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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s1tv 시사기획 쌈에서 성폭력 피해자들과 가족의 인터뷰를 보면 왜 여자 선수들이 성폭력을 당하고서도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지가 드러난다. 결국 본 방송에서도 지적했듯 구조적인 문제인데 사실상 이 프로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문제란 것이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와 그대로 빼 닮아 있다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구조 속에 삶을 살던 것은 거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라면 모두 경험이 있는 것일 터여서 전혀 생소한 환경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방송을 보면서 그 환경 구조가, 자신들이 처해있던 환경과 유사함에 친숙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마 굳이 차이를 들자면 많은 남성들도 있을 것이기에 성적인 방면에서그 정도의 폭력은 경험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 그려낸 폭력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파괴가 쉬운 환경 속에, 마치 물고기가 물에 살 듯 거의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도 살아왔을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남성들도 성희롱 정도의 폭력에는 무방비 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왔다는 것 또한 사실일 것으로 본다. 그렇게 본다면 남성들도 강간은 동성 간의 항문 성교를 즐기는 사람이 소수이듯 강간을 당한 경험은 소수일 것이지만, 성적인 모욕이나 학대, 희롱 등 수준의 폭력은 역시 대부분 경험해오지 않았을까 한다.

스포츠인들 중 남성 스포츠 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 스포츠 인들의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 남성들이고 여성의 육체는 이들로 하여금 침범에의 더 큰 목표의식을 가지게 만든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실 남성 스포츠 인들도 과도한 학대, 폭력, 인격 모독 속에 무방비한 채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산발적 개인의 단위에서, 조금 동정하는 감정을 간혹 느낄 수 있을 정도지,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소아 희귀병 어린이 돕기 성금, 금강산 댐 성금처럼의 사회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관심과 도와주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경우 잘되라고 때린 건데, 혹 한국 특유의 문화라는 것이 있는 건데, 위 아래 기강, 질서가 잘 잡혀야 학생들도 정신 차리고 잘 배울텐데.., 하고 나름대로 효율성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것들이 “하늘과 같은 은혜”를 잉태하고 있어 언제든 베풀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즉 스승의 날 집단으로 짝짝 박수 받고 찬양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보통사람과는 좀 다른 숭고한 존재인 스승들로부터 받는 것 인데, 설마 잘 되라는 차원에서 결국은 잘 되겠지… 하는 나이브한 인식을 이 현실 세계는 다시 한번 가열차게 배신하고 어리석은 약자는 슬픔의 눈물만 흘리면 그만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한국 드라마의 슬픈 에피소드들 중에서는 45분짜리 길지도 않은 방영시간에 15분 정도는 단지 우는 장면으로 때우는 게 가능하게 되지 싶다.) . (이러한 유치한 신파극 같은 장면은 현기증 나게도 지난 17대 대선 정동영 측 선거 진영에서 주요 전략 중에 하나를, 남들과는 좀 다르신 정의, 공정의 수호여신 같으신 숭고해 보이는 검찰님들에게 목메어, 검찰 조사 결과에 목메고 있다가 고대 했던데로 님들이 현실 속에선 움직이지 않으니(?) 목메달려 질식 당한 다시 한번 유치한 신파극 같은 장면을 연출한 바도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변수를 가지고 가장 큰 무기로 삼았으니 이는 적과의 경쟁에서 마치 모세의 홍해의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열심히 기도하다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 다 빠져죽은 교훈을 얻게 된 것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미리서 필자의 저서 인간혁명게릴라 경서 1권의 초입 부분인 컨트롤에 대한 부분만 제대로 숙지했어도 이런 미숙한 전략을 짜는 오류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

