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명예훼손 형사재판 항소심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2부(나)의 주심판사인 이훈재 부장판사가 언론의 자유는 물론, 사법의 언론 존중을 강조하는 취지의 논문을 썼던 것으로 확인돼 향후 재판 전개에 있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항소심 재판은 합의부에서 세 사람의 판사에 의해 합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합의부는 재판장과 달리 다른 합의부원인 주심판사와 배석판사가 재판장의 견해와 다른 독립적 판단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합의부는 법정에서의 소송지휘는 재판장이 하지만 특히 주심판사가 사건을 책임지고 담당하면서 실제 판결문 작성을 맡는다. 형사항소4-2부(나)의 경우 더구나 비슷한 경력의 판사로 구성된 경력대등재판부인만큼 주심판사인 이훈재 판사의 소신과 사상에도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훈재 “사법과 언론은 실체적 진실 규명으로 사회 정의 실현하는 공동선 추구해야”
이훈재 판사는 예비 법관 시절인 2002년 10월에 ‘사법 관련 보도·논평의 자유와 한계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학위논문을 제출, 이로써 석사학위 인준을 받았다. 해당 학위논문은 언론의 사법 관련 보도·논평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서 미국, 일본과 같은 언론 자유 선진국의 법령, 판례를 비교 제시하여 논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훈재 판사가 논문에서 다룬 언론의 사법 관련 보도·논평이란, “법원의 재판이나 판결에 대한 보도·논평뿐만 아니라 수사와 공소제기, 소송대리와 변호 등 사법 절차 전반에 대한 보도와 사법행정, 사법구성원 등에 대한 보도·논평 등을 모두 의미하는 용어”다. 관련 검찰 수사와 헌재 결정을 이끌어낸 JTBC 방송사의 과거 ‘최순실 태블릿’ 관련 보도·논평, 그리고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던 당시 미디어워치의 관련 보도·논평의 경우도 정확히 이 개념에 포함된다.
이 판사는 논문 요약(초록)에서 사법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 “각자의 분야의 특성으로 인하여 그 기능과 작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이고 대립·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상호 견제·감시하는 관계”라고 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공동선을 추구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해 견제, 감시 및 통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이를 위해 상호 협력하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법과 언론) 양자는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당위라고 할 수 있는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 열린 마음을 갖고 꾸준한 대화를 통하여 서로 상대 직역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대의 기능과 위상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으며, “사법과 언론 각자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바람직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훈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보장되어야”
이훈재 판사는 본인이 예비 법관으로서 사법 영역에서 종사할 입장이었지만 언론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논문에서 내내 드러내 보였다.
그는 “비록 언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고 일정한 경우 제한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언론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쉽게 이루어져서는 안됨이 명백하다”고 하는가 하면, “사법도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의 최대한의 보장이 결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법을 실현하는 것이 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언론을 최대한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이 판사는 언론의 사법 관련 보도·논평이 갖는 여론재판, 인권침해 문제는 경계했다. 이 문제는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 논의이기도 하다.
그는 “언론은 피의자가 체포되기만 하면 그 자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더구나 기소되면 유죄가 확인된 것처럼 취급하여 보도·논평함으로써 법률에 의한 ‘무죄 추정의 법칙(法則)’은 유명무실하게 되고 실제로는 언론에 의한 ‘유죄 추정의 언칙(言則)‘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는가 하면, “법관과 검사도 사회구성원의 일원인 이상 유·무죄의 사법적 판단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양형과 구형 등의 부분에 있어서는 언론의 보도·논평과 이로 인해 형성된 여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할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논문에서 이 판사는 특히 형사사건 보도에 있어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그리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떠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면서 “피의자나 용의자 등의 적절한 용어를 사용하고 어떤 혐의로 체포 또는 기소되었다는 형식으로 보도하여야 한다”고 언론에 요청했다. 이 판사는 “문구를 단정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유죄임을 단정하는 내용의 보도도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이 판사는 피고인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 경우에서조차 “피고인을 악인시하고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그러한 범죄의 발생 원인, 사회에 끼치는 영향, 예방 방법 등에 대하여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논평하는 보도 태도를 보여야 한다”면서, “어느 경우든 판결의 일부 설시를 확대 해석하거나 전체적인 맥락이나 결론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여 이를 오도하는 경우 피고인, 피해자 등 사건관계인의 인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사법권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언론에 당부하기도 했다.
