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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사실’로써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한일역사 EOD 니시오카 쓰토무

폭발물 처리반(Explosive Ordnance Disposal)처럼 사실을 통한 한일 역사갈등 뇌관 제거를 위해 평생 노력

폭탄과도 같은 한일 역사문제의 뇌관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실’뿐이라고 설파해온 일본의 지식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니시오카 교수는 지난해 12월 24일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에 이어 올해 4월 15일 ‘한국 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국내에서 연속 출간했다. 



그는 민감한 한일 역사문제를 다루는 일본의 지식인이지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애한파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그의 주장에 대해 사실 관계를 따져 논박하기보단 손쉽게 그를 ‘극우 지식인’으로 낙인찍기 일쑤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과 싸워왔다”며 “일본의 반일지식인들이 한국의 종북좌파와 합심하여 쌓아올린 이 거짓말이 특히 ‘일본통치시대’(‘일제시대’의 일본식 용어)를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 가운데에서 거대한 성이 되어 우뚝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설마 내 투쟁의 기록인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날이 내 생전에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거짓과 싸우는 한국의 벗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설’은 일본의 반일 좌파를 대표하는 ‘아사히신문’이 지난 1991년 전사적으로 전개한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조선인 여성 20만명을 강제연행했다’고 하는 ‘위안부 강제연행 프로파간다’의 결과, 일본 사회를 일시에 속이면서 그것이 한국으로 전파,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위안부는 ‘연계봉공(年季奉公)’ 계약을 맺은 공창의 일종이라는 사실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며 그는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제시했다. 

“위안부는 관련해 대가를 받았으며 그것을 ‘전차금 변제’에 충당했습니다. 군 위안소에서는 업자가 위안부를 착취하지 않도록 엄격한 단속이 이뤄져 왔고, 통상 계약기간 2년 이내에 전차금을 모두 갚는 것이 가능했으며, 다액의 저축이나 송금을 한 위안부도 많았습니다. ‘위안부’는, 인격이 인정되지 않고 사람이 매매의 대상이 되는 ‘노예’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는 이어서 위안부들의 증언이 계속해서 바뀌는 점과 아사히 신문 기사의 오류 문제 들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국내 종북 좌익 세력이 일제시대와 관련해 어떤 목적에서 여러가지 거짓말을 일삼고 있는지도 제시했다.



그는 “일본의 자유·보수 세력은, 앞서 말한 아베 신조 수상의 발언으로 대표되듯, 한국에 의한 자유통일을 지지한다”며 “일한(日韓)의 자유·보수 세력은 역사 문제에서는,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 불일치를 서로 인정하면서 일치할 것을 요구하지 않음)라는, 1965년 일한기본조약의 지혜로 돌아가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북한의 세습 독재 세력과 함께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5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국제기독대와 쓰쿠바대에서 한반도 지역에 대해 공부했다. 이어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 외무성 전문 조사원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에 근무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겐다이코리아 편집장을 지냈으며, 1991년부터 2017년까지 도쿄기독대 조교수와 교수를 역임했다. 현 모라로지연구소 교수이자 역사연구실장, 레이타쿠대학 객원교수다. 납북자 가족회를 지원하는 ‘구출회(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설립에 참여했고, ‘구출회’ 회장, ‘역사인식문제연구회’ 회장,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의 연구원과 기획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일본 내 저서로는 ‘일한 오해의 심연(아키서방, 1992년)’, ‘어둠에 도전한다! 납치·기아·위안부·반일을 어떻게 파악할까(도쿠마문고, 1998년)’, ‘테러 국가 북조선에 속지 말라(PHP연구소, 2002년)’, ‘납치 가족과의 6년 전쟁: 적은 일본에도 있었다!(후소샤, 2002년)’, ‘일한 ‘역사문제’의 진실(PHP연구소, 2005년)’, ‘요코타 메구미와 납치 피해자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은 지금뿐(PHP연구소, 2015년)’ 등 20여 권이 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미디어워치] 이전에 다른 책(‘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으로 다루셨던 징용공 문제와 비교해서도 이 위안부 문제는 니시오카 교수님의 삶과 인생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였다는 사실을 이번 책(‘한국 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고발한 첫 번째 지식인이자 30년 동안 이 문제를 다뤄온 지식인으로서 한국어판 발간 소감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니시오카 쓰토무] 저는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과 싸워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반일지식인들이 한국의 종북좌파와 합심하여 쌓아올린 이 거짓말이 특히 ‘일본통치시대’(‘일제시대’의 일본식 용어)를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 가운데에서 거대한 성이 되어 우뚝 서게 됐습니다. 그래서 설마 내 투쟁의 기록인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날이 내 생전에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거짓과 싸우고 있는 한국의 벗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워치] 이 책에서는 1)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되었다(강제연행설), 2) 위안부는 성적 학대를 받으며 그 생활을 강요당했다(성노예설), 이 두 가지 속설을 여러 근거들을 제시하며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주요 논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설’은 일본의 반일 좌파를 대표하는 ‘아사히신문’이 지난 1991년 전사적으로 전개한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조선인 여성 20만명을 강제연행했다’고 하는 ‘위안부 강제연행 프로파간다’의 결과, 일본 사회를 일시에 속이면서 그것이 한국으로 전파, 확대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아사히신문이 근거로 했던 것은 1) 가해자라는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 2) 피해자라는 김학순의 증언 3) 일본군 문서 세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검토해 보면 그것들은 ‘강제연행’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1) 요시다의 증언은 일본군이 조선 제주도에서 여자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조선 여성들을 강제연행하여 위안부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고서 일본군과 함께 폭력적인 연행과 강간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시다 증언의 영향으로 1980년대부터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여자정신대라고 하는, 단지 근로동원을 위한 공적 제도가 조선에서는 위안부를 강제연행하는데 이용됐다는 잘못된 학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요시다 증언은 제주도 현지 신문의 조사나 또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조사 등의 결과로 거짓 증언임이 밝혀졌습니다. ‘아사히신문’ 역시 2014년 요시다 증언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하고 기사들을 철회했습니다.


