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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신세계그룹이 주도한 일부 사업이 최근 사실상 정리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해당 사업을 주도한 정용진 회장에 대한 언론의 다소 비판적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이슈를 계기로 정 회장이 과거 추진한 사업 중 “실패했다”거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업계의 평가가 나오는 부분까지 새삼 끄집어내며, 사실상 그의 경영 능력을 깎아내리는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의 발단인 신세계그룹의 와인 사업 관련 결정의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이런 보도 내용이 다소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이슈의 발단은 최근 신세계그룹이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Shafer Vineyards)’의 영업권(경영권 프리미엄)을 전액 손상 처리하면서 비롯됐다.
실제로 지난 3일 이마트가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그룹의 부동산 개발사 신세계프라퍼티의 미국 자회사인 스타필드 프라퍼티스는 쉐이퍼 빈야드의 영업권 392억 원을 지난해 말 장부에서 전액 손상차손 처리해 0원으로 적시했다.
영업권은 순자산 가치 외 미래 초과수익을 반영해 부여한 프리미엄으로, 이를 0원으로 기재한 건 그만큼 향후 기대 수익성이 낮아 사업의 반등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자체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세계그룹 측은 쉐이퍼 빈야드 손상차손 회계처리에 대해 “주류 시장 수요 감소에 따른 손실을 선제적으로 반영한 조치”라는 취지로 언론에 설명했다. 현재 쉐이퍼 빈야드를 통해 추진해온 프리미엄 와인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고, 향후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속히 사업 비중을 축소한다는 판단이다.
이를 두고 다수의 언론은 ‘정용진의 또 다른 투자 실패’라며 비난에 가까운 논조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쉐이퍼 빈야드 인수에 정용진 회장이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당시에도 인수가액이 높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만큼, 이번 일로 고액 인수와 사업 실패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22년 스타필드 프라퍼티스를 통해 쉐이퍼 빈야드와 그 부동산을 약 3000억 원을 들여 사들였고, 그 과정에서 정용진 회장이 깊숙이 관여했다. 이에 쉐이퍼 빈야드는 ‘정용진 와인’으로도 업계에서 알려졌다.
당시 신세계 측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차원”이라며 인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유통 대기업의 첫 미국 현지 와이너리 인수 등으로 화제가 되는 동시에 “적절한 때 적절한 투자”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당시 국내 주류 시장 흐름을 되짚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시기, 가성비 있는 홈술·혼술 트렌드 확대로 국내 와인 소매 시장은 1조 원을 돌파하며 맥주를 제치고 21년 만에 수입 주류 1위를 차지하는 등 급성장했다.
실제로 2021년 12월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와인 수입 금액은 3억 3000만 달러(약 3900억 원)로 전년 대비 26.9% 늘었다. 특히 2021년 8월까지 와인 수입 금액은 3억 7054만 달러(한화 약 4381억 원)로, 이미 전년도 와인 수입 금액을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국내 와인 수입 시장을 ‘폭발적 성장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용진 외에도 와인 사업에 뛰어든 대형 유통사
신세계그룹은 이미 정용진 회장 주도로 지난 2008년 설립한 신세계와인컴퍼니(현 신세계L&B)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와인을 수입해왔다. 정 회장은 오래전부터 업계에서 와인의 감별과 양조 등에 대해 전문가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가 와인 사업에 관심을 두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행보였다.
정용진 회장에게 와인 사업이란 그저 ‘잘 아는 걸 잘하려 한 경영 행보’로 볼 수 있었다.
이에 지난 2019년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에 와인 PB 브랜드인 ‘도스 코파스’를 출시를 추진했다. 해당 브랜드는 초저가임에도 맛도 좋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와인 소비자들에 인기를 끌었고, 이를 비롯해 이마트 내 저가 수입 와인 제품이 국내 와인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가 와인 시장’을 잡은 정용진 회장으로서는 여기에 머물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사업 아이템으로 중고가의 프리미엄 수입 와인에 눈을 돌리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경영 행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2022년 국내 와인 소비가 늘고 와인 소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경쟁사로부터 프리미엄 수입 와인 사업 선점을 빼앗긴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어리석은 사업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프리미엄 와인 시장에 진출하려 한 신세계그룹이 선택한 게 쉐이퍼 빈야드였다. 이 브랜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프리미엄 와인의 경우 일반 소비층보다 와인 매니아들을 공략할 필요가 있고, 쉐이퍼 빈야드는 이 매니아 소비층 사이에서도 알려진 브랜드다. 이에 당시 정용진 회장의 선택에 지금처럼 “무모하다”거나 “실패가 뻔했던 전략”이라고 비난하는 언론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신세계에서 와인을 단순히 수입하는 걸 넘어, 현지 양조장에서 직접 생산해 들여오기로 하면서 경쟁사와 차별화된 전략을 세웠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특히 신세계L&B는 와인숍 ‘와인앤모어’의 매장 수를 46개까지 늘리면서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를 젓고 있었다.
