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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서시장에서 사회과학 서적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반기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시장을 평정한 이후 하반기에는 한국학자 장하준의 저서가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장하준은 분명 이 시대 한국 지식인들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히는 정통 학자라기보다는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영향력을 넓히는 공공적 지식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장하준을 마냥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마치 박찬호나 박지성이 해외 빅 리그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그를 온전히 한국 지식인 사회가 탄생시킨 인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하면 한국 내에서는 장하준과 같은 토종지식인이 태어날 수가 없다. 단지 한국어가 주류언어가 아니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한국의 지식생태계가 끝없이 내부를 지향하는 폐쇄적 성향 때문이다.

지난 2005년 KBS1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장면이 생생하게 방영된 바 있다. 당시 장하준은 대표적 진보좌파 지식인으로 꼽히는 진중권으로부터 상식 이하의 공격을 당했다. 그러나 그날의 논쟁으로 상처를 입은 것은 장하준이 아니라 진중권이었다. 그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한국 진보좌파의 몰상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망가졌다. 그가 펼친 논리라고는 ‘당신 얘기가 수구꼴통들의 주장과 동일하다’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은 논리의 파산이자 미학적 감수성의 파산이었다. 좋건 싫건 그것이 한국 진보좌파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의 한계다.

그날 진중권의 주장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한국 운동권의 주류인 NL계열이 아니라 상대적 소수인 PD그룹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명색이 해외유학파 출신에 미학이라는 고상한 학문을 전공한 이가 그 정도의 인식수준을 드러낼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진중권이 그러했을 진데 하물며 통일과 민족을 입에 달고 사는 종북주의자들의 인식은 오죽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좌파라는 브랜드를 독식하며 ‘양심적’, ‘비판적’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장하준이 진보진영에서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가 한국의 경제발전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두웠던 현대사를 통째로 수긍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차 대전이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한국도 개발과 민주주의를 향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전통과 물적 토대의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가장 빠른 속도로 과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렇게 스스로가 이룬 성취를 한국인들이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는 대략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였다. 이후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를 목격하며 한국현대사의 성공은 세계사적으로 공인받게 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외면한 유일한 존재가 바로 한국 내의 좌파들이다. 이들에게 여전히 한국은 청산의 대상이자 실패한 국가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을 찾는 제3세계 지도자들로부터 개발경험을 전수받고 싶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들이야말로 한국의 성공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존재다. 그렇다면 국내 진보좌파들이 제3세계에 전해줄 수 있는 성공경험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의 역사관으로 비추어볼 때 대답은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정의를 말살하고 기회주의를 숭상하라.”

하지만 이런 정도의 조언으로 성공할 국가는 아무데도 없다. 현실세계의 성공을 악업의 결과물로 해석하는 것은 중세적 발상이다. 그런 후진적 사고야말로 개발과 성장을 가로막는 진정한 장애물이다.

한국사회를 떠도는 미신들

국내 진보좌파들의 한계는 그들의 역사관에 기인한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친일청산’이라는 명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그러나 이런 역사관을 형성하는데 절대적 기여를 한 임종국은 1989년 눈을 감았다. 그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확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하지만 지금의 진보진영 지식인들은 한국의 성공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역사적 사실에 눈을 감았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진보진영의 역사인식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시계바늘이 멈춰버린 ‘쌍팔년도 역사관’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 중에서 그 시절 자신의 생각을 바꾼 이들이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흔히 ‘변절자’로 통하는 모양이지만 과연 진정으로 비겁했던 것이 누구였는지는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미국의 지적 독립을 이룩한 인물로 평가받는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일관성이라면 소인배들은 죽기 살기로 매달리며 떠받든다. 소심한 정치가나 철학자,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당신이 어른이 되고 싶다면, 오늘 생각한 것은 오늘 총알같이 말하고, 내일 생각한 것은 내일 단호한 어조로 말하라. 비록 내일 말한 것이 오늘 말한 것과 모순될지라도.”

오늘의 현실이 어제와 달라졌다면 그 순간 지식인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에머슨은 가르쳐준다. 신생독립국이었던 미국이 세계최고의 국가로 성장한데는 그런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지식인들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대책 없는 지조가 더 높게 평가되는 모양이다. 그 결과 해외에서는 인정받지도 못할 논리가 횡행하는 자폐적 지식인 사회가 형성된다. 이것이 장하준과 같은 지식인들이 한국 땅에서 성장할 수 없는 이유다.

내수용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괴이한 논리도 넘쳐난다. 한국의 경제개발은 박정희라는 지도자 덕분이 아니라 국민들 모두가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 이들의 오래된 주장이다. 만일 그렇게 지도자의 영역을 과소평가하고 모든 것을 국민들 덕으로 돌린다면 1997년의 외환위기도 국민들의 과소비 탓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지도자 없이 잘 돌아가는 사회라면 왜 젊은이들한테 투표 안한다고 타박을 하고, 이명박을 뽑았다고 비난할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이 한 결 같이 외환위기의 극복은 김대중의 공로로 돌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이들의 양심과 지성이 동시에 함량미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포스트 386세대는 이런 변태적 역사관과 결별하고 반드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창시절 해외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경험한 세대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미덕이다. 광부와 간호사로 노동력을 팔러 가야 했던 나라에서 맥주 맛을 즐기고 돌아오는 것은 실패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신들이 받은 것이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고마워 할 줄도 분노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지식인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미신과 진실을 검증해 내고, 무너뜨려야 할 우상이 무엇인지 분간해내야 한다. 그것이 또 다른 장하준을 키워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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