2. 사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계에 성폭력과 기타 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을 들으면, 특히나 아직 기회가 창천같이 놓인 젊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 같은 경우 더러워서라도 그만두고 빠져 나오고 말지라는 생각을 안 할까 매우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와 같이 위로부터의, 강자로부터의 권력이 남용되고 아래에 있는 사람의 존엄과 심령은 마구 침범 당하고 파괴되는, 그들의 의식 속에 고려되지 않는 환경인 것은 그 밖을 나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인식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 자체가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조, 이익 창출의 틀로써 구성되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스포츠계가 이렇게 야만적인 환경임을 알면서도 피해자 측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승리를 쟁취하지 못한 것 또한 어쩌면 한국 사회 전반 또한 이러한 환경 속에 있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개인이 그토록 착취 당하고 능욕 속에 삶을 살아도, 이 울타리를 벗어나 나온다 해도 어짜피 또 같은 종류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것을 유전적,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어차피 이왕 들어선 길 아무리 험난해도 성황당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왕이면 성군이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라도 부여잡고 말이다.(이러지라도 않으면 어쩌겠는가? 세상이 갑갑하고 해결책이 영 안보이면 술이라도 마시고 담배라도 펴야지..) 이러한 희망을 한 줄기 빛으로써 부여잡고, 보이지 않는 저 어둠을 향해 계속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낼 것이다.

아니 이렇게 힘든 열악한 세상이라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현실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것 같이, 그러한 위와 같은 사고구조를 구입함으로써 한가닥 지탱해나갈 힘을 낼 것이다. 곧 이렇게라도 다소나마라도 정서적 안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미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래서 사실 어쩌면 이들의 이러한 대처를 그저 단순히 어두운 인식 속에, 용기가 없어서 소극적 선택을 했다고 볼 것이 아닌, 나름대로 그들에게 있어서도 일종의 의지의 선택, 그리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나온 일종의 합리적인 선택, 고도의 내적 에너지와 도전에 응전해 나가야 하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일종의 결단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이와 같은 선택은 우리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너무 흔히 보여주는 같은 맥락이기에 또한 친숙하다.

3.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기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깨어있음을 바탕으로 한, 이런 현대인으로써의 기본적인 소양의식을 바탕으로 한 인간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려는 시스템의 사회가 한국 사회의 근간은 아니다. 이와 배치되는 가치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스템이 보편적 이익 창출의 모터로써 돌아가고 있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이익 창출의 시스템 속에서 말살 당하고 뭉개지는 인간의 존엄, 심령세계는, 박탈당하는 진정한 내면의 개인성, 인격의 성장 기회라는 사실은, 한국사람 대다수가 느끼게 되는 것일 수 있으나, 대개는 합리화 할 논리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의를 위해서라는, 그래서 아름다운, 극기복례의 높은 인격이라는 등등 계속 높은 나름대로 고상한 행동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훗날 더 크게 되기 위해서라는, 등등등 이와 같이 이미 잘 완성되어 차려져, 채택될 것을 기다리고 있는 히트 상품들(논리구조)을 구입하여 스스로 정서적 안녕을 취하는 것이다. 물론 이 행위의 결과가 십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부정적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기본적으로 감정적 평안, 정서적 안녕을 추구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부족해 보이는 점이 있어보인다고 그 행동 모두를 존립할 근거가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량품을 구매하는 것은 담배나 마약을 구매하는 것 같은 방편일 수 있다는 데서 불행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다시 한국사회의 수직적 인간관계 속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의 구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의도되어져 왔다. 곧 교육, 훈련 받아왔다. 그래서 결국 동등한 관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이를 토대로 관계 맺음을 해나가는 것에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 보다, 상하로 가르는 관계 속에 스스로 처하는 것이 편하도록, 또 그 관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내면 안의 정서적 기능을 발달시켜 육성되어 왔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는 마치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이용당하는 대다수의 대중에게 어떤 대용품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마약이랄지, 술, 성 산업, 전두환 정권의 음모라고 일컬어지는 3s 산업이랄지, 전체주의랄지, 같은 계열 상품인 국가주의랄지… 전통 히트 상품에는 유교의 운명적 수직관계 아이템도 있겠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은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와 상품 속에서 안녕을 느낀다.

