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 못 산다... 영국 의회, ‘비흡연 세대법’ 통과

상·하원 20일 최종 합의, 국왕 재가 후 2027년 1월 시행
흡연 관련 연 6만 4000명 사망·NHS 연 30억 파운드 지출...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
영국 선례에 한국도 세대 차단형 금연 정책 도입 논의 본격화

인싸잇=이다현 기자 | 영국 의회가 2009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에게 담배 판매를 평생 금지하는 ‘담배 및 전자담배법(Tobacco and Vapes Bill)’을 20일(현지시각) 최종 통과시켰다. 흡연 가능 연령의 상한선을 없애는 이 방식은 기존의 ‘특정 연령 이하 판매 금지’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국의 입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세대 차단형 금연 정책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나이가 아닌 출생 연도’로 금지... 50세가 돼도 못 산다

 

이 법의 핵심은 흡연 허용 연령을 매년 1세씩 올려 현재 17세 이하인 대상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평생 담배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구조다. 2027년에 18세가 되는 2009년생은 이듬해 2028년에는 구매 허용 연령이 19세로 높아져 여전히 살 수 없게 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며 해당 세대는 평생 합법적으로 담배를 구매할 수 없다.

 

다만 법은 판매자에게만 적용된다. 담배를 구매하거나 소지하거나 흡연하는 행위 자체는 나이와 무관하게 처벌 대상이 아니다.

 

연령 제한을 어기고 담배를 판매하거나 대신 구매해준 사람에게는 200파운드(약 39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담배 소매업을 위한 신규 허가·등록 요건도 새롭게 도입되며, 허가 관련 위반 시에는 2500파운드(약 490만 원)의 가중 벌금이 적용된다.

 

일회용 전자담배는 이미 2025년 6월부터 판매가 전면 금지된 상태다. 이번 법으로 실내 흡연 금지 구역은 학교·병원 외부, 어린이 놀이터 등 야외 특정 구역으로 확대됐다.

 

전자담배를 어린이에게 어필하는 방식으로 브랜딩·광고하는 행위도 금지되며, 정부는 전자담배의 향·포장·성분을 규제할 새 권한을 갖게 됐다.

 

잉글랜드서만 매년 6만 4000명 사망... NHS 치료비 연 30억 파운드

 

법안 입법의 배경에는 흡연으로 인한 보건·경제적 부담이 자리한다. 잉글랜드에서만 매년 6만 4000명이 흡연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고, 40만 건의 관련 입원이 발생한다.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암·심장병 등 흡연 관련 질환 치료에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30억 파운드(약 5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금연 운동 단체 ASH(Action on Smoking and Health)에 따르면 2024년 잉글랜드에서 흡연이 공공 재정에 미친 직접 비용은 165억 파운드(약 32조 원)로, 담배세 수입 68억 파운드(약 13조 원)의 두 배를 넘는다.

 

웨스 스트리팅 보건장관은 법안 통과 직후 “영국의 아이들은 최초의 비흡연 세대의 일원이 될 것”이라며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 이 개혁은 생명을 구하고 NHS의 부담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리안 메런 상원 보건 차관도 상원 최종 심의에서 “이 법은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최대 공중보건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2년간의 의회 통과 과정... 보수·노동 초당적 합의

 

이 법안의 기원은 보수당 정부에서 시작됐다. 리시 수낙 전 총리는 2023년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최초로 구상을 밝혔고, 노동당도 같은 해 비슷한 정책을 제안했다.

 

법안은 2024년 3월 하원에서 첫 독회를 통과한 이후 약 2년에 걸쳐 상·하원을 오가며 심의됐으며, 4월 20일 상원이 하원의 수정안에 최종 동의하면서 의회 절차를 마쳤다.

 

ASH에 따르면 잉글랜드 국민의 68%가 이 정책을 지지하며, 흡연자 중에서도 5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론도 만만찮다... “암시장 커진다”·“개인 자유 침해”

 

법안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영국전자담배산업협회는 “당국이 이미 따라잡지 못하는 불법 시장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규제 강화는 암거래만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자담배 업계에서는 향과 접근성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전자담배를 통해 금연을 시도하는 성인 흡연자를 다시 일반 담배로 돌아가게 하거나 비규제 시장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정치적 지속 가능성도 변수다. 이 법은 뉴질랜드의 세대별 금연법을 참고해 설계됐으나, 뉴질랜드는 2024년 보수 정권이 들어선 직후 해당 법을 폐기했다. 영국도 향후 정권 교체 시 유사한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영국 정부는 이 법으로 2075년까지 흡연자 수가 최대 170만 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영국 선례에 한국도 논의 본격화... 현행 규제로는 한계

 

영국의 비흡연 세대법 통과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세대 차단형 금연 정책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청소년 판매 금지 중심의 현행 제도만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담배 시장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국내 편의점에서는 향과 디자인을 강조한 전자담배 제품이 확산하고 있으며, 청소년을 겨냥한 마케팅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4일부터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담배의 정의를 연초에서 연초 또는 니코틴으로 확대해 합성 니코틴 기반 액상형 전자담배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여전히 기존 규제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청소년 담배 사용률은 5년 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으나, 액상형·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감소세 없이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사 법안이 추진될 경우 담배 업계의 반발과 흡연자 선택권 침해 논란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영국이 보수·진보를 막론한 초당적 합의로 입법을 완수한 선례는 한국의 논의에서도 참고 지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