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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혁명가가 되어야

한국 대중예술의 발전을 위한 고언(1)


[김휘영의 문화평론] "너희는 가장 고차원적인 악기가 엉망이야, 바로 보-오-컬!"

영화<고고 70>에서 밴드를 결성하려는 조승우가 말한 대사다. 그렇다. 보컬은 밴드에 생명의 혼을 불어 넣는 존재다. 2011년 한국에 최고의 보컬을 가진 뮤지션이 등장했다. 그는 오랜 어둠의 동굴에 웅크리고 있다가 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거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섰다. 그의 이름은 임재범이다. 사실 필자는 클래식, 그 중에서도 성악을 주로 감상하고 특별히 필자를 감동시킨 곡들은 악보를 필사해 외우고 불러 올 정도로 몰두해 왔기에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 음악을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 음악은 콘서트나 가까운 노래방에서 언제나 정겹게 만나 왔으므로 생활 속에서는 훨씬 친숙했다. 마음 놓고 선곡할 수 있기에 노래방에는 혼자 자주 가는 편인데, 가면 거의 대부분 "A Whole New World"와 같은 팝송과 유명한 샹숑이나 칸쵸네, 그리고 스페인 출신의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Hey,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Adoro!(내 사랑이여) 같은 라틴 계열의 노래를 많이 불러 왔고 최근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리키 마틴의 곡 Livin’ La Vida Loca 같은 라틴 요소에 영미 팝의 요소가 가미된 다소 비트있는 노래를 즐긴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한국 사람인 나에게 한국의 대중가요가 가장 정서에 맞고 감정을 몰입하는 데도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주로 팝송으로 목청을 어느 정도 달군 후, 신성우의 서시(序詩)로 부터 조용필, 이문세, 변집섭의 명곡들을 섭렵하고는 그리고 가끔씩 나오는 최신 트로트 까지 한번 가면 혼자서 보통 2-3 시간씩 부른다. 호흡을 중시하는 노래는 특별히 내 체질에도 맞아 건강관리에도 그만이라고 잘 아는 한의사 선배가 권해 주었기에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은 나에게 특별하고도 오랜 친구가 되었다.

어릴 때는 겉멋으로 외국 노래를 많이 불러온 감이 없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부르다 보니 외국 노래들까지도 나도 모르게 음악에 담긴 의미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전문 가수는 아니지만 이렇게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즐기고 체험해 왔기에 한국의 대중 음악을 어느 정도 외국의 대중음악들과 비교 평가할 수 있게 된 건 지도 모른다. 5년 전 필자의 초창기 문화 칼럼인 '일본 엔카, 한국 트로트와 나폴리 민요(2006.04.24, 대자보)'는 이런 필자 나름의 체험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비교문화학이 있을 만큼 문화평론에서 타 문화와의 비교 평가로 발전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필자가 살아 오면서 축적한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개의 칼럼을 보이고자 한다. 이건 그동안 한국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우리에게 주신 작품들을 그저 무임승차하듯 향유만 해 온 필자가 그 분들과 한국 대중문화 전체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장엄한 오케스라 반주에 맞춰 윤복희씨가 불렀던 '여러분'을 직접 들었던 필자였기에 이 곡을 임재범이라는 걸출한 보컬을 통해 다시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윤복희씨 특유의 얼굴을 찡그리며 온 몸으로 불렀던 그 때의 '여러분'과 2011 년 임재범의 '여러분'은 확실히 달랐다. 윤복희의 해석이 폭발하는 절규와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면 임재범의 그것은 절제된 가운데 섬세하면서도 너무나도 강한 울림이 가슴 깊은 곳까지 파도처럼 밀려왔다. 선배 가수 윤복희가 뿌린 애절하고 서늘한 씨앗인 '여러분'이 이제서야 임자를 만나 따사로운 온기를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났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임재범의 해석이 나에게 준 감동은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힘든 생경함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임재범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연주를 25년 이상 감상해 왔기에 적어도 발성과 음색에 관해서는 청감이 상당히 발달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아리아나 나폴리 민요 등을 들으면 즉각 어느 성악가의 발성인지 아는 것은 기본이고, 필자가 존경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경우에는 그 분의 아리아만 들어도 대충 몇 년도에 레코딩한 노래인지를 알아 낼 정도다. 이런 필자에게 임재범이 부른 과거의 연주들은 정말 경탄이 나왔다.

