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1시 30분 강북구청 위안부상 앞에서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10차 집회를 열고 “성노예상 철거,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해체”를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소녀상은 명백한 불법조형물”이라며 강북구청의 철거를 촉구했다. 이날 국민행동은 “대한민국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너무나 많이 왜곡되어 있다”며 소녀상의 실체에 대해 낱낱이 설명했다. 이하 사진들은 국민행동 측 제공. 관련기사 : "강북구청 앞 소녀상은 불법이다" 고발장…경찰 조사중 [단독] 소녀상에 날아든 고발장…불법 조형물 위기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이우연 반일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 대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등이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씨의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증언의 일관성 및 신빙성 문제를 제기하는 긴급기자회견을 11일 오후 3시30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열었다. 현장에서 이우연 대표는 “이용수씨가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라고 처음으로 폭로를 했을 때가 1993년인데, 당시에는 자신이 취업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일본 관헌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고 증언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증언번복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어 “정말 수많은 위안부들이 강제로 끌려간거라면 왜 부모나 형제나 친구 등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도 끌려가는 장면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용수 씨가 지금이라도 옳은 결정을 해서 남은 여생을 편히 사시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병헌 대표는 “이용수를 비롯해 김학순, 길원옥, 김복동 등 위안부들의 증언은 윤미향과 정대협만 거치면 과격하게 바뀌었는데, 그렇게 수시로 바뀌어 온 위안부들의 증언이 법정에서도 인정될 뿐 아니라 한일관계까지 망쳤다는 것이 사실”이
한일우호 지향 시민단체인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11일, 오후 12시 제49차 위안부상 철거 및 수요집회 중단 촉구 집회를 열었다. 공대위 집회는 이날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이사의 공동 1인 시위 형태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 위원은 ‘위안부상 철거’ 피켓을, 황 대표는 ‘수요집회 중단’ 피켓을 들었다. 아래는 이번 공대위 제 49차 광화문 집회 사진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알려진 이용수 씨의 위안부 강제연행 증언과 관련, 신빙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 인사들의 긴급기자회견이 열린다. 이용수 씨는 오는 11일(수)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제 15민사부(민성철 부장판사)에서 ‘일본국’을 피고로 열리는 위안부 문제 관련 민사소송 재판 최종 변론기일에서 당사자 자격으로 증언대에 서기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 씨는 위안부가 된 경위와 관련 여러 차례 말을 바꿔와 증언의 진실성과 관련해 시민사회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용수 씨의 이번 법정 증언 문제와 관련, 위안부 문제 실상 알리기 시민운동을 해온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이우연 반일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 대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등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나섰다. 김병헌 대표 등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서울중앙지법 정문 근처에서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이 씨의 증언 번복에 대해 공개 문제제기를 하기로 했다. 이번 기자회견과 관련 김병헌 대표는 “이용수를 비롯해 위안부들의 증언이 왜 윤미향과 정대협만 거치면 과격하게 바뀌는 것인지, 또 그렇게 수시로 바뀌어 온 위안부들의 증언이 신성한 법정에서도 그대로 인정되고 외교문제로까지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9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 정문 앞에서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에게 일본군이 위안부를 집단 성폭행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 시작 1시간 전부터 반일좌익 성향으로 유명한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를 비롯한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찾아와 국민행동의 집회를 방해했지만, 경찰은 강한 제지없이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앞으로 국민행동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세종대 정문 앞에서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아래는 국민행동의 집회 사진과 국민행동의 성명서. [제9차 국민행동 성명서] 호사카유지, 일제가 조선 여인을 집단 성폭행한 증거를 제시하라! 호사카유지 세종대 교수는 2018년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1)』을 발행하고 2020년 3월에는 『신친일파』라는 이름의 책을 냈다. 