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빅뉴스】김휘영의 문화평론=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떤 영화를 볼까 하다가 셜록 홈즈를 선택했다. 어릴 적에 괴도 루팡과 함께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무척 즐겼던 터라 영화에는 어떻게 살려냈을까 하는 궁금증도 크게 한 몫 했다. 본 사람들은 거의가 좋은 영화라고 말한다. 필자도 공감한다. 대중문화칼럼을 쓰는 입장으로서는 한국 영화가 아니라서 개봉 초기라도 상대적으로 큰 부담 없이 평(評)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필자는 개봉초기의 한국영화에 대한 평은 가급적 하지 않아 왔다. 흥행이나 객관성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함이다). 얼마 전 김성종 추리문학관을 직접 방문하여 한국 추리문학계의 현주소를 실감하고 왔기에 이 영화는 다소 색다른 감정으로 보았다. 언제쯤이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추리소설과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을 통해 본 집단 무의식
유럽 바이어들을 만나서 그들이 프랑스인들에 대해서 평하는 말을 들은 적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은 전부 거짓말쟁이라는 말이었는데 이건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앙숙이라는 영국 사람들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서 온 어떤 여자 바이어는 "어머 쟤는 프랑스 사람도 아니면서 왜 거짓말을 하지?" 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물론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단순한 편견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아니 난 오히려 거짓말도 종종 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그런 자유분방함을 나름대로 존중한다.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와 모리스 르블랑이 지은 괴도 루팡 시리즈에는 단순히 재미로 보기에는 중요한 문화 코드가 숨어 있다.
필자가 발견한 그 코드는 두 소설 속에 깃든 영국과 프랑스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무의식이랄까 또는 민족적 기질에 관한 것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잡는 사립형사가 히어로인 셜록 홈즈는 질서와 규율을 존중하는 수호자며 이는 보수적인 영국인들의 집단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다. 이에 반하여 기존의 틀에 박힌 질서를 숨 막혀 하며 개인의 자유로움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은 기존 질서의 수호자인 치안 경감을 비웃는다. 오히려 물샐 틈 없는 방어망을 뚫고 신출귀몰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 심지어 조롱까지 하면서 유유히 빠져 나가는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도둑- 루팡을 발현해 낸다.
영국에서 괴도 루팡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소설로 태어나기 어려운 만큼이나 프랑스에서 셜록 홈즈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에는 너무 따분한 캐릭터다. 이런 차이가 한쪽은 탐정을 영웅으로 만드는 서사구조를 만들어 내었고 또 다른 쪽은 영리한 도둑을 영웅시하는 서사구조를 만들어 냈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보수적인 유럽인들에게 이런 특이한 기질을 가진 프랑스 사람들이 농담 반 시샘 반으로 변덕쟁이 또는 거짓말쟁이로 치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2011년 연말 특수기에 우리 앞에 다가온 영화 <셜록 홈즈>도 악당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려는 사명감에 충일한 히어로다.
2011년 <그림자 게임>이란 부제를 달고 세계 시장에 나온 [셜록 홈즈]를 철학적 또는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과 정치의 비정함을 냉정하게 해부한 영화이기도 하다. 마치 요즘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미국 군수업체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듯 하다. 배경은 1890년 대, 세기말 풍조인 무정부주의와 허무주의가 휩쓸고 있는 유럽이다. 세계 전역에 물자 공급선을 확보한 모리아티 교수가 총알과 붕대를 팔기 위해, 즉 돈을 위해서, 세계대전을 획책하려고 갖가지 테러를 자행한다. 마침내 세계전쟁의 도화선이 될 결정적인 테러를 거행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를 막아 세계를 구하려는 히어로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시대 배경상 최첨단 무기가 나올 수 없는 점만 제외하면, 셜록 홈즈의 이름을 빌린 <007 제임스 본드> 영화를 생각하면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연말 연인이나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피를 튀기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권장할 만하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추리탐정소설의 진미를 맛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선택의 핀트가 약간 어긋났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범인과 탐정 간의 숨바꼭질 구조, 즉 범인과 그를 쫒는 탐정 간의 두뇌싸움, 그리고 애거샤 크리스티의 <쥐덫>같이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마지막 반전을 구조로 한 영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의 오락성이 관객을 충분히 매료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립탐정으로서의 셜록 홈즈의 고유한 특성인 예리한 관찰과 탁월한 분석력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잘 살아 있다. 그리고 일반 탐정영화와는 다르게 매우 스피디한 액션이 전개된다. 큰 스크린으로 볼 관객이라면 가급적 앞 좌석은 피하기 바란다. 초반의 격투 장면은 너무 스피디해서 눈에 담기 벅찬 감이 있다.
