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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인싸잇>은 시중에 출판된 책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며,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정보와 상식, 공감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발전 방향 등을 논하는 여론의 창(窓)입니다.
* 일부 내용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책 구매 유도 및 책 내용 중의 상품 및 서비스의 홍보 의도는 전혀 없으며, 기사에 관련 내용을 실지도 않았습니다. |
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열풍이다. 남녀노소 챗GPT에 모르는 걸 물어보고 10초 안에 원하는 답을 얻거나, 과거 종일 포토샵을 부여잡고 머리를 싸매도 끝내지 못했던 이미지 작업도 챗GPT나 제미나이(Gemini)에 부탁하면 눈 깜짝할 사이 완료할 수 있다.
이제 오죽하면 AI를 두고 ‘슈퍼 싸이클’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면 어색해질 정도다. 그 슈퍼 싸이클의 정점에 올라탄 게 바로 AI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다.
이에 현재 전 세계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이 AI 슈퍼 싸이클 속에 주가 고공행진과 어닝서프라이즈의 실적을 만들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SK하이닉스다.
과거 하이닉스의 주가는 겨우 담뱃값보다 싼 1200원, 심지어 2001년 이후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135원까지 내려갈 정도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한낱 반도체 부품 공급 회사에 불과했다.
이 회사를 넘겨받아 이끌어 가는 건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지난 2011년 SK그룹은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놀랍게도 이후 불과 2년 만에 HBM이라는 제품을 출시해 메모리 반도체 패러다임을 바꿔놨고, 10년 만에 시가총액이 100조 원을 넘어섰다.
2026년 3월 현재 SK하이닉스는 시가총액 약 703조에 주가는 100만 원을 넘기는 초대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SK하이닉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무려 1억 8500만 원으로 집계되면서, 커리어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실시한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제는 연간 법인세를 5조 6000억 원이나 낼 정도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며, 해외에서 대한민국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를 책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SK하이닉스의 모험과 도전, 좌절, 성장 그리고 성공과 미래를 알고 싶었다. 아쉽게도 기존 언론보도나 유튜브 영상 콘텐츠만으로는 이를 충족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다.
문뜩 올해 1월 접한 한 보도자료 기사가 떠올랐다. SK하이닉스의 HBM 성공기를 담은 <슈퍼 모멘텀>이라는 책이었다. 당시 여러 언론사가 이 책을 소개하며 홍보성 기사를 쏟아 냈고, ‘SK하이닉스 측과 협업해 단순히 회사와 최태원 회장을 찬양하는 식의 내용만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서점에서 선 채로 이 책을 가볍게 읽어봤는데, 40페이지 정도만을 넘겨보더라도 그동안 자신이 알고 싶던 SK하이닉스의 모든 게 제대로 압축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주저하지 않고 책을 구매했고, 밑줄까지 쳐가며 3회를 정독했다.
SK하이닉스를 만든 ‘독함’과 ‘스마트함’
필자는 오랫동안 법조·사회부 기자를 해왔기에, 사실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회사와 구성원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외에 잘 알지 못했다. 물론 HBM이나 D램 등은 이제는 워낙 ‘상식의 영역’이 됐기에 개념과 용도, 특징 등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슈퍼 모멘텀>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메모리 반도체 기술과 제품, 관련 용어 등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를 해소해준 건 책을 공동 집필한 기자와 홍보 전문가 출신 6명이었다. 이들의 이력을 증명하듯 글 곳곳에는 방대한 취재 결과 속 핵심만을 담으려 한 필력 그리고 난해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 관련 용어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담은 내용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도전→성장→성공→위기→미래라는 책의 구성에서 이야기에 마지막에는 감동까지 더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전후 초창기의 이야기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기존 언론보도에도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이는 단편적이며 포장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당시 업무 현장에 있던 임직원들의 발언과 상황 묘사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흥미로웠던 건 이때 그들이 겪은 ‘고난의 역사’였다.
회사가 워크아웃 당시 고객사로부터 “회사가 곧 망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의 우려가 나왔고, 무급 휴직에 급여 삭감 등을 겪으며 한 달에 많게는 수십 명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부도 위기까지 봉착하자 고객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등 현시점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화가 소개됐다.