『증거자료집』이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자료를 번역 분석한 책이라면, 『신친일파』는 이 자료를 토대로 이승만학당에서 발행한 『반일종족주의』를 비판한 책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두 책은 모두 위안부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위안부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4일 오후 2시 강북구청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유튜브 채널 정희일TV와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에서 “11세 모델 위안부상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희일 대표는 “강북구청 앞 소녀상은 불법으로 기부금을 모아 세워진 불법 조형물”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추운 날씨에도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며 17일째 텐트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이하 사진은 청년스피릿 제공. 관련기사 : "강북구청 앞 소녀상은 불법이다" 고발장…경찰 조사중 [단독] 소녀상에 날아든 고발장…불법 조형물 위기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2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간질 중단하고 한국을 떠나라”고 외쳤다. 국민행동은 이날 호사카 유지 교수가 쓴 ‘신친일파(봄이아트북스, 2020. 3.)’의 내용과 일제시대 당시 1차 자료들을 비교한 포스터를 들고서 공창과 사창조차 구분 못 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를 비판했다. 이날 현장에는 반일좌익 성향 유튜브 ‘서울의 소리’도 찾아와 “호사카 유지 교수를 지켜라”는 제목으로 라이브방송을 했다. 국민행동은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세종대 정문 앞에서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아래는 국민행동의 집회 사진과 국민행동의 성명서. [성명서] 호사카유지, 한‧일 간 이간질 중단하고 양국 국민에게 사죄하라! 2020년 초,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신친일파』라는 이름의 책을 냈다. 그는 이영훈 교수를 주축으로 발간된 『반일종족주의』를 두고 ‘기이한 제목’이라는 비아냥조로 시작한 머리말에서 ‘노예근성’이라는 모욕적 표현을 동원하여 저자들을 비난했다. ‘그들의 정치적 색깔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리와 주장을 문제 삼았다’고 하였으나, 애초에 정치적 색깔과 무관한 저자
정의기억연대(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련 위안부 사기의 진실을 규명해온 시민단체가, 대학 수업에서 한 발언을 두고 학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검찰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지난 29일 검찰은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지난해 9월 19일, 연세대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류 교수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류 교수의 발언) 녹취록에서는 류 전 교수가 매춘 진입 과정에 대해 “살기가 어려워서”라거나 “생활이 어려워서 그렇지 내가 원해서가 아니에요”라며 가난이 원인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여성(李如星)이 조사한 ‘조선의 예기·창기 및 작부의 수’(‘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2012)에 의하면, 1910년 당시 조선총독부에 등록된 조선인 접객업부 수가 1762명(일본인 4942명)이었던 것이 1942년에는 총 1만4472명(일본인 7229명)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난한’ 그녀들 중의
28일 수요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청 소녀상 앞에서 “성노예상 철거, 정의연 해체”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현재 강북구청 앞 소녀상은 도로 점용허가 없이 건립된 불법 조형물인데다 불법으로 기부금을 모아 세워진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집회는 국사교과서연구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유튜브 정희일TV 주최로 열렸다. 집회는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 오후2시 계속된다. 정희일TV는 강북구청 소녀상 앞에서 24시간 집회를 개최한 지 열흘째이며 앞으로도 계속한다. 이하 사진은 청년스피릿 제공. 관련기사 : "강북구청 앞 소녀상은 불법이다" 고발장…경찰 조사중 [단독] 소녀상에 날아든 고발장…불법 조형물 위기
시민단체 국사교과서연구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26일 낮 12시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일본군에 의해 강제동원은 없었다”라는 주제로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기자회견은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진행할 예정이다.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제시대 당시 위안소 이용규정과 위안부 서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조선인 소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주장은 허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자회견 후, 김 소장과 이인규 단장은 청와대 민원실에 서한문을 제출했다. 제6차 기자회견은 27일 수요일 낮 12시 수유역 8번출구 서울 강북구청 위안부상 앞에서 개최한다. 이하 사진은 청년스피릿 제공.
