 평단과 언론이 유독 디워에게만 비판의 칼날을 곧추세우고 있다. 박찬호와 박지성, 축구 국가대표팀은 응원해도 되고 디워는 응원하면 안 된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심형래에 대한 비하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한때 우리나라 가요계엔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모든 시장을 석권했고, H.O.T가 등장해 10대 아이돌그룹 붐이 일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한 음악평론가는 “훗날 KBS <가요무대>에 이런 노래들이 나올 수 있을까 싶다”라며 혹평하기도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과 H.O.T는 모두 나름의 등장이유가 있었다. 그 때의 철없던 10대 팬들이 없다면 지금 우리나라 가요계는 무너졌을 것이다.

디워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흥행가도를 달린 데는 심 감독 개인의 고집도 중요하겠지만, 한국 영화계의 시대적인 흐름도 분명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심형래에 대한 찬사이든, 컴퓨터그래픽에 대한 탄성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디워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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