추리 영화의 약점
추리극은 그 속성상 단서가 집중된 현장을 중심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맴돌아야 하는 근원적인 취약점이 있다. 더구나 별로 아름답지 못한 범죄현장을 자주 등장시켜야 한다. 액션보다 치열한 두뇌싸움을 위주로 해야 하는 속성상 대단히 정적인 영화가 되고 마는 추리극만의 단점도 있다. 사실 대박 추리소설은 널려 있을 지언정 대박 추리 영화는 찾기 힘든 이유는 무엇보다 바로 장소의 제한성과 두뇌싸움 위주에서 오는 액션 활극의 부재, 즉 볼거리의 부족 때문이다. 배경이 좁을 수록 두뇌싸움은 훨씬 치밀해진다. 이 경우 매니아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 대신 대중화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이는 드라마나 연극으로는 괜찮아도 대단위 자본이 투자되는 영화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부각된다. 이 영화는 그러한 단점에서 가뿐하게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어쩔 수 없이 추리적 요소에서 상당한 희생이 따랐다. 이 모두 흥행 장치인 오락성을 위한 선택이고 이 선택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배경은 영국, 프랑스,독일, 스위스까지 그리고 집시 족이 있는 유럽 전역을 망라한다. 게다가 매우 다이내믹한 전개로 인디애나 존스의 현란한 활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해리슨 포드의 연기처럼 아슬아슬한 설정은 드물다.
이 영화의 장점
먼저 볼거리가 참 풍부하다. 여성 관객이라면 한때 헐리우드 최고의 미남으로 선정되었던 주드 로가 홈즈의 파트너인 왓슨으로 등장하여 멋진 활극까지 펼쳐주기에 무엇보다 눈이 즐거울 것이다. 지성적인 캐릭터에 어울리는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셜록 홈즈 役)와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한 캐스팅도 무난한 편이다. 아드레날린을 매개로 한 결정적인 복선 장치도 깜직하고 간간이 드러내는 영국 문화 특유의 유머도 흐뭇하다.
필자의 경우, 한국 영화에서 늘 불만족스러운 게 바로 아름다운 배경의 부재였고, 시대극이라면 세밀한 고증의 부족이었다. 이 두 가지로 인해서 한국영화가 대부분 ‘날림공사’를 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제작비의 부족과 감독의 인식 부족, 그리고 예술성보다는 코믹적 요소가 한국 영화의 흥행에 지나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원인일 것이다.
솔직히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이후 배경이 주는 시각적인 쾌감을 느껴 보지 못할 정도로 한국 영화는 배경에 무신경한 경향이 있다. 이런 한국영화에 늘 불만족스러웠던 관객이라면, [셜록 홈즈;그림자 게임]은 이 결핍을 잘 보상해준다. 하얀 눈이 덮힌 스위스의 고성(古城)과 계곡에서 볼 수 있는 절경은 혼자 보기 아깝다. 마치 냉동 창고 처럼 무미건조한 배경이었던 영화 [인셉션]의 마지막 전투 장면에 이런 절경이 활용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이 절로 날 정도로 수려하다. 기타 19세기말 유럽의 여러 도시와 건물 모습은 잠시도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화려한 배경과 풍요로운 음악
그리고 짧았지만 왓슨의 결혼식 장면에 뒷배경으로 나온 화사한 꽃밭도 너무나 아름답다. 필자는 솔직히 이 대목이 너무 흡족해서 일순간 탐미주의자가 되는 착각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유럽 여러 도시의 거리 풍경을 비롯해서 복식이나 재래식 무기 등 19세기 말에 어울리는 세심한 고증도 칭찬 받을만 하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배경음악이 좋다. 전도연, 황정민 주연의 영화 [행복]의 중간 부분, 황정민이 구릉을 오를 때 곡 전체가 울려 퍼졌던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Je Crois Entendre Encore)’ 처럼, 선율 자체는 더 없이 아름답지만 정작 극 내용 자체와는 유리되어 있음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전혀 안 든다. 이안 감독의 명화 [색,계]에서 탕웨이가 연인을 위해 부르는 노래 <천애가인>은 얼마나 절절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던가?
