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이후 정치 일선에 물러나 있던 김민석 전 의원은 31일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과제를 담당할 주체세력이 전면에 나서지만, 세월은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개혁주체들을 어느새 개혁대상으로 전락시켜 몰아내는 것 또한 역사의 철칙”이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사분오열된 열린우리당을 겨냥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자신에 홈페이지의 ‘퇴수일기 7 :역사의 호흡과 서울의 정치’라는 글을 통해 “민심의 환호, 심지어 하늘의 축복을 받고 등장했던 통치자들이 단 몇 해만에 인간적 평상심마저 상실한 오만한 권력으로 변질되어 민심의 파도 앞에 추락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읽었다는 역사책에서 교훈을 얻었다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과제와 주체세력의 성격에 대한 해답은 그 역사적 식견을 갖춘 통찰을 필요로 한다. 수많은 역사의 반복은 권력이 겸손함과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내적 수련과 성숙이 필요한 지를 웅변해준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임기 이후를 생각지 말고, 정파적 이해를 떠나 5년간 오로지 국정에 전념하라는 것이 현행 5년 단임제 헌법의 취지”라며 노 대통령의 '개헌카드'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국정수행을 통해 대통령은 그 현행 헌법의 취지가 다 달성되고 역사적 가치를 상실했으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격과 권위를 획득했을까”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참여정부의 교육과 주택, 외교 정책의 실책을 언급하며 "여권의 다양한 변신이 거론되고 있지만, 크고 길게 보아 결국 열린 우리당의 해체와 책임 있는 주역들의 2선 후퇴 외에 다른 어떤 길이 성립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당분간 정치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도, 현실에 안타깝다는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지난 얘기를 묻는 사람들이 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미래에 대한 나 자신의 준비와 생각이 가다듬어지기까지는 과거의 이야기는 접어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2년 전에 비해 서울의 모습은,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더욱 연상케 하고, 사람들의 정서는 한결 메말라진 듯 느껴지며, 짧은 기간 오랜만에 보고 느낀 서울의 모습과 정서는 안타까운 대목이 많다”며 “그러다보니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함께 나의 부족함에 대한 답답함도 있다. 뒤로 물러나 내공을 닦는다는 뜻의 퇴수의 글을 쓰기에는 오랜만의 서울공기가 유혹적이리만치 생생했다”고도 했다.
한편 지난해 9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 주립대학 로스쿨에서 3년 과정으로 JD (법무박사) 공부를 하다가 2년 만에 서울을 방문한 그는 미국법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중국법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조만간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퇴수일기 7. 역사의 호흡과 서울의 정치
지난 번 퇴수일기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12월말에 다음 글을 올리겠다고 기약한 걸 생각하면 한 달이나 지각한 셈이니 죄송스럽다. 이렇게 뜸을 들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기말고사를 마치고 늦둥이 아들과 노는데 푹 빠졌었다. 기차도 태워주고, 배도 태워주고, 아빠 손으로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바쁜 학기 중에 미뤄놓았던 ‘두살 박이의 첫 경험’들을 채우느라 시간 가는 걸 잊었다. 중국행 준비도 해야 했다. 올 2007년 1년간 나는 북경의 청화대학에서 중국법 석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로스쿨의 3년차 마지막 학기인 2008년 봄 미국에서의 학기를 마치면, 미국법 박사와 중국법 석사 두 과정을 이수하게 된 셈이다. 운 좋게 시간도 절약하면서 좋은 기회를 갖게 됐는데, 그 준비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나 글이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새해에 서울에 온 것 때문이다. 2월에 중국으로 갈 준비도 할 겸, 새해를 맞아 잠시 서울에 들렀다. 서울 공기를 쐬고, 사람들을 만나니, 생각은 많아지는데, 좀처럼 글머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뒤로 물러나 내공을 닦는다는 뜻의 퇴수의 글을 쓰기에는 오랜만의 서울공기가 유혹적이리만치 생생했다. 태어나고 살아온 지 40년 이상이 되는 서울이지만 잠시 떨어져 있어서일까? 유학길에 올랐던 2년 전에 비해 서울의 모습은,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더욱 연상케 하고, 사람들의 정서는 한결 메말라진 듯 느껴지며, 여전히 정치 얘기가 많은 자리의 최고화두이다. 현실정치를 한동안 관망해온 내게도 직접적인 정치비평의 욕구가 성큼 다가올 정도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난 두 달 사이에 읽은 책 가운데 몇 권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먼저 임동주의 ‘우리나라 삼국지’란 책이다. 수의학전문가라는 독특한 배경의 저자가 “우리나라 이야기로 알고 읽었던 삼국지가 중국 이야기란 것을 알고 충격 받았던 어린 시절 이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쓴 이 책은, 저자가 10여년의 공을 들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가급적 부합하게 쓴 역사소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삼국시대의 맥을 짚고, 우리의 고사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는 등, 평소 내 관점과 비슷한 점이 많아 좋았다. 문장도 시원시원한 편이다. 비록 의욕적인 시도에 비해 책의 중간 부분 구성의 긴장감이 약간 떨어지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는 저자의 시각과 발상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특히 고구려의 건국을 다룬 제1권과, 삼국시대의 역사적 쟁점을 별도로 요약한 11권은 참 좋다. 중국의 삼국지에 익숙해온 아이들에게 한번쯤 읽혀봄 직하다.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의 교양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발칸반도 편과 동남아 편도 볼만했다. 발칸반도,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 특히 현대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반도적 특성, 강대국의 개입과 식민지화, 좌우대립과 내전, 독재와 경제건설, 민주화...........등등. 서방의 강대국이나 가까운 나라의 역사 외에는 친숙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편안하게 지식과 생각꺼리를 제공해주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이 외에 내가 지난 연말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여 지금 열왕기 하편까지 이른 구약성경의 스토리가 유대의 고대역사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지난 두 달간 읽은 책 중 가장 흥미로웠던 책들이 다 역사책들인 셈이다.
