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저는 노무현 후보에 투표했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을 때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때 노무현을 찍은 것이 너무 후회돼요.”
지난 10월 9일부터 21일까지 약 2주 동안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북한 핵 반대 및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 천만인 서명운동>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한 30대 주부의 분노 섞인 발언이다. 심지어 그 주부는 “지금 노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빨리 대통령직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지난 2002년을 휩쓸었던 ‘盧風’, 그리고 2004년 3월 탄핵정국 당시의 ‘촛불시위 열기’를 감안할 때 너무도 달라진 민심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
물론, 1차적으로는 대북송금 특검, 민주당 분당, 이라크 파병, 부안 방폐장, 새만금 사업, 주한미군 평택이전, 한미 FTA 등이 노무현 지지층 중 호남 및 진보세력 이탈을 초래했고,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을 20%대로 정체시키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만한 코드인사, 북한 핵실험, 386 간첩단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끝내 지지율은 10%대 초반까지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현재 청와대와 집권여당을 둘러싼 관심은 온통 정계개편으로만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
‘분노 폭발’을 앞두고 국민들 ‘여권發 정계개편’에 냉소적인 시선
한국일보가 11월 6일 열린우리당 의원 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2명 중 무려 80명(78.4%)이 ‘여당 해체 및 통합신당 창당’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통합신당 창당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약 50%에 달해 ‘포함해야 한다’ (40%)보다 10% 이상 높게 나타났다. 현재 집권세력이 직면해있는 정치적 위기에 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그 책임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열린우리당의 행보는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 때에 대단히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대북문제만 잘하면 돼” 발언에 대해 약 50%에 이르는 국민들이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기대를 걸고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는 도리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가운데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한미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는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천정배 의원이 최근 ‘양심세력 통합론’과 ‘평화세력 결집’을 주장하며 정계개편론에 불을 지피자 네티즌들은 “양심을 상실했고, 평화를 훼손시킨 장본인들이 무슨 염치로 ‘국민통합’을 외치느냐”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와 같은 분노의 목소리는 여당이 추진하는 ‘통합신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조인스닷컴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10명중 6명(57%)이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 통합론’이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
국가안보와 민생경제에 무능하고 무책임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현재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국가안보와 민생경제에 대해 철저하게 무능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사건’에서 비롯되어 ‘미군기자 평택이전 반대’, ‘한미 FTA 반대’, ‘북핵 미국책임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이르기까지 한미동맹은 사실상 해체의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으며, 오만하고 무원칙한 ‘코드 개각’으로 국정운영은 표류하고 있으며, 잇따른 세금폭탄과 부동산 가격 폭발로 민생경제는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참여정부는 국민에 대한 진솔한 사과도, 총체적 위기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다. 특히, 이종석 통일부장관, 윤광웅 국방부장관,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 등 안보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에 대해 문책 없이 교체하고, 그 후임자에 동일 성향의 인물을 내정함으로써 국민여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현재 노무현 정권을 둘러싼 각종 지표는 그야말로 ‘민중 봉기’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지난 수개월간 10%대 초반을 맴돌고 있고, ‘사학법 개정’, ‘작전통제권 환수’, ‘전효숙 파문’, ‘외교안보라인 교체’ 등 참여정부가 중심에 서있는 현안들에 대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집권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현안들과 정책들에 대한 지지율마저 최악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민심 이반’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너무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들 지표만 놓고 볼 때 ‘민중 봉기’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
지난 10월 21일 서울시청 앞 촛불집회에는 2만 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민심의 분노’가 어느 수준인지 확인시켜주었다. 언론들의 취재경쟁 속에 치러진 이날 집회에 한나라당은 강재섭 대표, 김형오 원내대표, 전재희 정책위의장, 나경원 대변인, 강창희 최고위원, 정형근 최고위원, 전여옥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총출동했으며,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도 일반 시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이는 지난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집회이며, 참가한 시민단체가 228개에 달하는 등 수면아래 있던 민심의 분노가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반대운동, 제2의 6월 민주항쟁 방불케 해
이 중에서도 특히,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와 한미연합사 해체에 반대 움직임의 확산 속도는 그 규모에 있어서 사실상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 지난 9월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와 재향군인회, 중도성향의 시민단체 선진화국민회의 등이 '작통권 단독행사 논의 중단 촉구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결성식을 갖고 10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한 것을 비롯 전직 경찰총수 26명, 전직 외교관 160명, 각 분야 지식인 700여명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 인사들이 지난 2개월간 광범위하게 반대운동을 전개해왔으며, 그 기간 중 열린 반대집회 참여자만 수십만 명, 반대서명 100만 명에 이른다.