이훈재 “언론은 수사기관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건을 보는 자세를 배워가야”
한편, 이훈재 판사는 논문에서 권력기관인 수사기관의 언론활용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침해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뤘다
그는 “범죄 보도에 있어서 수사기관에의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면 수사기관이 수사활동의 과시, 수사 편의나 수사기관 자신을 위한 여론 조작, 여론 유도를 위해 언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며 “결국 범죄 보도가 수사기관 측의 의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를 증가시키게 되고 이것은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는 보도가 행해질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2016년말부터의 JTBC 방송사와 검찰, 특검의 ’최순실 태블릿‘ 관련 일방적인 보도와 수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판사는 수사기관에 의한 여론 조작, 여론 유도를 막기 위해서는 언론이 자율성,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수사기관의 정보뿐만 아니라 피의자 등의 정보가 '반대 취재'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언론은 피의자 등의 변호인을 찾아 전화를 하고 사무실을 방문하여 취재를 함으로써 수사기관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건을 보는 자세를 배워가야 한다“고 밝하기도 했다. 이는 이훈재 판사가 ’최순실 태블릿‘ 사건에 있어서 내내 주류적 관점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밝혀온 미디어워치 측에 우호적 입장에 설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논문에서 이 판사는 본인도 역시 사법기관 구성원이지만 권력 쪽에 속하는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자기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언론의 역할에 대해 기대감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그는 “언론이 수사기관의 수사 과정을 면밀히 주시하여 의혹이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촉진시키고 자체적으로 정보도 수집하여 수사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감시, 비판 및 협력을 하게 되면 올바른 수사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판사는 “언론이 법원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기초로 한 객관적, 논리적 비판(예를 들어 하급심의 잘못으로 피고인 또는 당사자가 불이익을 입게 되었음을 비판하는 논평,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하급심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이 지적한 잘못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논평, 대법원 판례의 일관성 결여를 지적하는 논평 등)을 한다면 법원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기 반성을 통해 발전을 이루게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 판사는 논문의 결론부에서도 “사법은 독자인 일반 대중의 상식적 입장에서 사법 관련 보도 논평을 하게 되는 언론의 직역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 각 분야의 모습과 입장을 신속하게 반영함으로써 사법에게도 사법 이외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시각을 전해주는 언론의 기능과 위상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법은 그동안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주의적이었다는 일반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사법의 입장과 기능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인바, 언론의 사법 관련 취재와 보도·논평에 대하여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는 ‘최순실 태블릿’ 사건에서 ‘반대 취재’의 모범을 보였다”
이훈재 판사의 학위논문을 검토한 변희재 본지 대표이사는 “미디어워치가 비록 왜소 비주류 언론사이나, ‘최순실 태블릿’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일방적 피의사실 흘리기 및 그에 유착한 거대 주류 언론사의 보도를 여론재판이자 인권침해로 파악하고 지난 수년여 간 그야말로 ‘반대 취재’의 모범을 보였다고 자부한다”면서 “이훈재 판사가 논문에서 밝힌 언론관은 그야말로 상식적인 언론관인데, 이에 따르면 미디어워치 기자들은 형벌이 아니라 훈장을 받아야 맞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계속해서 변희재 대표는 “이 판사가 존중을 해야 한다는 대상 언론 목록에 설마 검찰과 헌재 등 권력 편에 서 있는 JTBC 방송사와 같은 거대 주류 언론사만 있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며 “일단 이 판사 본인이 맡은 재판의 언론인들에게 먼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을 확실하게 적용해 ‘최순실 태블릿’ 사건에서의 실체적 진실 규명, 사회 정의 실현, 공동선 추구가 꼭 이뤄지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현재 태블릿 명예훼손 항소심 재판은 10월 29일 오후 3시 30분, 서울중앙지법 제422호 법정에서 피고인 변희재를 대상으로 한 마지막 피고인 신문 이후 결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