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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기자는 네이버 기자인가?

포털에 의존하는 1인 미디어의 명백한 한계

조선일보의 스타 기자, 이동진

전 조선일보 영화담당이었던 이동진 기자는 씨네21 김혜리 기자, 영화평론가 정성일, 김영진, 듀나 등과 더불어 90년대 말 영화 비평을 이끌던 선두주자였다. 본격 고급 영화 비평지를 선언했던 키노 편집장 정성일, 얼굴 없는 평론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듀나, 기존의 일방적인 평론 분위기를 벗어던진 영화평론가 김영진, 인터뷰에서 강점이 발휘되던 김혜리 기자와 함께 이동진 기자는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무렵 나타나, 개성 있는 문체와 스타일로 소위 말하는 주류 영화 비평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선일보에서 이동진 기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적당히 경어체를 혼용하는 특유의 문체와 섬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였던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는 조선닷컴이 없던 시절에도 인터넷에서 기사 전문이 돌아다닐 정도로 인기가 있던 칼럼이었고, 중장년층 남성 독자가 유난히 많은 딱딱한 느낌의 조선일보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또한, 기존에 팽배했던 분석 중심의 영화 비평과는 달리, 쉬우면서도 부드럽게 읽혀지는 그의 글은 남녀를 떠나 독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론개혁 진영이 조선일보를 맹공격하던 시기에 연재되던 그의 영화칼럼은 안티조선의 깃발 아래 사회적으로 지대한 비판을 받고 있던 조선일보의 수구보수적인 색채를 일시적으로나마 잠시 가려주는 일종의 그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계속해서 이동진 기자에게 지면을 할애하고, 지난 1월 퇴사할 때 극구 만류한 것은 이처럼 조선일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희석시켜 줄 수 있는 기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이동진 기자는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끝내 조선일보에서 퇴사했다. 대학원 진학, 감독 데뷔, 영화잡지 편집장 등 그의 신상에 관해 갖가지 추측과 소문이 흘러나왔지만, 대부분 많은 독자들은 일단 그가 조선일보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환영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동진과 조선일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에서였다.

1인 미디어인가, 네이버 기자인가

그로부터 약 두 달여가 지나고 이동진 기자는 놀랍게도 포털사이트 네이버로 컴백한다. ‘이동진닷컴’을 오픈하고 ‘이동진의 영화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기사 컨텐츠를 공급하기로 네이버와 독점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성보다는 마음을 믿어보고 싶다며 자신의 조선일보 커뮤니티에 14년간의 회사 생활을 접는 글을 올린 지, 불과 두 달 만에 네이버로 돌아온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조선일보를 떠난 것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식거나 글을 쓰는 창작에 대한 고통이 너무나 힘겨워서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기자란 직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였다면, 불과 두 달 만에 해결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 휴직이나 유학을 통해 얼마든지 시간을 가지고 정리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퇴사를 결심한 것으로 볼 때, 이동진 기자는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추리를 해볼 수 있다.

물론 지면을 벗어나 인터넷 글쓰기에 대한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다. 지면으로 제한당하는 속박을 벗어나, 형식과 분량에 얽매이지 않고 얼마든지 쓰고 싶은 만큼 텍스트를 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터넷은 분명 종이신문의 지면보다 훨씬 자유스럽다. 종이신문 내지는 지면을 통해 글을 접하는 독자층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과 교감을 하기 위해 이동진 기자가 인터넷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왜 하필 포털사이트이고, 네이버인가 하는 점이다. 따로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이동진의 영화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기사 컨텐츠를 공급하는 ‘이동진닷컴’은 네이버 블로그다. 기존 언론사처럼 별도의 닷컴이나 사이트를 구축한 것도 아니고, 다른 모든 포털에 기사를 전송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독점 계약을 맺은 네이버에서만 이동진 기자의 글을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 이선민 기자는 3월 16일자 기사에서 ‘전문 콘텐츠를 확보한 프리랜스 기자와 새로운 플랫폼인 포털의 만남과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적어도 안티포털 진영 입장에선 조선일보 기자가 네이버로 옮겨 ‘네이버 기자 이동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각종 포털 뉴스 관련 토론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기사를 생산해내지도 않는데도 왜 그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냐고 반문하곤 한다. 자체 생산한 기사의 비율을 운운하면서 신문법 적용을 받지 않는 포털, 그 중에서도 네이버의 예를 한 번 보자. 민훈기 기자의 민기자닷컴, 일간스포츠 최원창 기자, 스포츠 2.0 김형준 기자, 스포탈코리아 서형욱 편집장, 박문성 SBS 축구 해설위원에 이르기까지 스포츠 섹션은 사실상 네이버만의 기사가 생산되거나 특화되어 공급되고 있다. 저마다 갖은 수식과 표현을 써가며 뉴미디어라고 포장하지만, 독자 중 누군가가 ‘네이버 기자‘라고 부른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이동진 기자의 예처럼 독점 계약까지 맺었다면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 ‘이동진닷컴‘에서 공급되는 컨텐츠인 ’이동진의 영화 풍경‘을 보면서 조만간 마이데일리 배국남 기자, 헤럴드경제 서병기 기자, 매거진T 강명석 기획위원 등 유명 기자와 필자들이 저마다 비슷한 포맷의 닷컴을 빙자한 블로그를 하나씩 개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오버일까.

이동진 기자가 모르고 있는 것

개인적으로 이동진 기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조선일보를 퇴사해 프리랜서로 지낸지 불과 두 달 만에 향한 곳이 포털이었다면, 과연 포털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단적으로 자신의 글이 대체 어떻게 편집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알고 있을까. 설마 자신의 칼럼이 매일 같이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다고 항변한다면, 그것은 독자와 만나는 칼럼니스트로서 직무유기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수십 개의 언론사로부터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기사를 바탕으로 취사선택, 편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슨 기준으로 편집하는지는 우리나라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오직 포털 뉴스 에디터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철저하게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사 내지는 포털 업계를 비판하는 기사는 거대한 인터넷 공간의 구석으로 처박힌다. 아무리 안티조선이 깃발을 휘날려도 들은 척도 안하던 과거 조선일보의 행태와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설사 뉴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피해가 발생되더라도 포털은 전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포털을 제어하고, 감시할 법체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분위기가 조성이 될지라도 포털은 책임을 해당 언론사에 돌리는 교묘한 술수를 거침없이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 80%의 인구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할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이 비대해지고, 막대한 광고 이득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기본적인 윤리의식조차 없는 기업인 것이다. 저작권, 지적재산권, 초상권, 인격권 등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하루에도 수천 번씩 훼손되고, 여론을 조작하고 호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클릭형 기사를 재생산해내는 곳에 자신의 소중한 글을 올리고 싶은지 궁금할 지경이다.

혹시 이동진 기자가 조선일보에 기자로 재직한다는 것, 칼럼을 쓴다는 것으로 인해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이 된 적이 있었다면, 네이버에 기사를 공급하는 지금 이 순간부터는 훌훌 벗어버려도 된다. 적어도 지금의 조선일보는 자신의 치부를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있고, 자사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사 컨텐츠 제공료에 맞춰 할당된 기사 꼭지수를 채우기 위해 출근하자마자 보도자료를 드래그 하고, 밤늦게까지 속보 경쟁에 시달리는 수많은 후배 기자들의 눈물을 생각한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독립적인 컨텐츠 생산의 길을 걷길 바란다. 이동진 기자에게 네이버는 조선일보 보다 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진 기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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