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빅뉴스】김휘영의 문화평론= 쿵푸팬더I 편은 2008년 한국에 개봉된 그해 외화 중에서 흥행 1위를 질주했다. 그 당시까지 애니매이션의 최고작이라는 슈렉의 기록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3년이 지난 2011년에 다시 찾아온 쿵푸팬더II는 개봉 8일 만에 200만명, 11일 만에 300만을 돌파하는 등 아직까지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도 이 시리즈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다만 I편이 재미와 더불어 진한 감동까지 함께 주었다면 II편은 단순한 흥미 위주로 제작된 감이 있어 약간 아쉽다. 3D 영화로 I편에 비해 공간미와 속도감을 더해서 기술적으로 확실히 업그레이드 되었고, 속편답게 스케일이 확연히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I편의 작품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는 쿵푸팬더 I 편의 작품성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나타나는 상대적 평가이지 쿵푸팬더 II가 다른 일반 영화에 비해서 굳이 그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 하나는 확실하게 담보하고 있으니까. 공휴일 아침 자녀나 조카들의 손을 잡고 관람할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물론 재미와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I편을 DVD 등으로 미리 보고 가면 더 좋다. 필자는 이 시리즈 중 특히 I편을 아주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보았다. 혹시라도 자녀들에게 이 계통, 즉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이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싶다면 가급적 I편을 먼저 관람하고 II편을 본 후 비교 토론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참 도움이 될 것이다.
여인영과 심형래, 그리고 중국의 반응
국내에서 쿵푸팬더II는 한국계인 여인영이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았다 하여 화제가 되었고 또 중국에서는 중국의 문화를 폭력영화로 이용한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침략이라 규정하며 관람거부운동(보이콧)이 일어나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 한국의 심형래 감독이 처음으로 SF영화 [디워]를 세계시장에 출품했을 때도 비슷한 두가지 이유로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점 또한 흥미롭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디워나 쿵푸팬더에 대한 일부 중국인들의 반응은 한국과 헐리우드에 대한 기술력과 기획력에서 한발 뒤쳐져 버린 사실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다수 중국인들도 관람거부운동은 지나친 국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중국 문화를 세계에 알려 주고 있는 헐리우드에 감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뤄갔다. 한국 작품인 디워의 경우는 축구에서의 공한증(恐韓症)이 영화에서도 재현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이 중국의 포털 게시판을 뒤덮었다.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에 대한 부러움과 이를 구경만 해야 하는 자괴감이 함께 표출된 일이었다.
한국의 디워와 헐리웃의 쿵푸팬더에 대한 중국의 반응과 그 추이는 CG 등의 첨단기술의 힘이 어떻게 문화장벽을 자연스럽게 허물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문화콘텐츠와 문화충돌
물론 첨단기술만으로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상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없는 기술은 격렬한 반발에 부딪쳐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몇 년 전 세계적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에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TV광고를 할 목적으로, 최첨단 기법으로 제작했던 광고가 중국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결국 방송금지처분을 받고 무려 1000억원을 넘게 들인 광고기획물이 무용지물이 되고만 것이다. NBA 최고 스타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가 농구공으로 중국의 문화상징인 용(龍)을 물리치면서 득점을 하는 등 몇 개의 중궈문화형상(中國文化形象)들을 이기면서 5층으로 올라가는 시리즈물로 중국 전역에 TV광고를 했는데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렸다. '맨발로 다니더라도 나이키는 신지 않겠다"는 항의에서 보듯, 중국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굴복한 중국 당국으로부터 급기야 방송금지조치라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해야 했다.
1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이 일시에 허공으로 날아간 당장의 가시적인 손실보다 그 뒤에도 계속된 나이키 제품에 대한 격렬한 불매운동, 급기야 미국상품 불매운동으로 까지 번져갔으니 마케팅학상으로 보면 그 손실을 산술적으로 추정해내기 조차 힘들 정도다. 그들은 용, 백발노인, 비천신녀 등의 중국의 중요한 문화형상들의 껍데기만 알았지 그 문화형상에 담긴 깊은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뤘다. 이 사건은 오로지 다국적기업인 나이키가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자초한 일이었으며 이는 21세기 들어서 문화충돌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어떤 문화컨텐츠가 국경을 넘을 때는 이런 문화충돌에서 비롯되는 리스크가 상존하고 심각 할 때는 외교적 마찰을 넘어 때로는 전쟁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슬람 국가들과 여타 서구 국가들의 격렬한 문화충돌은 현대에 들어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물질적인 상품에 대한 기술상의 문제는 A/S가 가능하지만 문화상품이나 광고상의 실수는 애프터 서비스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다른 제품으로 까지 불매운동이 번지거나 그 기업 전체 이미지까지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디워 논란 당시 진중권이 디워의 용(龍)을 보고 개성이 없다는 미명으로 무식하고 말도 안되는 악성 비방을 해댔을 때, 그건 개성(個性)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중권의 문화(文化)에 대한 지독한 무지에서 비롯된 견성(犬聲=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풍자했던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형(原型)이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는 용(龍) 같은 문화형상에 진중권의 주장처럼 섣불리 개성을 발휘했더라면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 지는 능히 짐작 가능하다. 중국인들에게 혐한론이 더욱 거세게 불타 오르게 하는 좋은 재료가 되었을 것이며 그 때문에 한국 사회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을 것이다.
이런 여러 사실들을 볼 때, 문화콘텐츠 산업이나 광고 홍보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평소에 틈틈이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쌓아둘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위관리자 층으로 갈수록 이 부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한국에서 출품한 디워의 경우 용(龍)의 형상을 잘 구현하고 신성함이라는 내적인 특성까지 잘 살려내서 중국인들에게 저항보다는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문화콘텐츠에서 선보인 첨단 기술력은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높혀 삼성 자동차나 LG 휴대폰 같은 다른 상품들에 대한 잠재적 구매력을 높혀 주는 역할까지 한다. 필자는 쿵푸팬더 시리즈를 보면서 헐리웃의 동양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에 놀랐고 미국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드림웍스를 비롯한 헐리우드 영상산업계의 저력을 새삼 확인했다. 한국도 드림웍스 같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문화콘텐츠를 양산하는 기업이 생겨 쿵푸팬더 처럼 뛰어난 영상물을 창출할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다 / 김휘영 대중 문화평론가(we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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