2) 김학순 씨는 1991년 6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주장하고 나선 인물입니다만, 그녀는 빈곤의 결과로 친어머니가 기생권번에 팔아넘겼으며, 이후 권번의 양아버지 손에 이끌려 중국의 일본군 위안소로 갔었다고 처음부터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가 “여자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쟁터로 연행된 옛 조선인 위안부”라며, 김 씨가 말하지 않은 경력을 날조했었음을 저는 이미 1992년도부터 지적해왔습니다. 김학순 씨 이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고 나선 다른 옛 위안부들의 경우도 그 증언들이 원래 내용에서 한참 동떨어진 내용으로 변한다든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들 뿐이어서, ‘강제연행’의 증거로는 삼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3)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발견해 아사히신문이 1992년 1월 크게 보도한 군 문서라는 것도 일본 국내에서 군을 핑계로 대면서 민간업자들이 불법적인 위안부 모집을 하고 있는 것을 단속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아사히신문은 “위안부에 일본군이 관여한 증거”라며 크게 보도했지만, 일본인 위안부를 범죄에서 지키려고 하는 관여로 ‘강제연행’의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성노예설’은, 저와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연구에 의해 ‘강제연행’이었음을 증명할 수 없게 된 후, 아사히신문이나 일본인 좌파 변호사, 학자들이 떠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안부는 ‘연계봉공(年季奉公)’ 계약을 맺은 공창의 일종이라는 사실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위안부는 관련해 대가를 받았으며 그것을 ‘전차금 변제’에 충당했습니다. 군 위안소에서는 업자가 위안부를 착취하지 않도록 엄격한 단속이 이뤄져 왔고, 통상 계약기간 2년 이내에 전차금을 모두 갚는 것이 가능했으며, 다액의 저축이나 송금을 한 위안부도 많았습니다. ‘위안부’는, 인격이 인정되지 않고 사람이 매매의 대상이 되는 ‘노예’와 다른 것입니다.




[미디어워치] 징용공 문제에 이어 위안부 문제도 일본의 좌파 지식인들이 주도해 만들어낸 역사 조작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권위의 일본 외신으로 늘 인용되어온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 ‘날조와 조작의 성채’였다는 점은 한국인들 대부분 몰랐던 사실일 것입니다. 한 국가가 중요 언론사가 이정도 초대형 외교참사를 일으켰는데 관련 일본 내부에서의 대응이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위안부 문제를 왜곡해온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도 아직 영향력을 누리고 있는지요?


