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정부가 제약사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중소형 제약사는 제네릭 제품이 매출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네릭을 다들 복사약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기까지 수천억에 많게는 조 단위의 투자 비용이 듭니다. 제네릭 출시에 성공하면 그나마 회사가 이익을 내고 재투자할 여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정부가 제네릭 약가를 내린다고 하면, 인건비와 원료비용, 전기료, 제품 포장비용과 운송료도 같이 내려 줄 겁니까.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기까지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력 제품의 가격을 오히려 내린다니… 이건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국내 10대 제약사 중 한 곳의 언론 홍보팀장이 필자와 만나 이같이 토로했다. 회사의 주력 제네릭 제품이 많은데, 정부가 약가를 기존보다 10%p 이상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제약사마다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비용이 오르고 있음에도 정부의 규제에 제품 가격을 올릴 수도 없었는데, 이처럼 약가만 대폭 낮추면 회사 운영과 향후 신약 연구개발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 국산 제네릭의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하며 올해 하반기 시행을 예고했다.
복지부는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의 53.55%로 책정한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40%대로 하향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또 저품질의 제네릭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걸 막겠다며, 동일 성분의 11번째 제품부터 5%p 씩 약가를 낮추는 ‘계단식 인하’를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국내 제약계가 제네릭 약품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제네릭 약가 역시 OECD의 2.17 수준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의료보험체계 및 약가 제도가 유사한 일본(40~50%), 프랑스(40%)의 사례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두 나라가 그동안 오리지널 대비 제네릭 약가를 꾸준히 줄여왔다면서, 일본의 경우 지난 12년간(2012~2024년) 30%p 그리고 프랑스는 6년간(2006~2012년) 10%p가 감소한 사례를 들었다.
정부의 이와 같은 개편안에 “소비자 입장에서 더 싼 가격에 제네릭 약품을 제공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제약업계에서는 “업계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약사마다 제네릭 약품 의존도가 큰 만큼, 제약사 수익의 상당수가 제네릭에서 나오고 있다.
복지부 발표대로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재보다 무려 13%p 이상 급격히 낮춘다면, 이것이 고용과 인재 양성, 품질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재투자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는 신약이 주력인 외국계 대형 제약사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고, 국내 중소형 제약사들은 수익성 악화에 따른 제네릭 약품에 대한 생산 및 개발 의지가 꺾이면서 고사 상태에 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 이대로 좋은가’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은 “글로벌 임상 3상만 해도 1000~3000억 원, 1~2조 원까지 드는데, 국내 제약사 영업이익률은 5% 미만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20~25% 일괄 인하하는 정책이 시행되면 상당한 충격이 생겨 신약 개발은 더 요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부회장은 “갑자기 약가를 현행 53.55%에서 40%대로 인하한다면 실질적으로는 20%의 인하가 되는 상황이라 어느 산업도 이러한 충격을 견딜 수 없다”며 “돈 없이는 신약 개발도, 기업 유지도 되지 않고 글로벌로 갈 수도 없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같은 토론회에서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약가 인하는 막대한 매출 감소를 유발하고, 수익성의 하락으로 인해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 축소를 고려해야 한다”며 “우수 인력 유치 차질 및 생산 포기와 연관된 인력의 구조조정도 고민해야 하는 등 생존을 위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제조 비용은 상승하고 판매 비용은 하락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제약산업 전반의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약가 인하가 강행된다면 주요 선진국과 같은 자국 제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쫓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약가 인하로 ‘윈윈’ 못하는 제약사와 소비자 그리고 정부
정부가 제네릭 약가의 규제를 주도하며 부작용을 낳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복지부는 이번 약가 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이에 관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여기에는 현재 한국의 제네릭 약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면서 비교 대상으로 ‘일본의 현행 40% 제네릭 약가’를 언급했다. 사실상 이것이 “한국도 제네릭 약가율을 40%로 인하해야 한다”는 명분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약가 통제 아래 제네릭 약가율을 지난 12년간 30%p나 낮추면서 현재 40%를 유지하는 일본의 제약업계는 회사와 소비자 그리고 정부가 모두 윈윈(WIN-WIN)을 외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19일, 일본의 방송국 <TV도쿄>의 유명 경제 다큐 프로그램인 ‘가이아의 새벽(ガイアの夜明け)’에는 일본 내 제네릭 의약품 공급 부족의 실태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방송에서는 일본 오사카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형 제약사 <사와이제약>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이 회사는 종업원만 약 3300명에 연 매출 1890억 엔(한화 약 1조 7890억 원) 그리고 일본 내 제네릭 판매 점유율 1위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데 <사와이제약>은 최근 제네릭 제품의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고 한다. 수요는 많은데, 그만큼의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정부의 의료비 삭감 정책에 따른 약가 인하에 있다고 지적했다. 제네릭 약가를 인하하자 회사의 매출 규모는 정체 또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인력 관리와 생산 능력 부족의 문제에 봉착했다.
