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14일, JTBC는 1980년 광주 5·18 당시 미 육군 501 군사정보단 소속의 군사정보관(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이었다고 주장하는 김용장 씨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씨는 이날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署理)가
5·18 진압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JTBC의 이러한 단독 보도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칼럼이 최근 좌파 성향 매체에서 나왔다. 황석영 등의 광주 5.18 관련 수기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번역자인 설갑수 씨는 지난 2일 인터넷신문 ‘레디앙’에
‘군사정보관 김용장 소동, 한국 언론 최악 오보사건’ 제하의 칼럼을 기고, JTBC가 내세운 김용장 씨의 인터뷰에 대한 신빙성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설 씨는 칼럼에서 “김용장은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던, 계속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일 수 없는 증언을 하고 있었다”며 “그의 일성은 80년 당시, 광주에 미 국무성 직원이 없었고, 자신의 부대가 미국의 유일한 정보원이라고 말했으나, 광주에는 국무성 소속 미 문화원이 있었고, 항쟁 전후에 몇몇 보고를 본국으로 보낸 기록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 씨는 “김용장은 공수부대가 물푸레나무를 깎아 만든 10kg에 달하는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구타했고, 그 진압봉 하나를 구해, ‘본부’로 보냈다고 주장했다”며 “나무로 된 진압봉이 10kg이 될 수 없고, 그 무거운 진압봉을 제 아무리 특수부대원이라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민간방송의 시청률 높은 시사프로그램이 김용장을 접지 않는 이상, 그의 증언의 파동은 커질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김용장의 신분과 증언을 간단히 조사해 보기로 결심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김용장의 상위 조직인 INSCOM(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과 DIA(국방정보국)에 정보 공개 요구(FOIA)를 통한 증거 확보였다”고 언급했다.
“냉전 체제 하에서는 미국 국적자만 MIS 가능”
설 씨는 “냉전 체제 하에서는 미국 국적이 아니면, MIS(군사정보전문관 : 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연례보고서와 이미 공개된 80년 5월 당시 DIA 문건을 세밀히 검토해도, 한국인 MIS의 흔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설 씨는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취재진이 국방정보부 DIA 소속 제임스 영 무관에게 김용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를 아냐고 묻자, 제임스 영은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은 물론, 김용장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지인이 전해줬다”고 했다. 그는 “MIS는 꽤 비중 있는 직책이다. 김용장이 정말 MIS라면, DIA 한국 책임자가 한국인으로서 그 직책까지 오른 자를 모를 리 없고, 기억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제임스 영은 사실상, MIS 김용장의 존재를 줄곧 부정하고 있었다”며 “그는 광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501정보단 - INSCOM - DIA를 잇는 공식 채널이 아닌, 광주 출신 한국 장교로부터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설 씨는 “게다가, 그의 중요한 발언은 임의적 번역 자막 속에서 왜곡됐다”며 “제임스 영에 따르면, 대사관도 항쟁 당시에는 단편적 보고(snippet)만을 받았으며, 당시 501정보단이 기지 내에서 머물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광주공군 기지가 외부출입이 금지된 상태(lockdown)였다는 것”이라며, “항쟁 기간 중, 광주기지 미군과 군속들의 외부출입을 금지한 것은, 당시 공군기지 책임자 로버트 커스터(Robert Custer)가 2년 전 나와 전화 통화에서 확인해준 몇 가지 사실 중의 하나였고, 80년 당시 외신보도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설 씨는 “그러나 의외의 수확은 있었는데, 김용장이 민간군속으로서 받은 표창장이 잠시 화면에 비쳤고, 그 표창장은 김용장이 MIS가 아닌, 3개 통역직의 하나인 랭귀지 스페셜리스트(language specialist)라고 적시하고 있었다”며 “표창장을 수여한 501정보여단의 사령관 이름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김용장의 은퇴 직전, 직책과 최고상관을 알았으니, INSCOM에게는 김용장의 고용 여부를, 그리고 은퇴한 사령관인 웨인 홀(Wayne Hall)과 INSCOM 모두에게는 현지 고용 통역이 MIS가 될 수 있는 여부만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며 “정리하면, 501정보단에 초급 민간 통역직인 I/T로 1974년에 취업한 김용장이 1980년 MIS가 되기 위해서는, 불과 6년 동안,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정보와 언어 사이의 보직을 겸하거나 옮겨 다니며, 초특급 진급을 거듭하며, 계약직 군속이 아닌 정식 민간인 직원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INSCOM에 김용장 고용 기록 없어”
설 씨는 “우선 INSCOM에 김용장의 고용 기록을 묻는 정보공개 요청을 보냈다”며 “예상대로, INSCOM은 신속히 답변을 보내왔는데, 5월 20일 서신에서 김용장의 고용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고 언급했다. 이어 “결국 김용장은 현지 고용 군속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며칠 후, INSCOM 공보국에서 언어 통역과 군사정보는 분야와 보직이 다를 뿐만 아니라,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군사정보관으로 활용되거나 임명될 수 없다. 그들은 정보전문가로서 훈련 받거나 고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왔다”고 밝혔다.
설 씨는 “취합한 사실과 답변은 확실했지만, 한국의 헤드라인을 석 달 동안 장악한 김용장 가짜뉴스를 제압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며 “어렵사리 김용장의 전화번호를 구해, 5월 31일 그와 통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에서 김용장은 미국 국적을 한 번도 취득한 적이 없고, 90년대 말 이민 간 뉴질랜드에서 그 곳 국적을 취득한 것과, 민간인 군속으로 광주 기지에서 계속 근무했다고 밝혔다”고 언급했다.
이어 설 씨는 “김용장에게 DIA의 <정보보고서 교본>을 기반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자, 그는 대답 대신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사무실 코드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그는 “결국, 80년 5월 당시, 501 정보단에 입단한 지 6년 만에 국적을 갈아타고, 진급을 계속하며, 직책을 가로질러 MIS 자리를 꿰찬 한국인은 없었다”며 “김용장은 언제나 민간 군속 통역이었다”고 정리했다.
설 씨는 “사람은 실수를 하고, 언론은 오보를 한다”며 “그러나 실수가 의도된 것이라면, 오보가 기획된 것이라면, 책임져야 할 잘못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잘못이 한 나라의 현대사 중 가장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이라면, 그 책임은 중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며 “사과와 해명이 없다면,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이와 연관한 5·18 연구자는 광주항쟁의 모든 공식적 연구에서 영원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비판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레디앙은 이 칼럼의 ‘편집자 주’에서 “군사정보관을 둘러싼 논점은 상당히 중요하다”며 “그의 증언이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던 이유도 그가 미군 관련 일을 하는 개인이 아니라, 광주항쟁에 대한 정보를 취합·정리·분석·보고하는 미군 ‘군사정보관’이라는 직위가, 그가 말하는 증언의 (그리고 그가 제기하는 근거자료가 있다면 그 자료의) 무게를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레디앙은 또한 “필자의 주장에 충분히 제기되고 또 답해야 할 가치를 가진다는 판단에, 기고 글을 게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념적 우호 매체에서 나온 직격탄성 비판 칼럼에 JTBC측이 어떻게 대응할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