[니시오카 쓰토무]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날조 보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2014년 이후 상당히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사히신문의 인쇄부수는 그 무렵부터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인권 문제가 사안의 본질”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사히신문에서 위안부 보도를 담당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날조 보도 문제를 비판한 저와 저널리스트인 사쿠라이 요시코 씨 등을 대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만, 재판은 저와 사쿠라이 씨의 승소로 끝났습니다. 특히 제 재판에서는 우에무라 씨가 쓴 김학순 씨에 관한 기사에 대해서 제가 날조 보조라고 평가했던 것을, “(우에무라가) 의도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쓴 사실이 인정된다”며 “진실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라고 밝히고 나선 이와 관련한 아사히신문의 기사가 날조였음을 재판소가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지금까지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사히신문에 대한 고발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한편, ‘성노예설’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요시미 교수에 대한 일본 사회 일반의 평가는 매우 낮아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학계는 반일 좌파가 실력을 행사하고 있기에 학계에서의 요시미 교수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디어워치] 교수님께서 옛 위안부 첫 증언자인 김학순 씨에 관한 특종 보도로 위안부 문제를 촉발시킨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씨와 소송에서 결국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승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의 출간 거의 직전의 낭보여서 더 뜻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소송  배경과 내용에 대해서도 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전에는 김학순 씨의 변호사인 다카기 겐이치 변호사로부터도 역시 이 책으로 인해 소송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그 사연도 같이 들려주십시오.


[니시오카 쓰토무] 우에무라 씨는 1991년 8월과 12월 김학순 씨에 관한 기사 두 개를 작성했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다음 세 가지의 이유를 들어 ‘날조 기사’라는 비판을 해 왔습니다.


1) 김 씨가 말하지 않은 이력을 덧붙였다는 점. 즉, 1991년 8월 기사에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전쟁터로 연행된 옛 조선인 위안부”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자신의 경력을 말하면서 그 당시부터 사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여자정신대’라는 근로동원제도 아래에서 위안부가 됐다고는 말한 바가 없습니다. 우에무라 씨 역시 그가 ‘여자정신대’로서 연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사를 작성했을 당시부터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2) 김 씨가 반복해서 말해왔던 경력을 쓰지 않은 점. 김학순 씨는 반복적으로 자신은 빈곤의 결과로 모친에 의하여 기생권번에 팔렸으며, 거기에서 기생 수업을 받은 후, 권번의 양아버지에게 끌려가 위안소로 갔다고 말해왔지만, 기사에서는 이 사실을 숨겼습니다.


3) 이해관계자였다는 점. 우에무라 씨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구하는 재판을 일으킨 태평양전쟁피해자유족회 간부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 재판의 원고 중 한 사람이 김학순 씨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관계하고 있는 재판이 유리해지도록 사실에 반하는 기사를 작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우에무라 씨는 2015년 1월 9일, 자신이 쓴 기사가 ‘날조’라는 비판을 계속 받아서 가족과 주위 사람들까지도 공격 대상이 된다면서 대리인으로 170명에 가까운 변호사를 내세워 저와 출판사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대해 계 1,650만 엔의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했습니다. 2019년 6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는 우에무라 씨에 대한 제 주장과 관련해 1)에 대해서 ‘진실성’을, 2)와 3)에 대해 ‘진실 상당성’을 인정, 우에무라 씨의 배상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020년 2월 6일 도쿄고등재판소가, 2021년 3월 3일에는 최고재판소가 이 판결을 지지했고, 제가 최종적으로 승소했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기자 출신으로서, 아사히신문을 사직한 후에 지금은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라는 좌파 주간지 출판사의 사장 겸 발행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에는 언론으로 반론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재판으로 문제해결을 호소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저는 김학순 씨의 변호인이었던 다카기 겐이치 씨로부터도 ‘명예훼손’으로 피소됐고, 마찬가지로 최고재판소까지 간 결과 2015년 1월 14일 승소했습니다. 다카기  겐이치 씨에 대해서, 저는 제 책(‘한국 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위안부의 진실’)에서 그가 김학순 씨의 인권을 진실로 생각했더라면 강제연행의 피해자가 아니라 부모가 팔아넘긴 피해자였음을 안 시점에 재판을 중지하도록 설득했어야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김 씨를 앞에 내세워 위안부 강제연행이라는 거짓말의 주인공인 것처럼 이용했던 사실, 제가 비판을 제기하자 또 새로운 재판의 원고를 찾으러 간 행동을 했던 사실을 두고서 저는 ‘반일 일본인’이라는 표현으로써 다카기 겐이치 씨를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사실 등을 이유로 다카기 겐이치 씨는 소를 제기한 것입니다만, 2014년 2월 도쿄지방재판소는 “기술한 전제 사실의 중요한 부분이 진실이거나 또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공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집필돼 있으며, 논평의 영역을 일탈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다카기 겐이치 씨가 제기한 소를 기각했으며, 도쿄고등재판소와 최고재판소 역시 1심 판결을 지지했습니다.


