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7일 KBS에서는 제 20기 시청자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KBS 측이 발표한 시청자위원회 명단은 다음과 같다. △손봉호 전 동덕여대 총장 △김은기 한국사이버대 교수(소비자시민모임 이사) △이문숙 서울사이버대 교수(여성정치세력 민주화연대) △홍수경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부회장(한국공인노무사회 이사) △유미숙 숙명여대 부교수(YMCA 아동청소년 프로그램 자문위원) △최병식 운주문화연구원장(<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홍승기 대한변협 공보이사(한국엔터테인먼트 법학회 회장) △이문원 주간 미디워워치 편집장 △이민규 중앙대 신방대학원장(한국언론인회 이사) △황인학 전경련 상무 △김상준 동아방송예술대 교수(전 KBS 전주총국장) △김수삼 한양대 교수(한국건설문화원 이사장) △호천웅(전 신성대 교수, 전 KBS 청주총국장).
명단 발표 이전부터 언론연대와 미디어행동 등 진보좌파 단체에서는 시청자위원을 밀실에서 임명했다며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등 논란이 분분했다. 본지 이문원 편집장 등 13명의 시청자위원 명단이 공개되자 미디어오늘과 PD저널 등 진보좌파 매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인사와 무색무취 인사만이 위촉되었다며 비판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좌파 단체와 매체의 KBS 시청자위원 비판은 자가당착이라는 역비판을 받게 된다. 이미 지난해 제 19기 시청자위원 선임 당시 시청자위원회가 민언련, 민변 등 진보좌파 단체 인사와 지금 지적하는 무색무취 인사들로만 구성됐을 때, 진보좌파 단체에서는 단 한 번의 비판도 하지 않았다. 또한 올해 MBC 시청자위원 역시 무색무취의 방송 비전문가들로 구성됐지만, 역시 이들은 비판하지 않았다. 진보좌파 단체와 매체는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이 위촉됐냐 아니냐만 따질 뿐 원칙과 정도는 애초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정략적 발상을 제외해도, 이번 KBS 시청자위원회는 인선은 물론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병순 사장 체제의 KBS 시청자위원회는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손봉호 위원 불참에도 시청자위원장으로 임명
첫 회의부터 문제가 됐던 것은 KBS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청자평가원의 구성이었다. 시청자평가원은 시청자위원회에서 임명토록 돼있다. 정연주 사장 체제부터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이 평가원장을 맡게 되고, 시청자위원회에서 알아서 3명 이상의 시청자평가원을 임명하게 된다. 그러나 KBS 측에서는 시청자평가원 추천을 의뢰하는 문서에서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와 학술단체 추천을 배제할 것”을 강제해놓았다. KBS 개별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는 시청자평가원에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 인사와 학술단체 인사를 배제토록 한다면 대체 누구를 추천할 수 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KBS 측은 “미디어 시민단체와 학술단체 인사 배제 방침은 잘못 전달된 것”이라 변명했으나, 결과적으로 시청자위원이 아닌 KBS 측이 알아서 평가원을 선정하게 된 셈이다.
시청자위원들의 분과 선정도 KBS가 정한 것은 마찬가지. KBS 측은 시청자위원들에 시청자 권리보호 소위원회와 시청자 참여프로그램 소위원회, 시청자 평가 소위원회 등 3개 소위에 개별 시청자위원들이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1지망과 2지망 등 두 개 분과에 지원한 시청자위원회의 분과 선정 역시 KBS 측이 자의적으로 결정했다.
정연주 사장 당시 KBS 시청자위원회의 경우 첫 회의 때 시청자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선임해, 이들의 사회로 개별 분과를 정하게 된다. 시청자위원장의 경우 남성 연장자가, 부위원장의 경우 여성 연장자가 맡는 것이 관례이나, 이번 제 20기 시청자위원회에서는 위원장으로 지목된 손봉호 위원이 불참했다. 즉 본인의 참석도 없는 상황에서 위원장이 임명되고, 개별 시청자위원의 분과도 KBS 측이 정해버린 것이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역할인 사회 역시 KBS 시청자센터 측이 맡아 회의 자체가 기형적으로 진행됐다. 사회권을 시청자위원이 맡지 않았기 때문에 시청자위원회의 고유 권한인 평가원 임명과 분과 선정을 모두 KBS 측이 알아서 한 것.
정연주 사장 당시 가장 효과적인 운영방안이라 인정받았던 보도, 교양, 예능드라마 분과도 사라졌다. 개별 시청자위원들이 전 영역의 프로그램을 알아서 모니터하도록 했다. 이는 그 이전의 비효율적 방식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병순 사장 체제 이후 처음으로 구성된 제 20기 시청자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식으로 볼 때, 시청자위원회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는 진보좌파 세력의 비판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보좌파 언론단체에서는 “이병순 사장이 수신료 인상과 자신의 연임을 위해 시청자위원회의 기능을 무력화시켜, 사장 친위대로 전락시켜버렸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김정대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예상했던 바대로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원칙을 갖고 소신 있게 말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다”며 “이번 시청자위원회 구성은 KBS가 수신료 인상을 위한 들러리로서 구성했다는 확신이 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제 20기 시청자위원회 구성의 면면을 살펴보면,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확보한 인사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 3명이 모두 탈락됐다고 비판하지만, 이와 반대로 보수우파 진영 역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변과 공언련 인사가 모두 탈락했다. 즉 양 진영의 영향력 있는 인사를 모두 제외해 이병순 사장 친위대로 구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사 시청자위원회는 사장이 아닌 방통위가 임명해야
이 같은 문제는 사장이 임명하게 되는 시청자위원회 구성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보도채널의 시청자위원회 구성이 방송법에 근거하고 있다면, 당연히 해당 방송사와 독립된 방통위에서 임명해야한다는 것. KBS 이병순 사장 뿐 아니라 MBC 엄기영 사장도 밀실에서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해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시청자위원은 방송사 이사직과 달리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활동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그 영향력도 결정된다. 사장이 임명했다 해서 사장의 비위만 맞추기 시작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반면, 제작 현장까지 찾아가 철저한 모니터를 하면 프로그램 하나의 존폐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각 방송사 사장들이 시청자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싶은 욕망을 갖는 건 너무 당연한 일.
MBC의 경우 지난 광우병 파동 당시 엄기영 사장 친위대로 구성된 시청자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MBC의 거짓선동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번 MBC 시청자위원회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전경웅 미디어발전국민연합 사무국장은 “나의 경우 MBC 보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서 지원서를 제출하니 현재의 사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는 당연히 탈락하게 된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허수현 기자
* KBS시청자센터 측이 위 기사에 대해 해명글을 보내왔습니다.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와 학술단체 추천을 배제할 것'을 강제해놓았다"는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 중립적 성향의 인사, 미디어 운동 단체나 학술단체를 추천하고 시청자위원이 속한 단체의 인사를 배제해달라고 했었음. "강제해놓았다"는 표현은 앞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것임.
미디어워치 측이 입수한 KBS 시청자센터가 보낸 공식 공문의 표현을 그대로 공개합니다. 이 부분을 미디어워치 측이 앞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 가급적 중립적 성향의 인사, 미디어 운동 단체나 학술단체, 시청자위원이 속한 단체의 인사는 배제, 『TV비평 시청자데스크』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녹화를 해야 하므로 가급적 젊은 인사로 추천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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