특히 당시 한 대학에 취업 설명회를 하러 갔지만 겨우 1명만이 나와 결국 이걸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도 담겼는데, 그가 설명회를 듣고 하이닉스에 입사해 지금까지 있었다면 누구도 부럽지 않을 부와 지위를 얻었을 테니 절로 혀를 찼다.
책에서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다음 해 만들어진 행동강령이 회사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그 행동강력의 핵심은 ‘독함’이었다. 흔히 영혼 없는 듯이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이나 이보다 조금 강한 ‘치열함’보다 더 센 ‘독함’이다.
회사는 사원들이 이 ‘독함’의 정신을 항시 지니기 위해 화장실에도 ‘독하게’라는 글자를 쓴 표어를 걸어뒀고, 현재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전쟁을 수행 중’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임원부터 아침 7시 출근을 솔선했고, 대충이라는 게 없었다. 오죽하면 훗날 당시 회사의 분위기를 ‘아오지 탄광’이라고 말할 정도로 밤낮없이 독하게 일만 했겠는가.
책에서는 SK하이닉스에 변화를 가져온 또 다른 요인으로 ‘스마트함’을 언급했다. 이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반도체 연구→개발→제조 단계에 대한 혁신적 변화였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이 기사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 구분에 변화를 가져와 제조에서 최종 수율을 만드는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이는 생산량의 효율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특히 ‘스마트함’의 극대화한 인력들이 모인 ‘코어 TF’를 만들어 각 단계를 관리·지휘할 전권을 주면서 핵심 기술 개발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이는 기술과 제품 생산량에 혁신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연구와 제조 사이의 벽을 허물어, 효율적 협업이 가능하게 했다. (책에서는 이 ‘코어 TF’가 회사 내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핵심 부서로 성장해, HBM과 HBM3E 개발에도 공헌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스마트함’은 향후 HBM 연구·개발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이를 제대로 짚었는데, 속도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속도 그 자체보다 속도를 올릴 구조의 혁신이라는 발상이 있었다. 또 HBM이 기존 평면의 공간을 3차원으로 바꾸기 위해 칩을 위로 쌓는 수직 개념을 메모리에 도입하려 했고, 그렇게 선행한 기술이 TSV였다.
사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서 필자가 처음 알게 된 전문 용어들이 많았다. 그중 TSV는 ‘뉴스 등에서 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개념’ 중 하나였다. 책에서는 SK하이닉스만의 TSV 개발 과정과 이를 통해 얻어낸 기술 혁신 등에 대해 상세히 그렸다.
국내 TSV 기술 개발의 퍼스트 무버는 삼성전자로, 하이닉스가 후발이라는 것도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세컨드 무버로서 가로·세로 각 1㎝ 크기의 칩에 미세 구멍 수천 개를 뚫는 게 겨우 첫 번째 단계인 TSV 기술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당시 얼굴도 모를 회사 사람들을 떠올리며 ‘얼마나 하루하루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이닉스는 ‘TSV 기술로 무엇을 만들어야 돈과 혁신이 되는가’라는 의식에서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온 게 HBM이었다.
책에서는 TSV 선행연구 개발을 담당한 안현 개발총괄 사장(CDO)의 말을 실었는데, 이는 TSV로 큰돈을 벌게 된 게 개발진의 예상보다 10년이나 늦었지만, 야구에 비유하자면 선행연구가 3할 그리고 HBM을 개발한 건 장외홈런을 친 꼴이라는 것이다.