근래 한국 언론들은 반일의식을 기초로 군함도(하시마섬)를 아우슈비츠와 같은 곳으로 묘사하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반면, 일본 언론들은 군함도에 살았던 실제 도민들의 증언들을 하나하나 수집·청취·기록해가며 일제시대 당시 군함도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19일, 일본의 자유보수계열 언론사인 세카이닛포(世界日報)는 1면 톱과 3면 하단에 걸쳐, 우에다 이사미(上田勇実) 편집위원의 ‘삽화집 ‘군함도의 시’에서 옛 도민 회고(挿絵集『軍艦島の詩』で元島民回顧)’ 제하 기사를 내보냈다. 군함도 옛 도민들이 당시를 회고하여 편찬한 신간 삽화집인 ‘하시마(군함도)의 시(端島(軍艦島)の詩)’의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한 것이다. ‘하시마(군함도)의 시’의 편찬자인 이와사키 마쓰코(岩崎松子) 씨는 군함도 출신의 작가이자 시인이다. 그녀는 전후인 1949년에 군함도에 태어났지만, 전쟁 당시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언니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이와사키 씨의 언니는 이와사키 씨에게, “조선의 음식 ‘하타이코(はったい粉)’(한국 전통 음식 ‘미숫가루’의 일종으로, 당시는 쌀가루나 밀가루 등을 뜨거운 물에 섞어서 다져 먹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것을 받
시민단체들이 19일 낮 12시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유은혜 등 여권 정치인들을 향해 위안부 거짓선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국사교과서연구소와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여당의 윤미향 의원(비례), 정춘숙 의원(용인시병)과 정부의 이정옥 여성부장관,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향해 “조선여인을 일제가 강제동원한 증거를 제시하라!”는 주제로 제3차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인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미야모토후지코 씨가 참석했다. 또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역시 한국에 사는 ‘김치와사비キムチわさび’ 유튜버도 참석했다.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본 관련 역사왜곡에 대해 발언했다.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은 초중고 교과서 속 수많은 왜곡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일본 관련 역사 왜곡 중단을 호소했다. 이하 사진은 청년스피릿 제공. 하단 기자회견문은 국사교과서연구소와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공동 명의로 발표됐다. [제3차 국민행동 기자회견문] 초등사회5-2 집필자 한춘희, 강제동원의 증거를 제시하라! 아이들 교과서가 난장판이다. 아이들 교과서에 문법조차 안 맞는 글이 실려 있는가 하면, 집필자도 설명 못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2019학년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 論争)’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18년 12월 7일판, 번역 : 황철수). 본 항목은 일본 위키에서는 늘 이런저런 내용 변경이 존재하는 항목 중에 하나이지만, 큰 골격은 그대로다. 일본 내에서는 2000년대 이전부터 이 사건의 성격에 대한 대논쟁이 있었던 탓에 관련 더 이상 급작스런 연구의 진전이나 인식의 변화는 없다. 난징사건 자체보다 오히려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서사를 형성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미디어워치 편집부는 앞으로 일본 위키의 관련 항목들인 ‘난징사건의 피해자수(南京事件の被害者数)’, ‘난징사건의 증언(南京事件の証言)’, ‘100인 참수 경쟁(百人斬り競争)’, ‘난징사건 논쟁사(南京事件論争史)’도 차례로 번역 공개할 예정이다.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은, 일중전쟁(日中戦争, 지나사변(支那事変)) 도중인 1937년(쇼와 12년) 12월에 수행된 난징전(南京戦)에서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난징사건(南京事件)’에서의 학살 존재 여부 및 그 규모 등을 논점으로 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일본과 중국
이전기사 :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1) 3.3.2 편의병 및 전시국제법 3.3.3 투항병・포로의 취급 및 전시국제법 3.3.4 포로 살해 논쟁 예 : 무푸산(幕府山)사건(야마다 지대의 포로 처단) 3.4 기간 및 장소 3.4.1 사건 기간 3.4.2 지리적 범위 3.5 당시 국제사회의 인식에 대한 의논 3.5.1 국제연맹의 결의 (계속)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1)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2)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3)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난징사건 논쟁(南京事件論争)’ (4) 3.3.2 편의병 및 전시국제법(便衣兵と戦時国際法) 난징전에서 병사가 민간인으로 가장해 전투행위를 하는 ‘편의병(便衣兵, 게릴라병)’이라는 이유로, 중국 병사가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37년 12월 14일~16일 난징의 안전구역에서, 일본군이 중국 병사를 약 6500-6700명 가량을 적발하여 처형한 바 있다. 이 편의병 처형에 대한 전시국제법에 따른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