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칼럼]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마지막 순간’에 미안하다

인싸잇=유용욱 주필 | 올해도 어김없이 설 연휴가 지나갔다. 속절없이. 모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웃음을 나누던 집은 다시 정적에 잠기고, 원근각지에서 모였던 가족들은 또 제각각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진다.

 

 

“몸조심해라”, “다음에 또 보자”는 늘 비슷한 작별 인사를 뒤로하고 차에 오르고는 서둘러 시골집을 벗어난다. 설에 모인 가족 중 그 누구도 이 이별이 영원한 헤어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던 풍경이기 때문이다.

 

명절 연휴 끝에 모였던 가족들이 시골집을 떠날 때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신다. 차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리면 이내 손을 흔들기 시작하신다.

 

자식들의 차가 골목을 돌아 저 멀리로 형체만 남을 때까지,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서 계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셔도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싶어 일부러 백미러를 피하기도 했다.

 

마트만 가면 널린 김치며 나물을 보따리에 억지로 쑤셔 넣어 건네주실 때면, 아내 눈치에 괜히 짐만 늘어난다고 투덜대기까지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투박한 손길에 담긴 ‘절박함’을.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기고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워보니 비로소 그 마음이 보인다. 아이와의 수많은 ‘마지막’은 늘 예고 없이 지나갔다. 어느 날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품에 안아준 날인지, 언제가 마지막으로 고사리손을 잡고 길을 건넌 날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빠 업어줘”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부모보다 앞서 걷고, 소꿉놀이 장난감 상자에 먼지가 쌓이는 변화는 조용히 찾아온다. 그 소중한 순간들이 끝났음을 깨닫는 건, 늘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다.

 

그때 어머니의 배웅도 그랬을 것이다. 당신께선 이미 알고 계셨던 게다. 자식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이번 설에 돌아서는 뒷모습이 어쩌면 당신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가능성을 말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눈에 담고 싶었고, 줄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쥐여주고 싶으셨던 게다.

 

“그땐 몰랐다”는 후회 대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당연하게 해오던 행동들을 멈췄다. 귀찮을 만큼 자주 걸려 오던 아이들 전화, 밥상머리에서의 잔소리, 늦은밤 화장실 가는 길에 손을 잡아주던 습관들.

 

그 소중한 행위들이 언제 멈췄는지 아무리 되짚어도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마지막이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우리는 조금 더 웃으며, 조금 더 여유롭게 그 시간을 건네주지 않았을까. 백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지던 어머니의 모습 속에 담긴 불안과 사랑을 왜 진작에 알아채지 못했을까.

 

설 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지금, 뒤늦은 미안함과 새로운 다짐이 마음 한편에 남는다. 그렇다. 마지막은 늘 예고 없이 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아이의 서툶을 조금 더 기다려주고, 부모님의 반복되는 옛날이야기를 조금 더 정답게 들어드려야 한다. 더 자주 안부를 묻고, 헤어질 때는 조금 더 천천히 돌아서며 더 오래 손을 흔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먼 훗날 그 언젠가 정말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땐 소중한 줄 몰랐다”는 후회 대신 “그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는 막내아들도 못 알아보시고 누워만 계신 어머니시지만, 오늘도 과거 그 어느 날 백미러 속 어머니를 떠올리며 가만히 다짐해 본다. 지금 내 곁의 당연한 이 순간들이 언젠가 가장 사무치게 그리워할 ‘마지막 장면’임을 잊지 않겠노라고.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