사실 10년 만에 성공했다는 대목부터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TSV 기술을 활용한 제품에서 불량률 100%가 나오는 등 처참한 실패와 재시도가 있었다. 이를 극복했고, TSV를 활용한 HBM 역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경영인 최태원
<슈퍼 모멘텀>을 읽고 다시 본 사람은 최태원 회장이다. 사실 최 회장에 대해서는 그동안 그를 둘러싼 사생활 문제로 인해 다소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대중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경영인 최태원은 오늘날의 SK하이닉스를 만든 주역이라는 데 어떠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최 회장을 언급하는 부분이 꽤 많다. 마지막 챕터는 ‘최태원 노트’라는 제목으로 작가들이 그와 육성 인터뷰한 15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담기도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최 회장이 임원 100명과 일대일로 만나 면담한 일화였다. 당시 최 회장은 주로 의견을 경청하는 쪽이었다고 그리고 있는데, 안현 개발총괄 사장의 “반도체 공부를 많이 한 것을 느꼈다”는 한 마디가 크게 와닿았다.
사실 최 회장이 대학에서 물리를 공부했다고 하지만, 이론과 실습을 제대로 공부했다고 해서 반도체의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무엇보다 반도체로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의 리더를 보장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최 회장이 SK그룹 내에서 경영을 맡은 분야 중 반도체와의 큰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 회장은 당시 임원 100명과의 대화를 마친 후 “현재 하이닉스의 문제와 해법을 찾아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단순히 반도체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어 반도체 회사의 체질 개선과 발전 방향을 이미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것이다.
책에서는 회사 발전의 길목마다 최 회장의 결단의 순간을 조명했다. 그는 CEO들에게 수조 원 단위의 투자 결정을 믿고 맡겼다고 한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되, 책임은 함께 지자는 발상이었다.
최 회장의 이러한 판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엔지니어 출신 CEO를 적극적으로 기용한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리더가 이 분야의 전공자이며 기술자이자 전문가로서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기에 다른 직원들도 업무를 경솔하게 할 수 없었고,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동시에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질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주목했던 부분은 최 회장의 동물적 감각이었다. 이는 2012년 일본의 반도체 회사인 엘피다 인수에 관한 토론에서 드러났다. 당시 최 회장은 “우리가 먹지 않으면 빼앗긴다”는 취지로 다른 경영진들에 엘피다 인수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다수의 반대에 한발 물러섰다고 한다.
이후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이 인수했는데, 이후 D램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의 D램 시장이 이뤄졌다. 당시 최 회장이 밀어붙였다면 마이크론이 D램에 있어 하이닉스를 위협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최 회장은 자신의 결단을 밀어붙이는 행보를 보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최 회장의 행보에 대해 ‘고(Go)’ 또는 ‘직진’이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판은 스스로 짜되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도 본인이었다.
그런데 최 회장은 추진하는 일마다 운도 따라줬다. HBM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당장 이 제품을 제대로 활용할 소프트웨어가 없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그때 SK하이닉스의 영원한 파트너 엔비디아(책의 118페이지 각주는 ‘엔디비다’라고 잘못 기재가 돼 있다)가 나타났다.
당시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GPU를 그래픽 처리 전용 칩이 아닌 AI에 활용할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고, 여기에 HBM이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최 회장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젠슨 황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통해 제품 판매처 확대에 나섰다. 그러면서 2020년 코로나10 펜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PC와 노트북, 모바일 기기 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반도체 품귀 현상을 만들어 SK하이닉스에 엄청난 호재가 됐다.
물론 2022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불황에 처분 자산도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오픈AI의 챗GPT의 등장에서 시작한 AI 열풍으로 전 세계는 HBM 확보에 나섰다. ‘운도 노력한 사람에게 온다’는 말은 최태원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 회장은 그렇게 운이 따라주는 와중에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키우기 위해, 고객사뿐 아니라, 정부와 회사 임직원들, 협력사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담긴 최태원 회장의 인터뷰 중에서 그는 “하루 10억씩 벌어 연간 3650억 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라는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꿈을 소개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이뤄나가면 언젠가는 꿈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저는 그 꿈을 이뤄드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오너가 배우려는 회사, 자기 사업에 박식한 회사, 결단은 명확하되 책임을 지려는 회사, 전문가를 높은 자리에 앉힌 회사, 운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 꿈은 있되 쉽게 만족하지 않는 회사. 책을 읽고 경영인 최태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향후 AI 슈퍼 싸이클에 이은 또 다른 혁신 기술의 흐름 속에서도 살아남는 동시에 다른 어떤 회사보다 더 돋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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