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선거의 대이변
진보언론단체의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제4대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제10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선거에서 이준안(KBS)-허찬회(경인일보)후보가 각각 위원장, 수석부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언론노조 정책노선의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이 위원장의 당선에 대해 현 집행부 노선에 대한 불만 등이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치로 내건 이 위원장은 선거 전부터 기존의 집행부를 향해 “대중의 정서와 분리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 위원장은 주요공약으로 언론노동자 생존권 사수, 한미FTA에 의한 방송장악 저지, 위기의 신문시장 돌파구 마련, 지역언론 생존권 사수 등을 내세우며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전임 신학림 위원장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무가지로 인해 언론시장이 반 토막 나고, 수많은 언론사들이 폐간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보수언론 비판과 묻지마식 한미FTA 반대 이외에 실질적으로 ‘언론시장을 살리기’에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신학림 체제에서 스포츠지 두 곳이 문을 닫고, 종합일간지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언론인들이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는데 "노조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냐"는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단체와 협력하여 포털 문제 해결 나선 이준희 회장
한편 지난달 7일 영등포동 2가 민주노총에서 ‘한국인터넷기자협회 5대 정기총회’가 열린 가운데 시민의신문 정치경제 팀장을 맡고 있는 이준희 기자가 회장으로 당선돼 인터넷기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킬 ‘차세대 회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언론시장 살리기’에 앞장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뉴미디어 분야의 정책을 강화시키기 위해 ‘인터넷미디어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언론위의 언론’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포털과 관련, 비판에 소극적이었던 기존의 진보언론단체와는 달리 이 회장은 포털의 독과점 문제를 강력히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겠다”며 회원사들에게 대안 제시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이 회장은 서로 적대적이었던 보수, 진보 언론단체가 손잡고 언론시장을 살리기 위해 협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는 보수 성향의 인터넷언론협회인 ‘인터넷미디어협회’ 지민호 회장(프리존뉴스 대표)과 만나 3월 중으로 ‘포털의 독과점 감시와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인터넷 연대(가칭)’ 결성을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진보언론단체들이 포털 문제를 피해가며 오죽 조중동 비판에만 매몰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다.
이외에도 한겨레신문 정태기 전 사장이 사의를 밝히면서, 오는 9일 열리게 되는 차기 사장선거를 기점으로 한겨례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내부에서 가장 포용력있는 편집을 했다고 평가받는 오귀한 전 국장이 출마할 것으로 보여, 한겨레 사장 선거 역시 진보언론계의 새바람을 불고 올지 주목되고 있다.
언론이 죽더라도 노선만 지키면 된다는 언론계 리더
진보언론계가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이유는 그간의 진보진영의 언론계 리더들이 언론의 생존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정치투쟁에만 몰입하면서, 언론의 위기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언론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포털 문제에 대해서 기존의 진보언론계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포털 옹호론에 치우쳤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과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포털 비판를 배제하고 조중동 비판에만 집중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진보언론계의 정권교체는 안티조중동을 넘어, 포털 및 IPTV 등 뉴미디어 분야에서의 공공성 확보 및 올드미디어와의 실질적 상생 노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언론노조의 이준안 신임회장이 IPTV 사업분야는 언론사가 주도해야한다는 입장을 지닌 것도 이러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포털 비판 역시 크게 보면 인터넷 여론은 거대 자본인 포털이 아닌 언론사가 주도해야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선이 유지된다면, 진보언론계의 정권교체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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