한때 한국 사람들이 햄버거와 피자가 들어온다고 자신들이 습관되어 있는 한식 아이템이 없어진다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정서적 안녕을 느끼는 그러한 것들, 이렇게 자신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혹 생각하게 되어진) 것들을 허물고자 하면, 한식아이템이 없어지는 것처럼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패권주의, 민족주의라는 상품을 구매했고, 또 그러한 상품선호의 기호를 고급 화(sophisticated) 시켰기 때문에..

그래서 이는 객관적으로 옳고 그르냐의 문제보다 얼마나 자신이 구매 했을 때 좋으냐, 먼저 물질적 이익이 따르느냐를 고려하고,

그리고 당장 눈앞에 기대되는 물질적 이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면, 자신이 감정상의 안정을 찾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고려한다.

그래서 이번 성이라는 거대한 이슈를 건듦으로써 아마 제도적 장치는 다시 많이 강구되고 또 장착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의 혹 법전에 나와있지 않은 미래에 가능할 성희롱 등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얼마전 과거만해도 한국에선 부부강간이란 성립될 수 없었고 많은 성희롱이 성희롱으로 여겨지지 않았듯이) 왜냐하면 토양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토양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녕감을 느끼는 그러한 것들이다. 어찌보면 물질, 돈이라는 것도 정서적으로 안녕감을 위해 추구하는 대상이라고 본다면 이 정서적 안녕감이라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땅을 갈아 엎고 잘 속아 놓지 않으면 척박한 땅에서 잘자랄 잡초만 자라고 벼는 나지 않을 것이다.

4. 그래서 다시 한번 생산을 창출하는 문화라는 차원에서 문명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래서 얼마나 윤리적인 문명을 가지고 있느냐, 책임의식에 민감한 문명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로 다시 귀결되는 것이다.

책임의식을 잘 느끼려면 상대가 자신보다 하위에 있어선 안된다. 누구도 애완동물과 장난감에 제대로 된 책임감 있는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지 않듯이 말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가 얼마나 자신과 딜을 맺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있는가 이렇게 모두가 존중 받을 만한 훌륭한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 가치있는 대상들인가, 동시에 또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이지 않는가? 하는 것을 인식하는 방면에 민감한 문화인가 아닌가이다. 한국 문화는 남을 못나고 모자라고 부족한 면을 보라고(그래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니) 학교에서부터 가르치는가? 아니면 어떻게 자신과 아름다운 것을 창출할 수 있을 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연습시키는가?

결국 이런 것을 모르니 괴롭히고 왕따하고 강간한다. 역시 섹스를 하니 코치들이 사랑스러워 그런가 덜 때리지 않는가?

그래서 한국 문화 자체가, 우리의 생산을 해내는 차원에서 문명이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또 근대화를 이끌어 내신 독재자 국부 같은 분들이 만든 한국 특유의 현대성이라는 문명이, 빨갱이 근처라도 가면 죽이고 철없는 놈 사회 정화 운동하고 열심히 때려잡고 살아서 못나오는 혹 장애우가 되면, 신체의 일부를 포기하면 나올수도 있을지 모를 지옥으로 보내고 (재미있는 것이 서양의 록그룹들이 묘사한 지옥은 살아서 나올 수 없고 몸을 잘라서 몸의 일부로써 빠져나올수있을지 모르겠다라는 지옥을 한국은 교육대 등으로 현실로 창출해 낸바 잇다. 집단 수용소 같은 지옥이 멀리만 있었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잘못있는 ‘쓰레기’ 인간들을 열심히 비판해야 비로소 위대한 “자유민주주의”가 탄생될거라고들 교육받아 왔고 의식 속에 내재화, 셋팅되어 있기 때문에, 노예가 노예제도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써 나타났듯,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이듯, 결국은 좋은 제도를 가지고 오고 발명해 적용해도, 약발이 받기 힘들다. 크게 효과를 단기적으로 보기 힘들 것이다, 여전히 그러한 기제 속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디아가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 되었지만 그 약발이 못받는 것이 인간 불평등과 뿌리깊은 신분제도 문화 때문이듯, 그들은 이 신분 문화가 안정을 통한 발전, 이득을 창출한다고, 이상세계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믿는 것과 같이…. <다음 번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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