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한민철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제일모직-삼성물산 불법 합병 의혹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벌써 9개월이 흘러가고 있다. 이 사건의 1심부터 최종심까지 법원이 흔들림 없이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고, 이에 그동안 검찰과 언론, 일부 정치권을 통해 제기된 ‘이재용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합병’은 죄가 없는 동시에 사실무근으로 사법적 결론이 내려졌다.
이재용 회장과 삼성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떠올리기도 싫을 법한 이 사건이 민사 법정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에서 이 부당한 합병으로 인해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며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정용신)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법인과 이재용 회장,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원고 국민연금은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핵심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 비율이 적용돼,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이에 따른 손해배상금 약 5억 원을 청구한다는 취지였다.
필자는 이재용 회장 등에 대한 제일모직-삼성물산 불법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 사건 재판을 취재하고 그 기록을 담은 책 「이재용, 세기의 재판」1부와 2부의 저자다.
무려 3년이 넘는 역사적인 재판을 몸소 빠짐없이 법정에서 보고 듣고, 적고, 이해하고, 기사도 쓰고, 심지어 수백 페이지 분량의 책도 제작한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라면 사건 당사자들만큼이나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만큼 이 사건 재판에서 1·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에 대해 그 어떤 절차적 하자나 판단의 오류가 없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이번 민사 사건을 제기한 시점은 지난 2024년 9월경으로, 아직 이 회장 등에 대한 형사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후 형사 사건 재판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그 어떠한 불법성이 없었다는 게 대법원으로부터 확정된 만큼, 이 민사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것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불법 합병 의혹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국민연금 관련 부분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이 의아함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로 삼성물산 흡수... 이재용 지배력 ↑ 목적”이라는데
그동안 특검과 검찰이 2015년 5월 전격 발표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행위라고 주장한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2014년 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는 이재용 회장이었다. 제일모직은 상장 직후 ‘대주주 프리미엄’ 등에 주가가 연일 오르고 있었는데, 아쉬운 점은 이 회사가 지분을 보유한 삼성그룹 내 핵심 계열사는 삼성생명(19.3%) 정도가 고작이었다.
당시 이건희 선대회장이 와병으로 쓰러진 상황에서, 이재용 회장으로는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지출을 최소화하되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한 게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 핵심 계열사 다수에 대한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걸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1분기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1%)와 삼성SDS(17.1%)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 중이었다. 이에 삼성물산은 그룹 내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재용 회장으로서 아쉬운 부분은 삼성 오너가(家)가 당시 삼성물산에 대한 보유 지분율이 매우 취약했다는 점이다. (2012년 말 기준 삼성 오너가의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이건희 회장의 1.37%가 유일)
만약 제일모직에 유리한 비율로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한다면, 이재용 회장으로서는 이 합병 하나만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사의 최대 주주에 등극해, 삼성물산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와 삼성SDS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간접 보유하면서 그룹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었다.
상장사 간 합병 시 합병비율은 주가로 산정하는 만큼,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조성할 목적으로, 제일모직의 주가가 높은 동시에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을 때를 노려 무리하게 합병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목적을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이 합병으로 보유 지분의 가치가 떨어졌고, 그 손해에 따라 이번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물론 2015년 7월 17일 당시 국민연금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에서 최종적으로 합병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는 이재용 회장이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동원해 박근혜 정부에 합병 청탁을 넣기로 마음먹고, 정권 비선실세의 딸에게 승마용 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가 막후에서 운영하는 재단에 금전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청와대를 통해 국민연금의 주무 기관인 보건복지부에 압력을 넣어 부당하게 합병 찬성을 강요한 결과라는 것이다.
연금 내부에서 굳어가고 있던 ‘합병 찬성안’
그렇다면 가장 먼저 당시 국민연금 측이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보건복지부의 강요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한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2015년 5월 26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결의 직후, 내부적으로 합병에 찬성하는 방향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부서도 아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 주식 투자 수익률을 담당하는 주식운용팀에서 이러한 검토 의견을 내부에 공유했고, 그렇게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에도 이 같은 내용이 보고됐다. 다음은 국민연금 책임투자팀장이었던 정 아무개 씨의 이재용 회장에 대한 형사재판에서의 법정 증언이다.
문 : 증인에게 2015년 6월 2일 자, 「물산-모직 합병분석 이사장 1차 보고」 문건 제시합니다. 여기 보시면 ‘본건 합병의 성공 가능성’이라고 돼 있는데, 관련해서 ‘삼성물산의 경우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14.27%로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의 주식 매수 청구권이 중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죠.
답 : 네.
문 : 또 하단에 붉은 글씨로 된 부분을 보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합병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나 주가가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 대비 하락하는 경우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라는 의견이었죠.
답 : 이것은 리서치팀의 의견이었습니다.
…(중략)…
문 : 2015년 6월 2일 리서치팀의 참고자료 문건 제시합니다. 리서치팀은 합병의 가장 큰 변수가 7~8월경에 있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라고 봤고, 회사에서도 합병 무산을 방지하기 위한 주가 부양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망했죠.
답 : 네, 그렇습니다.
문 : 이를 보면, 이때까지 리서치팀은 본건 합병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입장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답 : 네,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주식실의 의원은 찬성 의견이었습니다.
…(중략)…
문 : 물산-모직 합병분석 이사장 1차 보고 문건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7면입니다. 리서치팀이 보고한 내용을 보시면 ‘합병 후 삼성물산은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할 것으로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어서 주가 상승 전망이 있다’라고 합병 이후 시나리오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죠.
답 : 네, 그렇습니다.
문 : 또 중간 부분 보시면, 합병비율이 결정된 두 종목의 주가는 연동돼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분석도 하고 있죠.
답 : 네, 맞습니다.
-2022.4.7. 서울중앙지법 2020고합718 사건, 증인 정□□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이재용, 세기의 재판」1부 내용 일부 발췌
당시 국민연금 내부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 기류가 강했던 이유는 2015년 5월 26일 합병 결의 이후 두 회사의 주가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합병 결의 당일 두 회사 모두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 다음날부터 한동안 상승세를 탔다. 우선 제일모직의 주가는 5월 22일 주당 16만 3500원에서 5월 27일 19만 500원으로 16.51% 오르면서 시가총액이 2거래일 만에 22조 725억 원에서 25조 7175억 원으로 무려 약 3조 6000억 원이 증가했다.
삼성물산의 주가도 합병 전인 5월 21~22일에는 주당 5만 4000~6000원 대에 머물렀지만, 합병 직후 6만 5000원까지 오르더니 6월 3일에는 6만 3000원 대로 호조를 보였다.
무엇보다 당시 합병으로 두 회사와 지분 관계에 있는 계열사도 일제히 주가 상승 흐름을 보였다. 이는 시장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신호였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이 좋은 편이고 이로 인한 수익성도 높다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국민연금 내부에서 합병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에 대해 반대할 명분은 없었다.
무엇보다 소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로 전 국민적 논란이 커지던 시기인 2016년 12월 14일, 당시 청와대가 국민연금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에 압박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날 국민연금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박·해명하는 공식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국민연금은 해당 보도자료에서 당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의결권 행사에 앞서 “외부 시장전문가 상당수가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한 점을 고려했다”라는 취지로, 20개 증권사 중 18곳이 합병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을 들었다.
또 자체적으로 합병을 통한 시너지 분석도 철저히 거쳤고, 그 결과 긍정적 시너지가 예상돼 삼성물산의 주주로서 수익률 상승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청와대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식이 아니라, 이러한 시장의 반응을 참고했고 무엇보다 합병 찬성이 연금의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그와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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