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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칼럼] 야전주보규정의 위안시설은 위안소가 아닌 군인 복지시설

개정 야전주보의 위안시설이 위안소 설치의 근거라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며, ‘위안시설’은 건전 오락시설을 포함한 복지시설이다

[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는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위안부 바로 알기 ‘학습자료’가 실려 있다. 그 중 고등학생용 ‘학습자료’에는 1937년 9월에 개정된 ‘야전주보규정(野戰酒保規定)’에 관한 자료를 소개하며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일본군은 일본군 위안소를 전쟁 지역의 병참시설인 야전주보(물품 판매소)로 설치했는데, 이는 일본군 위안부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로 취급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週刊金曜日’에 게재한 ‘위안부의 전체상(像)’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일본군위안소는 1937년 9월 29일, 일본의 육군대신이 제정한 陸達제48호 野戰酒保規定改正에 의하여 야전군의 후방시설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군위안소가 야전군의 후방시설이었기 때문에, 군 위안부들은 전투지의 방면군이나 파견군의 동원계획에 의하여 징집되고, 징집된 위안부들은 특정의 군부대에 배속되어,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군 위안부는 야전주보(매점)의 병참품의 지위에 놓여 져 있었던 것이다. (안병직, 週刊金曜日 2014년 9월 12일) 

이 두 글을 종합하면 ‘주보규정’의 ‘위안시설’은 일본군 위안소 설치의 근거이며 이에 따라 위안소에서 일하는 위안부는 싼값으로 제공되는 ‘야전주보’의 군수품이나 병참 물품처럼 취급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두 글은 용어나 사실 관계가 모두 잘못으로 위안부의 실체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먼저 징집(徵集)이라고 썼으나 징(徵)은 징병(徵兵)이나 징용(徵用)처럼 국가의 법률적 행위에 의해 강제성이 부여될 때 사용하는 글자다. “국가가 현역입영 대상자에게 현역 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징집이라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위안부는 징집 대상이 아니다. 정대협에서 국역한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UN인권위보고서의 recruiting을 ‘징집’으로 번역한 것이나 일부 논문에 등장하는 ‘징모(徵募)’도 모두 잘못 사용한 경우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개정 ‘야전주보규정’ 제1조를 보면 아래와 같다.

야전주보는 전지 또는 사변이 일어난 지역에서 군인과 군속, 그 외에 특히 종군을 허락 받은 자에게 필요한 일용품‧음식물 등을 정확하고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야전주보에서는 전항 외에 필요한 위안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1937. 9. 21. 野戰酒保規程改正に関する件) 

야전주보(野戰酒保)는 ‘전지 또는 사변이 일어난’ 최전방 지역에 군인‧군속에게 일용품이나 음식물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한 영내 매점이다. 주보는 술, 담배, 과자, 치약, 바늘 등 일용품과 음식물을 판매하는 매점으로 오늘날의 PX와 유사하다. 개정된 주보규정에는 주보에서 취급하는 물품에 특별히 녹색 표지를 붙이고 ‘주보품’이라 표기하여 군수품과 구분하도록 하였다.(제10조) 주보는 ‘병참시설’이 아니며 취급하는 물품은 ‘군수품’이 아닌 생필품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위안시설’이다. 위 글 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수의 위안부 연구자들은 개정된 주보규정에 나오는 ‘위안시설’을 위안소 설치의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개정된 주보규정에는 ‘위안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고만 하였을 뿐 별도의 설명이 없는데다 다른 조항에서도 위안소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위안부 관련 문건을 통해 ‘위안시설’과 위안소가 별개의 시설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39년 4월에 작성된 파집단(波集團) 사령부 문서에 포함된 ‘위안소 상황’에는 “근래 각종 위안설비의 증가와 더불어 군위안소는 점차 쇠미(衰微)하는 징조가 있다.”고 하였다. 또, 1940년 11월, 북지나파견군 갑집단 군의부에서 작성한 ‘간부에 대한 위생교육 순서(북지나파견군 갑집단 군의부)’라는 문서에는 성병 예방을 위한 방안으로 “정신교육 및 각종 위안시설 등에 의해 특수위안소에 들를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을 첫 번째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위안시설과 위안소는 서로 상반된 기능을 하고 있는 시설임을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해방 후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47년, 미군의 매춘이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한 신문에는 “이 방면의 조사단속도 주밀(周密)하여야 하겠으나 한편 주둔 군인에 대하여서는 위안시설을 적의(適宜)하게 제공하여 이 방향으로 유도하고 집중케 하여 시가(市街)로의 범람을 방지하는 하등(何等)의 방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1947. 5. 1. 경향신문)”라고 하여 매춘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위안시설 이용을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개정안에는 야전주보 관리 주체를 주보를 설치한 부대장이라 하였다. 기본적으로 주보로 불리는 생필품 매점은 영내 또는 부대장의 통제가 미치는 곳에 설치되었다. 만약 위안소가 위안시설에 포함된다면 주보의 하위 개념이자 부속 시설이므로 주보와 마찬가지로 영내에 설치하여 부대장이 직접 관리하여야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위안소는 영외에 있는데다 관리 기구도 헌병대장이나 경비대장, 사령관 등 실로 다양하다. 각 부대의 부대장이 설치‧관리하는 야전주보와는 전혀 별개로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개정된 주보규정의 ‘위안시설’을 위안소 설치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부류에서는 오기시마 시즈오의 진중일기 중 “밤에 대장으로부터 위안소 개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지 군대는 재미있는 곳, 여급뿐인 주보라니”라는 회고담을 근거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야전주보의 ‘위안시설’이 오히려 위안소가 아님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바로 ‘여급뿐인 주보라니’라는 언급 때문이다. 여급(女給)은 카페나 음식점의 보조 역할자로 매춘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병사가 ‘여급뿐인 주보라니’라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만약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안부가 있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야전주보는 ‘병참시설’도 ‘군수품 취급소’도 아닌데다 ‘야전군의 후방시설’도 아니다. 때문에 야전주보를 병참시설로 오해하고 위안부를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 물자로 취급했다’거나 ‘병참품의 지위에 놓여있었다’고 한 인식은 모두 잘못이다. 이는 개정된 주보규정의 ‘위안시설’ 중 ‘위안’이라는 두 글자에 매몰되어 빚어진 논리 비약이다.

결론을 짓자면 개정 ‘주보규정’의 ‘위안시설’은 위안소 설치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위안부를 병참품 또는 군수품처럼 취급하였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개정 주보규정의 위안시설은 일본군 위안소가 아닌 건전 오락시설을 포함한 군인 복지시설로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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