이처럼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는 운동 열기는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처음이다. 작통권 단독행사 반대 운동과 6월 민주항쟁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짧은 기간 동안 서명과 집회가 연달아 이어졌다는 점이다. 또 운동이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 전반으로 급속도로 퍼지는 등 여론과 함께 진행된 점도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군사독재와 작통권 단독행사 반대 이면에는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공통 인식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왜 이와같은 범국민적인 저항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참여정부가 국민들이 꺼내든 '옐로우카드'와 '레드카드'를 무시한 채로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탄핵정국에서 국민들은 분명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옐로우카드'를 내밀었지만 청와대는 공중파 방송과 친여 매체를 총동원하여 의도적으로 이를 '레드카드'로 몰고감으로써 도리어 동정론을 불러일으키는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수를 획득하였고, 한나라당은 당세가 위축되고 민주당은 사실상 몰락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선거 민의 속에 숨겨져있는 중요한 사실을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간과하였다. 즉, 적지않은 국민들이 '레드카드'에는 반대하였지만 처음 제시하였던 '옐로우카드'는 그대로 유효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참여정부로부터 국정운영의 권한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데에는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의 부실한 국정운영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수 획득을 계기로 '역주행'하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 사학법 개정, 신문법 개정, 행정수도 이전 등 민의에 어긋나는 행보를 거듭하였다. 뿐만 아니라 거듭되는 당청갈등과 개혁·실용 논쟁으로 3~4개월만에 지도부가 계속 교체되는 등 집권당 운영의 난맥상을 노출하였다. 2004년 이후 치러진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전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국민들이 '레드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조차 민심을 바꿔놓는 일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즉,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옐로우카드'와 '레드카드'를 꺼내들었으면 좀 더 분발하여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페어플레이를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상대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어 경기내용을 왜곡하거나, 상대팀 선수에게 자신들의 유니폼을 입혀 뛰도록 하는데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들에게는 '스포츠맨쉽'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 내용이 부진하다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가운데 심기일전의 자세로 경기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깽판'을 놓을 방법에만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국민들을 향한 또다른 배신과 사기극이다.
대한민국 좌경화에 ‘경종’ 울리고 있는 ‘386 간첩단 사건’과 김승규 경질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불거진 ‘386 간첩단 사건’은 ‘강정구 발언’, ‘북핵무기 비호’ 등과 관련 그 배후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냈던 국민들로 하여금 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원내에 진출한 정당의 지도부가 연루되어 있고, 사건의 핵심인물과 여권 내 386 세력 간 연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 파문은 겉잡을 수없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을 진두지휘한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외교안보라인 전면교체’ 흐름을 타고 전격 경질됨으로써 국민들의 의혹과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북한 핵실험, 한미동맹 와해, 일본 재무장, 좌파세력 준동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적 환경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안보 불안감’ 속에 급격하게 ‘정치 냉소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무장’과 ‘한미동맹 와해’라는 치명적 파국은 국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현실 속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 없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지난 50년간 단 한 번도 남침야욕을 꺾지 않으며 ‘선군정치'를 펼쳐온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 정권의 핵개발에 대해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스스로는 물론, 국민 전체를 북한의 인질로 볼모잡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는 ‘동반자살’에 해당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 대다수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엄중한 경고를 내리고 있다. 즉, 대권후보 ‘빅3’로 통하는 박근혜-이명박-손학규의 분열이 한나라당의 정권교체 실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한나라당이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박수와 야유 속에는 이와 같은 복잡한 국민들의 심경이 담겨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6일 “한나라당의 경선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 같은 국민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향해 서서히 의혹의 시선을 높여가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환경단체, 반전평화단체, 통일단체 등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하고싶은 말을 다하면서 북한을 향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효순-미선' 궤도차량 압살사건 당시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일본의 독도침탈 시도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던 사람들이 한반도를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가려는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다. 핵개발이 환경을 파괴하고, 평화를 훼손하고, 통일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이 너무도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결국, '개혁'으로 포장되어온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금강산·개성공단 사업이 사실은 국내에서 활동중인 좌파세력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결과적으로 친북노선을 더욱 굳건히 하려는 '마스터 플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금 국민들은 가질 수 밖에 없으며, '386 간첩단 사건'은 이에 대한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제라도 '역주행'을 멈추어야 한다. 비록 지금은 국민들 상당수가 '냉소주의'와 '무기력증'으로 인해 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인내의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역주행'을 더욱 대담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인 상징조작을 시도하고, 정계개편이라는 '깜짝 쇼'를 통해 민심을 기만하려 든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정권에 맞서기 위해 과감히 떨쳐일어나게 될 것이다. 애이브라햄 링컨은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이거나, 한 사람을 오랜기간 속일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기간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다. 민심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