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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박소현 '내일은사랑' 기억하십니까

주간미디어워치, 막장 드라마 시대 종지부를 찍겠다


* 주간미디어워치 6호 기사입니다.

한국 서점의 예술코너에 가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다양한 서적들이 비치되어있다. 산업의 관점은 물론 감독 개인의 연출을 분석한 예술적 관점의 책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만큼 대중예술의 영역에서 영화의 지위는 공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한국영화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영화와 유사한 장르인 드라마의 발전도 눈이 부시다. <대장금>과 같은 대작이 제작될 정도로 드라마에 대한 각 방송사의 관심은 높아졌다. 특히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의 한국드라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러한 양적인 성장에 비해 드라마에 관한 연구서적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특히 드라마사, 드라마 미학과 관련된 서적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영화감독과 달리 드라마PD는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접근하는 방식도 일종의 상품을 관람하는 태도가 주를 이룬다. 좋은 드라마가 있다 하더라도, TV에서 한번 보면 그만이지 이것을 두고 두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그 정도의 가치있는 드라마가 제작되기 시작한 때가 얼마 되지 않은 현실도 인정해야한다.

최근 한국방송에서 막장드라마 논란이 한창이다. 드라마의 예술적 가치는 접어두고 무조건 불륜과 기괴한 관계설정으로 시청률을 끌어모은다. 드라마에 대한 예술적 평가가 전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럼 과연 한국의 드라마사에서 작품성과 시청률을 모두 확보한 수작들은 없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넘쳐난다. 이들 작품에 대한 드라마사적인 평가가 전무하여 후작들에 대한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주간 미디어워치에서는 막장 드라마 시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한국 드라마의 명작들을 연재 리뷰하는 코너를 신설하였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2차 판권 시장이 인터넷의 불법 저작권 침해 등으로 몰락한 한국적 상황에서 유별나게도 시청자들이 서로 비디오 테이프와 컴퓨터 파일로 돌려보며 향수를 즐기는 드라마가 한편 있다. 2003년 MBC에서 제작한 퓨전 사극 <다모>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한 드라마이다.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지금부터 무려 17년 전인 1992년에 제작되었다. 드라마 한 편을 팬들이 무려 12년 간 아끼고 사랑해왔던 것이다. 바로 한국 최고의 남성스타로 우뚝 선 이병헌을 배출한 청춘드라마 <내일은 사랑>이다.

멜로드라마 거장, 윤석호 감독의 데뷔작 ‘내일은사랑’

90년대 초반 한국의 대학생들의 일상과 사랑을 다룬 <내일은 사랑>은 바로 톱스타 이병헌, 고소영 등의 데뷔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에 대한 기록이나 연구가 부족한 한국에서는 마니아팬이 아니라면 이 드라마가 지닌 가치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병헌 하면 <내일은 사랑>이고 <내일은 사랑>하면 이병헌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멜로드라마의 대명사 윤석호 감독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그의 데뷔작이었으니 말이다.

<내일은사랑> 이전에는 현실의 대학생과 TV속의 대학생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것은 80년대 정치적인 격변기를 보낸 한국의 현대사적 비극 때문이었다. 1987년작인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의 대학생들이 끝없이 사랑하고 연애하고 있을 때 현실의 대학생들은 사상적인 고뇌로 밤새 토론하며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채 군사정권과 싸우고 있었다. 만약 외국인이 이 당시 한국에 있었다면 현실의 대학생과 드라마 속의 대학생이 같은 나라 사람들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현실과 환상의 괴리 때문에 TV드라마를 보며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꾸며 들어간 수많은 청년들이 현실에 좌절하며 또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보면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제작된 <내일은 사랑>은 이전의 드라마보다 더욱 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시대적 행운을 타고났다고 평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때부터는 굳이 의도적으로 대학의 현실을 드라마 속에서 은폐할 필요까지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출범, 정치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 과도기 작품

<내일은 사랑>은 한국 현대사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의 시대가 문화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에 제작된 드라마이다. 반면 윤석호 감독은 줄거리와 주제의식이 강조되는 드라마에서 이미지와 영상을 중심에 놓는 드라마를 어렴풋이 떠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문화가 중심이 되는 시대와 이미지를 강조하는 윤석호 개인이 만나면서 <내일은 사랑>이라는 드라마사에 남을 명작이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 KBS의 경쟁사인 MBC에서는 장동건 주연의 <우리들의 천국>, SBS에서는 <열정시대> 등이 방영되고 있었다. 대학이 정치과잉에서 벗어나면서 대학생 개인의 사랑과 일상을 다루는 작품이 대세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일은 사랑>은 시대의 무게를 벗어던졌지만, 그래도 보다 더 현실에 다가선 드라마였다.

