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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카이닛포, 1면 톱으로 ‘군함도의 진실’ 알리며 옛 도민들의 회고 소개

“하시마섬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은 가족처럼 살았다” ... 전쟁때 일본인은 편하게 살고 조선인만 고생했다는 것은 오해

근래 한국 언론들은 반일의식을 기초로 군함도(하시마섬)를 아우슈비츠와 같은 곳으로 묘사하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반면, 일본 언론들은 군함도에 살았던 실제 도민들의 증언들을 하나하나 수집·청취·기록해가며 일제시대 당시 군함도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19일, 일본의 자유보수계열 언론사인 세카이닛포(世界日報)는 1면 톱과 3면 하단에 걸쳐, 우에다 이사미(上田勇実) 편집위원의  ‘삽화집 ‘군함도의 시’에서 옛 도민 회고(挿絵集『軍艦島の詩』で元島民回顧)’ 제하 기사를 내보냈다. 군함도 옛 도민들이 당시를 회고하여 편찬한 신간 삽화집인 ‘하시마(군함도)의 시(端島(軍艦島)の詩)’의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한 것이다.



‘하시마(군함도)의 시’의 편찬자인 이와사키 마쓰코(岩崎松子) 씨는 군함도 출신의 작가이자 시인이다. 그녀는 전후인 1949년에 군함도에 태어났지만, 전쟁 당시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언니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이와사키 씨의 언니는 이와사키 씨에게,

조선의 음식 ‘하타이코(はったい粉)’(한국 전통 음식 ‘미숫가루’의 일종으로, 당시는 쌀가루나 밀가루 등을 뜨거운 물에 섞어서 다져 먹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것을 받아 함께 먹었다”, “조선인 여성들이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자기 나라의 춤을 추기도 했으며, 조선인 남성들도 미코시(神輿, 신을 모시는 가마)를 들고, 시시마이(獅子舞, 사자춤)로 섬을 누비는 즐거운 시간이 있었다”


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더구나 군함도에서 일본인 아이들과 조선인 아이들은 서로 거리낌없이 놀았으며, 종전 후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조선으로 귀국할때 서로 큰 아쉬움을 토로했었던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와사키 씨의 아버지는 하시마섬 탄갱에서 일하다가 결국 징병으로 중국 전선에 다녀오고 진폐증으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이와사키 씨는 “성실하고 너무나 힘든 일을 묵묵히 계속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은 편하게 살고 조선인만 고생했다는 것은 오해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세카이닛포는 기사에서 ‘하시마(군함도)의 시’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에 대비되는, 2016년 한국에서 출간된 한국의 좌익 계열 출판물인 ‘부끄러운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문제점도 알렸다. 이 그림책은 한반도 출신의 ‘어린 소년’이 군함도에 강제로 끌려와 아우슈비츠와 같은 삶을 경험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심지어 현재 초등학교 현장에서까지 한국 어린이들에게 반일의식을 주입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세카이닛포는 본지 황의원 대표이사의 “(‘부끄러운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와 같은 책으로 인해) 어린이들에게 반일 의식이 심어지는 것은 필연” “초등학교 정규수업에서도 부교재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소개했다.

아래는 일본 세카이닛포 측의 허락을 얻어 관련 기사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조선인과 가족처럼 살았다(朝鮮人と家族同然に暮らす)

2015년에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의 하나로서 해저탄광의 흔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나가사키(長崎)의 하시마(端島, 통칭 군함도).

세카이닛포(世界日報)는 최근 옛 도민이 당시를 회고하고 편찬한 삽화집 ‘하시마(군함도)의 시(端島(軍艦島)の詩)’를 입수했다. 거기에는 광부들의 일하는 태도와 가족의 일상이 그려져 있는데, 일본통치하 조선반도 출신자가 차별 • 학대받았다는 일부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평온한 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다.(편집위원 · 우에다 이사미(上田勇実))

“신사(神社)의 경내(境内) 사택 옥상, 섬의 어린이 놀이터입니다. 식료품과 생활용품은 배가 싣고 옵니다. 시화(時化, 센 비바람 때문에 바다가 거칠어짐)가 되면 곤란해지지만, 이런 생활에도 어느덧 모두 익숙해졌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마음이 하나가 되어 군함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날의 군함도의 색깔은요, 불타는 저녁놀의 색이었습니다”(제목 ‘저녁놀의 색(夕焼けの色)’)


“이곳은 선탄(選炭)된  제품탄(製品炭)이 선적되거나  출하 전에 일시적으로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도민 어린이들의  놀이터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먼 옛날의 여운이 남아있습니다. 내게는 그리운 장소였습니다” (제목 ‘검은 다이아몬드 저탄장(黒いダイヤの貯炭場)’)


삽화집에 실린 시의 일부들이다.