특히 지난 2020년 12월, 일본의 제약사 <고바야시화공>의 수면제 성분 제네릭 의약품을 복용한 약 250명이 졸음운전 사고와 기타 부작용을 호소했고, 그중 2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제네릭 회사의 제품 생산 및 품질 관리 등에 관한 대대적 점검에 나섰다. 동시에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승인이 전보다 까다로워졌다. 또 이미 제네릭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회사들조차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행정처분을 내리며 생산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중소형 제약사가 큰 타격을 입으며, <사와이제약>과 같은 대형 제약사에 주문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공장을 증설해 생산라인을 늘리려고 해도, 앞서 언급했듯이 인력 부족 및 약가 인하로 인한 이익 감소가 전망돼 단기간 증산에 이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방송에서 조명한 <다쓰미화학>도 종업원 504명에 연 매출 116억 엔에 달하는 제네릭 업계에서는 중견기업이지만, 최근 제네릭 사업 규모를 축소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한 개의 생산라인에 여러 종류의 제네릭 약품을 만들면서 ‘소량 다품목 생산’ 형태를 하고 있다.
제조 약품의 종류를 바꿀 때마다 이 라인에서 ‘형체 교체’가 이뤄지고, 그때 다른 약품의 제조는 중단된다. 이렇다 보니 생산량은 애당초 소량에 맞춰지고, 대량 생산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시 그 배경에는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있었다. 일본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오리지널 제품의 반값부터 약가를 정해, 시간이 갈수록 그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라고 한다.
심지어 5년간은 의무적으로 같은 약품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이익률이 높은 새 제품에 대한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시간이 지나 약가가 싼 종류의 제품 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에 소량 다품목 생산에 맞춰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 내에는 약 330곳의 제약사가 있고, 이중 제네릭 의약품을 만드는 회사는 180여 곳이다. 그중 대기업은 일부이며 절대 다수는 중소 메이커지만, 제네릭 생산량과 매출 규모는 대기업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제네릭 약품 부족은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니며, 제약사뿐 아니라 약국에서도 공급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산케이신문이 오사카현 약사협회 전무이사의 인터뷰를 실은 보도에 따르면, 협회가 2024년 11~12월까지 제네릭 약품의 배송 상황을 회원사에 문의했을 때, 1581개 약국 중 약 5곳만이 발주한 물량을 제대로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약사마다 제네릭 약품의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약국의 70%가 공급 불안으로 정상적인 조제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비를 줄일 목적으로 제네릭 의약품의 사용과 개발을 장려해 그 의존도를 80%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정부의 제네릭 약가 통제와 약품 생산·개발에 따르는 원료 및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수익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소량 및 다중 품목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는 만큼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제네릭 의약품 공급 불안정이 4년 넘게 지속되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5월 의약품 및 의료기기법(의약품 및 의료기기법)을 개정안을 제정했고 11월 20일 발효됐다. 이에 정부는 제약회사 간 협력과 산업 구조조정을 지원 기금을 설립해 재정 지원에 나서며, 제네릭 의약품 생산량 확대를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제네릭 약가 인하가 제약사와 약국, 소비자에 혼란을 일으켰고,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기금까지 설립해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사회 개최해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에 대한 시행 유예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날 윤웅섭 이사장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약가제도 개편은 우리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 기반과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충분한 대책과 논의 없이 정부 주도로 이뤄진 제네릭 약가 인하의 충격적 결과는 앞선 일본의 사례가 제대로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윤 이사장이 언급한 대로 정부는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일본처럼 제약업계의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걸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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