물론 <내일은사랑>에서의 대학생들이 이념과 시대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채워나가면서 점차 하나하나 사회의 모순점들을 깨닫고, 한 걸음 성숙을 향해 다가간다. 특히 <내일은사랑>에서 돋보였던 점은 박소현이 맡은 한혜빈이라는 여성 캐릭터였다.

1회부터 12회까지 여주인공 현경역을 맡은 고소영이 중도하차 하는 바람에 긴급투입되었지만, 박소현은 90년대를 살아갔던 여대생을 상징하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었다. 아직까지 강하고 잘난 남자의 흔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던 신범수(이병헌)라는 선배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기존의 관습과 인습을 하나씩 인지해나간다.

드라마의 전반부에서 단지 신범수의 꽃에 불과하던 그녀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결국 홀로서기를 위해 파리로 떠나는 설정은 당시 드라마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아직까지 <내일은 사랑>의 베스트로 꼽히는 45화와 46화에서 박소현은 발목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국문과 학생으로 재입학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이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발레리나 출신인 박소현의 실제 경험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발레공연을 본 뒤 눈물을 흘리며 홀로 춤추던 박소현, 그리고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이병헌의 눈빛은 아직까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윤석호 감독은 이 장면을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찍었다고 한다.

실제 발레리나 박소현, 드라마에서 완벽히 재현

“박소현에 대한 이미지, 드라마에 꼭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우연치 않게 박소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언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때 그냥 엔딩 장면만 떠올리면 드라마가 나와요. 2편으로 만들었으니 1편에서는 외롭게 춤을 추고 남자가 슬프게 쳐다본다. 2펴에서는 즐겁게 춤을 추며 남자가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이 장면만 나오면 이야기는 다 되는 것이지요.”

실제 드라마에서의 장면은 이병헌이 아예 박소현 옆에서 우스꽝스럽지만 귀여운 춤을 함께 추면서 마무리된다. 이병헌이 <내일은 사랑>에서 새로운 남성스타로 떠오르게 된 계기도 바로 이렇듯, 똑똑하고 잘생겼으면서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마냥 귀여운 아이처럼 천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박소현 역시 <내일은 사랑>에서의 경험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2004년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사실 그때 말이 없었던 건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였어요(웃음). <내일은 사랑>에 출연할 때 지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손지창씨를 처음 만났는데 방송국에서 저를 보고 한다는 소리가 󰡐드라마 봤는데 왜 말을 안해?󰡑였어요. 사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는데 말이에요.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발레를 계속할 수 있었을 거예요. 후배들 얘기가 지금 의술로는 다친 발목을 충분히 재생시킬 수 있대요”

당시 신인이었던 박소현은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발레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윤석호 감독의 영상적 이미지와 함께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되었고, 그 때문에 바로 <내일은 사랑>이 17여년이 지나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윤석호 감독도 이 장면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춤을 이야기하니까 박소현이 춤에 대한 아픔이 있잖아요. 함께 춤을 추었던 친구는 공연장 무대 위에서 춤을 출 것이고, 박소현은 뒤에 혼자서 춤을 출 것이고, 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고, 그걸 주인공이 같이 지켜주고 있을 것이고, 이런 단순한 도식인데, 그것이 된 것이지요.”

윤석호 감독은 아름다운 장면을 표현하고 싶어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한 여성의 꿈과 현실에의 좌절, 그로 인한 슬픈 듯한 아름다움을 다루다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자각이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내일은사랑>이 단지 젊은이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으로 재미만을 추구한 드라마에 머물지 않았던 이유도 이러한 여성들의 자각이 주요 화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소현은 발레 장면 이후 드라마 상에서 크게 성장해버렸다.

똑똑한 남자 이병헌, 박소현으로 인해 자각하는 놀라운 모습 보여

64화부터 신범수의 동기생 역으로 김혜리가 등장하면서 박소현이 자신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신범수와 갈등을 빚으며, 이를 서로가 해결하나가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압권이다. 그 당시 기준으로는 똑똑하고 멋진 남성 캐릭터였던 이병헌이 박소현의 자각을 통해 서서히 깨어나는 놀라운 모습까지 이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석호 감독은 이를 작가들의 몫으로 돌렸다.