작가이자 시인인 이와사키 마쓰코(岩崎松子) 씨(71 = 필명 • 히나타 가오루(日向香))는 1949년에 섬에서 태어나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섬의 생활은 전후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사키 씨는 언니로부터 전쟁 당시의 생활에 대해, 조선의 음식 ‘하타이코(はったい粉)’(한국 전통 음식 ‘미숫가루’의 일종으로, 당시는 쌀가루나 밀가루 등을 뜨거운 물에 섞어서 다져 먹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것을 받아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 최근에도 전쟁 당시에 태어난 큰 언니로부터 당시 얘기를 들었다. 언니는 소학교 고학년 때, 일본 이름 ‘나가마타 준(長又純)’, ‘나카하라 다마에(中原たまえ)’라고 자칭하고 있던 조선인 동급생인 여자 어린이들과 사이좋게 놀았으며, 조선인에 대한 이지메 등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탄광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차별이나 멸시, 착취 등이 있었다면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놀 리가 없다.

섬에서는 축제도 있었는데 “조선인 여성들이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자기 나라의 춤을 추기도 했으며, 조선인 남성들도 미코시(神輿, 신을 모시는 가마)를 들고, 시시마이(獅子舞, 사자춤)로 섬을 누비는 즐거운 시간이 있었다”(삽화집의 ‘시작(はじめに)’부터)고 했다.

광부였던 이와사키 씨의 아버지는 전쟁 당시부터 갱내에서 위험한 일을 맡았다. 징병으로 중국에 가서, 종전 후 현장에 돌아왔지만, 진폐(塵肺)로 사망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너무나 힘든 일을 묵묵히 계속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은 편하게 살고 조선인만 고생했다는 것은 오해입니다”라고 이와사키 씨는 말한다.

삽화집의 그림을 그린 나카무라 요이치(中村陽一さん, 82) 씨는 소학교 시절을 섬에서 보냈다. 탄광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종전 직후 귀국했는데, 배웅하러 온 일본인은 이별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신세를 졌다고 말하면서 상자에 가득한 사과를 조선인으로부터 받은 일본인이 있었고, 반대로 귀국하는 조선인에게 선물을 준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승선한 그 사람이 조선인이었음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고 깜짝 놀란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그 작은 섬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세계 제1의 인구밀도로 서로 가족처럼 살았습니다.”(나카무라 씨)


전쟁 당시를 아는 옛 도민들은 자신들끼리도 이제 거의 인연이 없어졌지만, 조선인을 아무런 차별 없이 대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다.


‘반일’을 심는 한국 그림책(「反日」植え付ける韓国絵本)
소학교 학동 보육 교재로(小学校の学童保育で教材に)

삽화 집의 편찬은 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반대하는 한국이 반도 출신자에 대한 차별 대우가 있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던 것에 당황하여 진짜 모습을 전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2016년에 출판된 소학생(초등학생)을 위한 그림책 ‘부끄러운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내용에 놀랐다고 한다. 이 그림책에는 섬에 온 적도 없는 조선반도 출신의 ‘어린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책에서는, 소년들이 사실은 섬의 어디에도 없었던 “콩나물시루 같은 숙소”에 몰아넣어졌으며, 또 사실은 역시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의 감시병”으로부터 채찍을 맞았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었던 “소년의 시신이 포댓자루에 둘둘 말린 채 내팽개쳐져 있었다” 등과 같은, “사실무근의 기발한 내용”(나카무라 씨)이 눈에 띈다.

이 그림책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둘러싸고 “일본은 조선의 소년이 섬에서 나가는 기회를 한 번만 주었습니다. 죽음의 도시로 변한 나가사키에 데려가서 뒤처리를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 동포 소년들이 전신에 방사선 피해를 받고 서서히 죽어갔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책의 추천문을 쓴 한국 좌파계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는 역사를 바로 알고 (조선반도) 통일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일본에 분단의 책임을 전가하고,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조선과의 통일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소학교 3학년부터 6학년을 대상으로 하여 방과후 학동보육시간에 외부 담당자가 찾아와 이 그림책을 소개한 예도 있다.

한국 보수 인터넷 신문인 미디어워치 황의원(黄意元) 사장은 “이로 인해 어린이들에게 반일 의식이 심어지는 것은 필연입니다. 정기 사업에서도 부교재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현재, 이와사키 씨와 나카무라 씨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홍보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도쿄도 신주쿠 구)에서 가이드를 하면서, 섬의 진실을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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