[미디어워치] 90년대 초에 김학순 씨가 첫 증언을 하자마자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니시오카 선생님이 바로 적발하셨습니다. 또한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학술적으로 총정리한 책인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이 1999년에 일본에서 발간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서의 이런 논의를 전혀 몰랐습니다. 한국에 수많은 일본 기사와 일본책 번역서가 나오고 있지만, 한국의 언론과 출판은 “일본 극우”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들의 ‘주장’만 그대로 소개해줄 뿐, ‘근거’는 절대 소개해주지 않습니다. 한국의 이런 검열 문화와 양국 민간의 솔직한 소통 노력 부족이 위안부 문제의 중요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니시오카 쓰토무]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한국에는 강고히 구축된 거짓말의 성이 너무나도 거대해 보였으므로 위안부에 관한 우리 주장이 한국에서 소개될 날은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반일종족주의’ 출판과 위안부 동상 철거 운동의 개시, 그리고 2020년 정대협과 옛 위안부 간의 내분 등을 거쳐, 한국에서도 진실 위에서만 일한(日韓)의 우호가 있다는 신념 위에 서 있는 양심 있는 학자, 저널리스트, 운동가, 정치가들이 출현하고 있음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경의를 표합니다.


[미디어워치] 입장문에 불과한 ‘고노 담화’가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로 마치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왕’처럼 대접받고 있습니다. 관련해 일본에서도 고노 담화에 대한 계승, 철회, 수정 등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니시오카 교수님의 입장은 어떠하신지요? 


[니시오카 쓰토무] 한국을 위시한 국제 사회에서 고노담화(河野談話)는 오독되고 있습니다. 고노담화에서도 일본 정부는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설이나 성노예설을 인정한 사실은 없습니다. 단지, 당시 김영삼 정권 측이, ‘보상은 한국에서 할테니 강제성을 인정해 주면 좋겠다’는 요구를 수면 밑에서 강하게 해 왔기 때문에, 외교 문서로서는 일부러 오해를 받을 여지를 만드는 문서를 발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 한국 정부가 그 약속을 깼으므로 일본 사회에서는 강한 ‘혐한’ 의식이 생기게 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외교청서’에서 강제연행·성노예·20만이라는 세 가지 거짓말에 대해 명확히 반론을 펼치면서, 그 후로 그러한 반론을 외무성 공식 웹사이트나 유엔(UN) 등을 통해 반복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관민이 협력해 고노담화의 오독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국제 홍보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디어워치]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도 위안부 문제로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자주 거론됩니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사실관계가 너무 잘못되어 있어서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폐기시켜야 한다는데 별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폐기, 그리고 위안부 문제 진실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한국, 미국, 일본 지식인들이나 시민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니시오카 쓰토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이미 유엔 인권위원회(당시)에 제출된 역사적 문서입니다. 그리고 쿠마라스와미 씨 역시 이제는 더 이상 유엔 조사관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쿠마라스와미 씨가 바란다고 하더라도 보고서를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당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연구 성과를 반영한, 새로운 보고서를 내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고쳐 쓰는 것이죠.


