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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는 90년대 신세대 사기극의 목격자

G세대론과 88만원세대론, 30대 배제시키고 있어

조선일보의 G세대론 (88올림픽 이후 태어나 부모세대의 집중투자를 받으며 글로벌 능력을 갖춘 20대 초반 세대)과 친노좌파 진영의 88만원세대론은 90년대 중반 열풍같이 몰아쳤던 신세대론의 두 가지 다른 노선을 각각 계승했다.

신세대론은 신세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386세대들이 이념에 따라 각각 정치적·상업적 목적으로 유포시켰다. 당시 신좌파 386세력은 80년대식 정치 중심의 투쟁을 넘어 미디어와 문화의 영역에서 전방위 투쟁을 벌이겠다는 목적으로 신세대론을 띄웠고, 이미 기업에 진출한 386세대들은 소비능력이 크게 신장된 신세대들에 상품을 판매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서태지의 이중성은 신세대 담론의 두 가지 노선 때문

바로 이들 신세대의 대표주자였던 서태지에 대해 지금까지도 그가 문화투쟁의 전사(戰士)였는지, 상업주의의 화신(化身)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멈추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신세대론의 두 가지 역사적 맥락 탓이다. 즉 서로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88만원세대론'과 'G세대론'은 사실 두 가지 흐름의 신세대론을 각각 따로 승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88만원세대론'이 사회구조를 중시하며 여전히 저항을 강조하는 반면 'G세대론'은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며 "너는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바로 G세대론과 88만원세대론에서는 이러한 과거사의 문제 때문인지, 신세대론의 당사자이자 목격자인 30대를 배제시키고 있다. G세대론은 90년대의 신세대론에서 나온 글로벌,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영화와 스포츠로 상징되는 대중문화 이해능력 등등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G세대론은 20대와 30대를 갈라놓지 않으면, “그렇게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신세대 30대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수 없게 된다.

반면 88만원세대론은 20대를 사회혁명의 주체로 올려놔야 하기 때문에 30대에 비해서도 훨씬 더 비참한 현실을 강조하면서, 30대와 20대를 분리시킨다. 우석훈 소장은 김대중 정권의 벤처창업 정책을 예로 들며 지금의 30대가 20대였던 90년대까지는 청년층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당시 벤처창업은 386세대가 주도했지, 당시 20대가 아니었다. 지금 30대 청년창업 CEO들의 회사 중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조차 찾기 어렵다. 30대 인터넷기업가들은 386세대가 만들어놓은 포털 독점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더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창의력과 상상력이 뛰어나다던 신세대 30대, 지금 뭐하고 있나

지금의 30대가 20대였던 시절, 현재의 20대들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신세대로서 사회적 주목을 받아왔다. 신세대론의 절정기였던 1995년과 1997년 사이 종합일간지에서만 무려 6000건의 신세대 관련 기사를 쏟아냈을 정도였다. 1997년 IMF 위기로 신세대론은 잠시 주춤했으나, 사실 상 88만원세대론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신세대론의 위력은 살아있었다.

문제는 신세대론이 시장에서는 구매력이 높아진 청년층을 위한 상품판매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2000년 이후 신세대들이 30대에 접어들었을 때, 언론은 실질적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창의적인 신세대를 발굴해야 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신세대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신세대 스타를 찾아낼 수 없었던 언론은 억지로 인물을 띄우는 무리수까지 두고 만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밀레와 윤송이 전 SK 상무이다. 이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언론이 유밀레와 윤송이 전 상무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90년대의 신세대 이론을 그대로 꿰어맞춰, 무언가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갖춘 것처럼 왜곡과장 했다는 것이다. 이 둘 모두 기업가이지만, 기업의 책임자들이 퇴근 이후에 자신의 취미생활을 유유히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은 마치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자신의 사생활을 즐기며, 기업 회의조차 노래방에서 한다는 수준으로, 이들을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진 괴물로 묘사했다.

88만원세대론이 부각되면서 이제 더 이상 이런 신세대 괴물들은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도 벤처기업계는 물론 정치계, 문화계, 언론계, 학계에서 30대 신세대들 중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거의 없다. 그리고 30대 스스로 이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 점에서 30대는 20대 시절 좌파와 우파가 합작한 대국민 세대 사기극의 희생자이자 목격자이다. 그래서 30대는 가장 냉소적인 세대가 되어버렸다. 좌파 진영에서는 20대와 10대를 상대로 이명박 정부 타도 투쟁을 선동하지만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 30대가 가장 체제 비판적이다. 지난 2월 19일 인터넷신문 폴리뉴스의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정부에 대해 ‘못한다’는 의견은 30대가 64%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를 이어 20대(53.5%)였고, 40대(50.8%)와 50대(39.7%), 그리고 60대 이상(28.6%)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은 30대 중에서도 여성이 전체 세대와 성별 분류 중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 해 9월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걸과 30대 여성은 오지 23%만이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고, 20대 여성(34%)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이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30대 남성은 39%의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의 20대도 90년대 신세대에 포함된다

90년대의 신세대 담론은 신좌파 페미니즘과 맞물리면서 여성에게 집중되었다. 언론이 띄운 신세대 스타들도 유밀레와 윤송이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재의 30대 여성들은 육아에 대한 부담 등등으로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런 30대 여성들에 대해 현재까지도 ‘골드미스’, ‘화려한 싱글’ 운운하지만, 이들이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나마 왜곡되었다 쳐도 30대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논의라도 되고 있지만, 30대 남성의 삶은 공론의 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언론이든 학계든 30대의 삶에 대해서 논의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90년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생생히 신세대 사기극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30대를 이야기하려면 90년대 신세대론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검토하기 시작하면 지금의 20대를 규정하고 있는 88만원세대론과 G세대론의 뿌리조차 흔들리게 된다. 쉽게 말해 “너희 30대만 입 닫고 있으면 20대와 10대 가지고 다시 한번 세대 사기극을 한판 벌일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세대론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상, 30대 문제를 그대로 덮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의 G세대론과 88만원세대론은 모두 90년대 신세대론에서 파생된 종속 담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30대 스스로 경제와 문화단체들의 대표를 맡는 인물들이 속속 나오면서, 사회적 발언권을 확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처럼 세대를 잘게 나누는 나라는 없다. 신세대 이후, N세대, 월드컵세대, G세대 등은 불과 4-5년 단위로 세대를 나누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세대는 오바마부터 20대까지 무려 20년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의 세대는 세계사적 흐름을 타고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구권의 몰락, 문민정부의 탄생, 서태지의 등장, PC통신의 상용화가 시작된 1992년에 성년이 된 세대의 흐름을 현재의 20대들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좌우 양 진영 모두 정략적 목적으로 세대를 나누고 싶어도, 역사까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30대와 20대가 하나의 세대를 이루며, 세계를 함께 주도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이후에 또 하나의 세대가 나온다면, 그것은 남북통일 이후 중국과 몽골까지 한국의 경제 영토가 되는 시기, 그때는 지금의 30대와 20대와는 분명히 차별점이 있는, 가장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세대가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대한민국의 청년세대는 90년대의 신세대 하나 뿐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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