당시 국내 와인 소비 열풍에 관련 사업을 확대한 대형 유통사는 비단 신세계그룹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전문 법인을 세우면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2022년 와인 수입·유통 계열사인 ‘비노에이치’를 설립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프리미엄급 와인 100여 종을 계약했다. 당시 비노에이치는 유기농·프리미엄 와인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라인업을 구축해 소비자 공략을 노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롯데그룹은 지난 2021년 12월 롯데마트 잠실 제타플렉스에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 1호점을 개점했다. 당시 보틀벙커 1호점의 오픈 1년간 매출은 기존 롯데마트 잠실점 와인 매출 대비 6배 증가했다. 이에 롯데마트는 보틀벙커를 창원, 광주에도 열었다. 그러다 롯데칠성음료를 통해 2022년 와인 복합공간 ‘오비노미오’를 운영하는 등 와인 사업에 공을 들였다.
한화갤러리아는 다소 뒤늦게 2023년 6월 와인 수입·유통사인 ‘비노갤러리아’를 설립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비노갤러리아는 고급 와인에 중점을 두고 백화점과 연계한 마케팅 전략을 세웠고, 2024년 10월 갤러리아명품관에 프리미엄 와인숍 ‘더 비노 494’를 론칭했다. 사실상 신세계그룹만큼 프리미엄 와인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이다.
대부분 목표 달성 못했는데, 비난은 ‘정용진 만의 몫’인가
코로나 엔데믹 이후 이들 유통사들 모두 와인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내 와인 소비가 줄다 보니 수입량도 급감했는데, 실제로 당시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 와인 수입량은 2021년 7만 6000여 톤으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서서히 하락하다 2024년에 전년보다 약 20% 줄어든 약 5만 6000톤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비노에이치’도 2023년 매출은 39억 4000만 원으로 전년(22억 3000만 원)보다 늘었지만, 그해 2억 5000만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 상반기에만 3억 8000만 원의 당기순손실에 빠졌다. 법인 설립 당시만 하더라도 2024년 말까지 연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롯데칠성음료도 2023년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14.7% 줄어든 849억 원에 그쳤고, 2024년 상반기에도 407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6% 감소했다.
다시 말해, 와인 수요 감소에 따른 폭탄을 맞은 건 비단 신세계그룹만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여기에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신세계L&B는 와인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큐레이션 서비스 제공에 나섰고, 이미 이때부터 프리미엄 와인에 중점을 두기보다 시장 수요에 맞춘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 구성을 재구성하는 전략을 짰다. 판매가 부진한 브랜드의 운영을 종료하고,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제품의 수를 줄여 나갔다.
다른 회사들도 와인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양적 성장보다, 비용 감축과 사업 효율화 등을 통한 수익성 중심의 구조 개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신세계L&B는 국내 와인 수입 업계 1위를 지키고 있었고, 지난해 1분기 전년도 10억 원에 달했던 분기 순손실을 4억 원 흑자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주목해 볼 부분은 국내 와인 수입액은 엔데믹을 기준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최근 수입량은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달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25년 와인 수입액은 4억 3428만 달러로 전년(4억 6211만 달러) 대비 6.0% 감소했다.
그런데 수입량은 5만 6634톤으로 2024년보다 8.8%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와인 소비가 줄었다기보다, 저가 와인으로 소비 성향이 이동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수치가 트렌드를 증명하고 있는 만큼, 재빠르고 현명한 유통사라면서 프리미엄 와인 사업보다 가성비에 맞춘 와인 제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신세계그룹이 쉐이퍼 빈야드 관련 사업의 축소에 나선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움직임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회사 나름의 경영 전략 수정을 두고 다수의 언론은 정용진 회장이 또 추진한 사업에 실패했다며 비난에 가까운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들에 “현 상황에서 프리미엄 와인 사업에 성공한 대형 유통사가 과연 있는지 살펴봐달라”고 하면, 그 비난의 근거도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남들도 다들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하는 사업의 규모를 축소해 적절한 시기, 적절한 출구전략을 짜는 걸 실패한 경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업이 기대했던 대로만 흘러간다면 누가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겠는가. 또 기대했던 바를 현재 시점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그걸 실패로 단정한다면, 누가 또 다른 도전을 하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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