“작가였던 김지수씨가 대단한 운동권 출신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멜로를 쓰더라도, 사회의식의 바탕이 있어서 그런 점들이 드러난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포장을 통해 이러한 의식을 순치시켰을 것 같고, 그렇게 해서 균형을 맞출 수 있었겠지요.”

<내일은 사랑>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식과 이미지가 조화되면서 한국 드라마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드라마에서 음악을 중요한 테마로 활용했던 것도 <내일은 사랑>이 최초였다. <내일은 사랑>은 첫 회부터 섬세하게 선곡된 음악을 배경으로 하다, 결국에는 출연배우들이 음반까지 발매하게 되었다.

"출연 주인공들을 표현하는 노래 하나씩을 정했어요. 캐릭터에 딱 맞는 음악들이었지요. 그중 이병헌과 박소현의 러브테마인 <장미의미소>가 크게 히트했구요. 원래 <내일은 사랑>의 주제가가 너무 장중해서 밝고 경쾌한 것을 골랐습니다.

어찌보면 <내일은 사랑>이 한국 뮤직비디오의 시초라 할 수 있어요. 대사없이 영상과 음악만으로 표현했던 장면들을 자주 삽입했거든요. 음악하고 영상하고 붙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좋아했으니까요.“

<내일은 사랑>이 시작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대형스타가 되어있는 고소영이 12회 때 중도하차하면서 한번의 위기가 있었다. 또한 당시의 고소영은 이병헌과의 호흡도 맞지 않았고 그다지 매력이 크게 살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소영이 중도하차하고 박소현이 투입되면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었다.

여주인공의 캐릭터에서 혼선을 빚은 반면 이병헌에 대해서는 명쾌했다. 윤감독은 이병헌에게 매력적인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 남자답고, 모든 천재적인 능력, 친절하고, 상냥하고, 귀여운 남성, 이는 누가 봐도 뜰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다. 윤감독의 표현으로는 워낙 이병헌의 머리가 좋아서 이 모든 것들을 다 소화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내일은 사랑>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을지 몰라도 완벽한 이병헌과 가장 여성스러운 박소현의 만남은 <겨울연가>류의 이상적인 인물들의 이상적인 사랑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어느모로 보나 완벽한 이병헌의 상대를 고르려다보니 여성적인 신비로움이 있어야 했습니다. 박소현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판타지였지요. 그리고 횟수가 거듭되면서 일상을 표현하다보니 박소현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으로 점차 깨어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박소현, 현실에 미래를 빼앗겼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나

윤감독은 향후 작품에서 한 축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축으로는 젊은이들의 감각적인 현실을 재현하기도 했다. 2000년 <가을동화> 이후 현실을 과감히 버리고 이상으로 뻗어나갔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러한 작품의식이 혼재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혼재된 이상과 현실은 그의 데뷔작 <내일은 사랑>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어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결과적으로 이상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내일은 사랑>을 90년대 최고의 드라마로 만들어놓았다.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 예술가 스스로 의도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역사적인 우연과 필연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윤석호 감독은 그의 첫 미니시리즈 작품이었던 <느낌>이 데뷔작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단호히 <내일은 사랑>이 데뷔작이라 말한다.

<내일은 사랑> 이후 윤석호 감독은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아시아 최고의 드라마 연출가로 우뚝 선다. 이병현 역시 여전히 한류스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중간에 낙마한 고소영조차도 빅스타 대열에 들어섰다. 다만 드라마를 이끈 또 다른 축인 박소현만이 큰 히트작 없이 연기생활을 지속했다. 끝없이 현실을 고민하던 '혜빈' 역에 빠져있다 그만 미래를 빼앗겨버린 것일까?

그러나 1971년생으로 나이 40줄에 접어든 박소현은 10대 네티즌 사이에서 최고의 동안으로 각광받고, 여전히 ‘박소현의 러브게임’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스타골든벨’에서 비의 ‘레이니즘’의 댄스를 완벽하게 소화, 추억의 발레리나로서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실을 고민하면서 미래를 빼앗긴 게 아니라, 미래를 무난한 현실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대학생의 고민이 사라지고 시트콤과 연예프로그램의 무뇌아들로만 나오는 2009년의 현실에서, <내일은사랑>의 가치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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