[셜록 홈즈] 또한 극 전반에 깔린 클래식 음악이 시대 상황과 잘 어울리게 서사에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특히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와 슈베르트 가곡들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극의 서사와 무리 없이 배합한 연출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매개로 한 어부와 고기의 은유나 체스와 운동방정식을 활용한 중의적 표현이나 섬세하고 촘촘한 배치도 극의 완결성을 높힌다.
옥에 티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영화의 곳곳에 등장하는 음악 ,결혼식, 무도회 ,오페라 등 예술적인 부분들인데 그 각각의 장면들을 약 30초~1분 정도씩 조금만 더 살려 냈다면 하는 바램이 실현되지 못한 데 있다.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클라이막스 장면인 징벌의 장면도 좀 더 극적으로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바램이 있고, 집시 점술가인 여성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헝가리 무곡 등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토속적인 춤을 등장시켰더라면 이 영화의 풍미가 훨씬 다채로워 졌을 것임은 확실하다. 모든 감각을 최고도로 몰입시킬 수 있는 시청각 소재인 데다 비상업적인 다큐멘터리도 절대 배놓지 않는 것이 토속무용인데, 이를 담지 않은 건 정말 미스테리다. 이 여인을 비제의 오페라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집시여인 카르멘처럼 좀 더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약간 그로테스크하게 구성했다면 더 좋았다. 전반적으로 단순한 볼거리라는 차원을 넘어 예술적인 부분에 관련한 디테일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한 듯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극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슈베르트의 송어(Die Forelle)는 과거 세종문화회관에서 신영조 교수의 청아한 목소리로 향유한 행운을 가졌던 이후로 필자가 매우 애창하는 리드(Lied)인데, 이 영화의 경우에는 연기자의 발성의 미흡함으로 인해 그야말로 ‘옥에 티‘가 되었다. 오히려 헤르만 프라이(Hermann Frey)나 피셔 디스카우 같은 전문 성악가의 음성으로 된 립싱크 형식이 훨씬 좋았으리라는 판단한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헤르만 프라이의 풍부하고 굵은 음성이 투명한 디스카우의 발성보다 잘 어울린다. 이런 섬세한 부분들만 제대로 갖추었다면 이 영화는 간만에 우리 앞에 등장한 '명화'가 되었을 것이다.
의혹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아무래도 배급사 측에서 연말 대목 시즌에 영화 상영 횟수를 늘이기 위한 욕심에 상당 부분을 가위질 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절로 든다. 저렇게 예술적인 부분들을 영화 내용과 잘 어울리게 녹여낼 줄 아는 감독이 정작 그 부분들을 이렇게 짧게 처리했을지는 좀처럼 이해가 안된다. 이 부분들에 불과 15~20초 정도만 더 할애했더라도 이 영화의 예술성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의혹은 단순히 필자의 심증임을 확실히 밝힌다. 그리고 명탐정 셜록 홈즈다운 기막힌 추리 대목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위질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 영화야말로 배급사의 상업적 목적을 위해 예술성을 훼손시킨, 이른바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희생당한 영화가 아닐까 한다. 가위질이 사실이 아니라면 영화의 완결성에 대한 흠결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전형적인 추리 영화로 보기에는 두뇌싸움 부분이 적고 [인디애나 존스]로 보기에는 미탐험지에 대한 모험 장면이 부족하고 [007 제임스 본드]로 보기에는 최첨단 무기의 등장이 미흡하다. 하지만 그 부족한 정도가 전체의 구성에 약간의 아쉬움을 줄 정도지 결정적인 흠으로 작용하지 않을 만큼 스케일이 장대하고 주제의식과 구성도 뛰어나다. 그 만큼 전체적인 틀이 짜임새 있다는 뜻이다. 상업성, 작품성, 예술성 이 세 분야에서 B 정도 이상의 평점을 받을 수 있는 영화다. 명화라는 고지를 바로 코 앞에 두고 아쉽게 멈춰 선 영화라 할 수 있으며, 오락성과 더불어 영화를 보는 시각을 넓히는 데는 더 없이 좋은 교재다. 평점 : 7.5점(/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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