올해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옛 위안부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 정부는 재판 그 자체가 ‘주권면제’라고 하는 국제법에 위반하는 것으로, 처음부터 재판에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만일 한국 국내의 일본국 재산이 압류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일본과 한국 양국 관계는 외교단절 직전까지 악화되겠지요. 그때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한국의 옛 위안부들 가운데에도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는 것을 희망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충분히 준비한 후에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소송에 임하여 재판소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논증을 할 수만 있다면 강제연행·성노예설을 부정하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판결이 나온다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보다도 단연코 권위가 있는 국제 문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일본과 한국의 상반된 주장이 병기되기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판결에 일본의 입장이 확실히 적히기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사실상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워치] 이 책을 통해서 한국에서는 “일본 극우의 두목”처럼 취급받는 아베 신조 전 수장이, 일본에서는 어떻든 일본의 국익을 위해 원칙을 지키고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이유도 이해가 갔습니다. 납북자 문제와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연계되고, 또 이 문제로 인해 아베 전 수상이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 상황과 구조도 이해가 갔습니다. 아베 신조 전 수상이 물러난 것과 무관하게 그의 정치적 유산은 앞으로 일본 외교안보 문제에서 계속 계승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또 한국인들도 아베 신조 전 수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니시오카 쓰토무] 아베 신조 전 일본 수상은 일본의 역대 수상들 가운데 유일하게 수상 재임 중에 한국에 의한 자유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13년 3월 수상 관저에서 아베 수상은 한국의 저널리스트인 조갑제 기자와 이례적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아베 수상과 조 기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조갑제 : “한국에는 북한이 저지른 핵개발, 강제수용소 등 인권탄압과 납치 등 국제범죄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통일을 통하여 북한정권을 소멸시키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자유통일에 대한 총리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베 신조 : “북한에선 정말로 인권이 탄압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 민주적이며 자유롭고,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수많은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인권이 현저히 침해받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 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아베(安倍) 日本 총리, 韓國 언론과 '최초' 인터뷰’)


또, 같은 인터뷰에서 아베 수상은 한국의 언론들이 자신을 ‘극우’라는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조갑제 : “한국의 언론은 대체로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일부 언론은 현 일본정권을 극우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는데,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기면 자위대 명칭 변경 및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개헌을 시도할 생각입니까?”


아베 신조 : “저의 정책 자체가 극우적이라고 종종 한국의 매스컴으로부터 비판받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정권에서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킨 것, 그리고 지금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된 해석의 검토를 시작한 것, 또한 자민당이 헌법을 개정한 후 자위대의 명칭을 국방군으로 바꾸기로 결정을 한 것들에 지적을 받았습니다. 과거 서울대학교에서 소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제가 방위청을 성(省)으로 승격시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함으로써 일본을 극우적인 군국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까? 한국의 방위를 담당한 정부기관은 다른 부처보다 격이 낮은 기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도 채택하고 있거나 그렇게 하려고 하는, 안전보장 체제와 비슷하게 되려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칭에 있어서도 한국도 군대입니다. 저의 주장이 극우적이라면 세계 국가들 모두 극우국가가 됩니다.”


아베 수상의 이 발언은 자신이 두 번째 수상이 된 지 2개월 되던 때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에 있은 것입니다. 아베 수상의 이 같은 메시지에 박근혜 정권은 진지하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박근혜 정권 시절 일한관계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디어워치] 이번 책을 통해 ‘현재의 명백한 인권 문제’를 덮기 위해서 ‘과거의 불분명한 인권 문제’를 끄집어내어 논란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이 쓰는 상투적 수법임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를 확실히 종결시키기 위해서도, 단지 거짓과 싸우는 것 뿐 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납북자 문제, 북한 인권 문제를 더 공격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어질 수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니시오카 쓰토무] 동감입니다. 일본의 자유·보수 세력은, 앞서 말한 아베 신조 수상의 발언으로 대표되듯, 한국에 의한 자유통일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일한(日韓)의 자유·보수 세력은 역사 문제에서는,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 불일치를 서로 인정하면서 일치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음)라는, 1965년 일한기본조약의 지혜로 돌아가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북한의 세습 독재 세력과 함께 싸워야 합니다.


[미디어워치] 하버드대 교수 램자이어 교수 논란 문제로 한국 주류 언론에서는 연일 조명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들 중에 흥미로웠던 것 중에 하나가,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공히 역사수정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이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면서 네트워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한·미·일 진실 동맹이 서서히 결속되고 있는 것과 관련, 위안부 문제를 날조해온 친중좌파, 친북좌파 세력의 공포랄까, 그런 것이 엿보이는데요. 일본에서의 램자이어 교수 논란 논의는 어떠했는지도 듣고 싶고, 또 이 논란을 역설적으로 어떻게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교수님의 지혜도 듣고 싶습니다.


[니시오카 쓰토무] 램자이어(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언론과 학자들의 비판들 중 대부분은 이미 일본 국내에서의 논쟁에서 결론이 난 부분이 많습니다. 램자이어 교수에 대한 비판들은, 일본어로 공개된다면 즉시 수많은 반박으로써 망신을 당할 수준의 것들입니다. 그 점에 대해 진실을 존중하는 일본의 학자, 저널리스트, 정치인들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에서의 연구 성과를 한국어나 영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작업이 급선무입니다. 제 졸저가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데에는 이러한 의미에서 시기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워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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