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꺼내든 '개헌 카드'에 대해 정치권과 국민여론의 싸늘한 반응이 이어지고 가운데 청와대가 여론몰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청와대 비서관급 참모들은 9, 10일 연이어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나섰다.
10일 김병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과, 이정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신년 인사차 예방해 개헌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차성수 시민사회비서관이 11일 ‘MBC 100분토론’에 출연하는 한편 12일에는 정태호 정무팀장과,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은 TV와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를 통해 개헌의 당위성과 진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청와대 “여론 나빠도 2월 중 개헌 발의 하겠다”
정태호 정무팀장은 12일 ‘김신명숙의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를 보면 개헌 필요성에 대해서는 60∼70%가 찬성한다”면서 “다만 시기가 지금이냐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왜 지금인가'에 대한 시급성을 국민이 알게 되면 여론은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 팀장은 이날 연이어 MBN '송지헌의 뉴스광장'에 출연해 '개헌 발의 시점'에 대해 “토론 과정을 거쳐 뭔가 여론이 형성되면 적절한 시점에 대통령이 의견을 모아 발의할 것"이라면서 “2월이 될 것 같다”며 구체적인 시기를 밝혔다.
정 팀장은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가능성 일축’과 관련 "임기 단축과 개헌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개헌 발의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고, 그 권한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개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탈당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며 “야당도 이에 대해 적극적인 화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은 CBS ‘뉴스레이다’와의 인터뷰에서 '부정적인 개헌 여론'에 대해 “국민들이 보기에 뭔가 정치적인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어 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이번 개헌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정치적인 그런 변화나,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충분히 전달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이번 대선 선거판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는 의혹에 대해 "정, 부통령제를 도입하거나 내각제로 바꾸려는 개헌이면 대선판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번 개헌 제안은 대선경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탈당고려에 대해 “개헌 논의에 당적은 문제가 안 된다”면서 “개헌을 위해서 당적을 떠나야 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기 보다는 야당이 당적문제라든가, 당과의 관계라든가, 이런 문제 때문에 대화에 장애가 된다면 검토해 볼 수 있겠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심까지 외면한 개헌논의, 열올리는 청와대?
한편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개헌 제의를 발표한 직후, '청와대브리핑' 게시판에는 A4용지 32장 분량의 '개헌 관련 설명자료' 띄워 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자료에는 ‘5년 담임제의 문제’, ‘대통령과 국회의원임기 주기’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개헌은 “20년만의 기회, 임기와 선거주기를 고려한 최적기”라며 강조하고 있다.
또 자료에는 정치권과 학계의 개헌관련 발언 모음집을 만들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 등 한나라당 ‘빅3’와 이회창 전 총재, 고건 전 총리,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의 개헌 관련 발언 내용과 장소와 일시를 기록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처럼 개헌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여론의 흐름을 개헌 찬성 쪽으로 몰아가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여론을 볼 때 이번 ‘개헌카드’관철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나라당 “청와대 논객, 방송에 나와 한풀이 하나”
한편 한나라당은 “노무현대통령의 임기 중 개헌은 이미 물 건너갔다”며 개헌 논의에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유기준 대변인은 “청와대 참모진 중에서 내놓으라하는 논객들이 총동원되어 개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방송이 마치 청와대 참모들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 장처럼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대변인은 “공영방송의 전파는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청와대 참모들의 억지 주장이나 한풀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했다. 그는 “정략적 발상에서 제기된 개헌의 이유를 늘어놓기 위해 출연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오기는 전파를 어지럽히는 방송공해에 지나지 않는다”며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대변인은 “(개헌에 대한)국민들의 여론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은 상태”라며 “청와대 참모들이 아무리 방송에 출연해서 홍보에 열을 올려봐야 남극 빙하 한복판에 성냥불 긋는 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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