'Have I told Lately' 같이 그가 부른 여러 노래에는 Now and Forever 의 리차드 막스(Richard Marx)가 가진 섬세한 감성과 'When a man loves Woman' 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같은 깊은 호소력이 있었다. 거기다가 절제되었으되 폭발하는 힘이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의 여름이면 뮤직 비디오로 자주 접했고 지금도 애창하는 'I'm Sailing!' 의 로드 스튜어트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이끌어내 주었던 자유에 대한 원초적 갈망 같은 심연의 울림에서 퍼져 나오는 미묘함의 음색도 느껴졌다. 라커가 이런 특색을 동시에 가지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임재범은 정말 부모님과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원래부터 '신이 준 최고의 악기가 인간의 목소리' 라고 하지 않던가? 필자의 오랜 취미가 성악인 관계로 발성과 공명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기에 잘 알지만, 골격과 치아 구조, 심지어는 광대뼈의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목소리만은 천부적으로 타고 나야 하고 변성기 때문에 조기교육조차 힘든 악기다. 물론 천부적인 요소에 각고의 노력을 더 해야만 신이 준 이 고귀한 선물(Gift)을 제대로 발현해 낼 수 있다. 이건 성악가나 판소리 명창이나 락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임재범이 부른 '여러분'은 그의 명곡 '고해'와 함께 지금도 자주 듣고 앞으로도 자주 들게 될 것 같다. 사실 클래식의 맑고 깨끗한 벨칸토 창법에 익숙한 내 귀에 락 뮤지션의 창법과 음색이 이렇게 큰 파장을 울린 건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라커들은 주로 탁한 음색만이 강한 데 임재범의 목소리는 이전에 들었던 다른 라커와는 전혀 색다르고 뭐랄까 넓고 깊게 흐르는 에너지가 숨쉬고 있음을 느꼈다. 한국 뮤지션 중에서도 이런 보컬이 있었다니! 그런데 나는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 임재범, 박정현 같이 숨겨져 있던 보석들을 무대 위로 올려 찬연한 빛을 발하게 하고 김조한 조관우 등 과거의 유명 가수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고 잊혀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명곡들까지 우리 앞에 되살려내 벅찬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나는 가수다' 제작진께 이 칼럼을 빌어 새삼 감사드린다. 더불어 이 시리즈에서 몇 가지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깨끗한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대화하는 중에 필자가 지나가면서 우연히 들은 말이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대단 하기에' 라고 생각하면서 인터넷을 뒤져 임재범의 노래를 골라 들어 보았다. 정말 '대단한 보컬이었다. 특히 '여러분'에 대한 임재범의 해석은 탁월한 경지였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만의 개성과 진실한 감성의 울림이 있었다. 반복해 들으면서 점점 느끼게 되었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혼(魂)이 그의 인생역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소리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의 발성이 좀 더 젊었을 때, 소위 신체적으로 최전성기 때의 목소리 보다 좀 떨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때의 임재범과 지금을 택하라면 지금의 임재범을 택하겠다. 왜냐하면 진정한 예술가에는 단순한 기교의 차원을 넘어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녹아 있어야 하고, 이 점에서 보면 지금의 임재범의 목소리는 오히려 최정점일 지도 모른다. 그의 어려웠던 인생 여정이 바로 오늘의 임재범을 완성시키는 근원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악가에서는 40대 초중반이 가장 완숙기로 접어드는 시기인데, 현재의 임재범도 잘 관리만 한다면 충분히 롱런하며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선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 또한 한국 사회의 복이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딛고 이제서야 대중 앞에 갑작스레 부각되는 까닭에 이 대단한 아티스트에 대한 질시 등에서 나온 안 좋은 시각이 생길 지도 모른다. 또한 인터넷 시대의 잔인한 신상털기 등에서 비롯되는 몇 몇 개인적인 단점들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드러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조차 감싸안아 줄 사회적 필요가 있을 만큼 그의 음악성은 특별하다. 무엇보다 그의 공연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의 눈빛에서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는 참으로 귀중한 가치인 진실함이 느껴진다. 이는 그가 가진 큰 자산이다. 우리는 그가 가진 이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 주고 보호할 수 있도록 사랑과 성원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는 분명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보답해 줄 것으로 믿는다.

"임재범은 한 숨 소리 마저 노래다" - BMK

나가수에 출연해서 순위를 경쟁한 뛰어난 가수가 다른 경쟁자 가수인 임재범을 두고 평가한 말이다. 필자도 인정한다. 이 이상 임재범을 제대로 설명하는 말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왜 이런 뮤지션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을까? 원인과 구체적인 대안은 다음 시리즈에서 계속 논하겠다. 확실한 것은 한국 사회는 우리 앞에 힘겹게 다가 온 임재범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먼저 임재범의 성공은 결코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이 땅의 수많은 뮤지션들에게도 혜택을 주고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계에 획기전인 전환점이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 김휘영 대중문화평론가 (wep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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