눈앞의 세상이 종잡을 수 없이 돌아갈 때일수록 역사를 읽는 긴 호흡과 시각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 오히려 큰 흐름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자위적 국방력과 유연한 외교력의 조화를 생존의 기본조건으로 하되 근본적으로는 주체적 세계화, 즉 중심을 지키며 바깥과 교류하고 세계로 뻗어나가야만 민족부흥의 활로가 열린다는 것은 반도에 자리 잡은 한민족 역사의 고대 이래의 교훈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과제를 담당할 주체세력이 전면에 나서지만, 세월은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개혁주체들을 어느새 개혁대상으로 전락시켜 몰아내는 것 또한 역사의 철칙이다. 동남아건, 발칸이건, 한반도건, 세계사의 무대 어느 곳이건 역사는 그렇게 독립운동세력, 군부세력, 민주화세력 등등을 무대의 전면에 올렸다 또 내리곤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탈냉전, 탈좌파, 변화와 혁신의 복합적인 시대적 흐름을 동시에 타고 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과제와 주체세력의 성격에 대한 해답은 그래서 역사적 식견을 갖춘 통찰을 필요로 한다. 그런가하면 민심의 환호, 심지어 하늘의 축복을 받고 등장했던 통치자들이 단 몇 해만에 인간적 평상심마저 상실한 오만한 권력으로 변질되어 민심의 파도 앞에 추락해가는 수많은 역사의 반복은 권력이 겸손함과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내적 수련과 성숙이 필요한 지를 웅변해준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지난 얘기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단일화 성사 과정이 어땠는지, 노후보가 촉발한 지지철회파동의 속사정은 무엇인지, 그 이전부터 노대통령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등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나 자신의 준비와 생각이 가다듬어지기까지는 과거의 이야기는 접어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역사의 호흡과 시각에서 오늘 서울의 정치는 과연 어떻게 해석될까? 임기 이후를 생각지 말고 정파적 이해를 떠나 5년간 오로지 국정에 전념하라는 것이 현행 5년 단임제 헌법의 취지이다. 그동안의 국정수행을 통해 대통령은 그 현행 헌법의 취지가 다 달성되고 역사적 가치를 상실했으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격과 권위를 획득했을까? 교육과 주택, 외교 세 가지가 백성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본문제인 나라에서 “부동산 외에는 잘못이 없다”는 위정자들의 항변을 후일의 역사가 이해해줄까? 여권의 다양한 변신이 거론되고 있지만, 크고 길게 보아 결국 열린 우리당의 해체와 책임 있는 주역들의 2선 후퇴 외에 다른 어떤 길이 성립될 수 있을까?
짧은 기간 오랜만에 보고 느낀 서울의 모습과 정서는 안타까운 대목이 많다. 그러다보니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함께 나의 부족함에 대한 답답함도 있다. 그러나 남은 기간의 공부를 위해 다시 객지로 향하는 시점에서, 나는 그래도 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시대의 과제를 온 몸으로 책임지고 제대로 수행하는 이들과 어깨동무할 날을 위해 퇴수하고 준비하고 현실의 유혹을 견뎌내며 희망을 벼르는 항로를 선택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음을 재확인한다. 사랑하는 조국의 터전을 지키는 모든 분들께 늦었지만 늘 건강하시라는 신년인사를 드리고 싶다. 오랜만에 맛본 서울공기로 잠시 주춤했던 퇴수일기는 새로운 각오로 다시 속도를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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