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지방선거 충격 탓이다. 30대는 386세대 40대보다도, 심지어 투표혁명 주역이라던 20대보다도 민주당을 더 높은 비율로 지지했다. 실질적으로 현 정부에 가장 부정적인 세대라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갑자기 이목을 끌긴 했지만, 그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만큼 정보도 분석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386세대가 만들어낸 X세대 개념에 크게 영향
30대, 1970년대 생들은 과연 어떤 세대일까. 모든 세대가 그렇듯 한 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속성만은 뚜렷하다. 386세대에 종속된 세대라는 것이다. 괜히 ‘포스트386’이라는 모욕적 호칭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현재 각종 미디어에서 30대 본인들이 주장하는 세대 특성 중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개인주의세대라는 점이다. 나는 나, 내 개성대로 산다, 내게 맞지 않는 건 부정한다, 아무도 나를 규정할 수 없다 등등. 그러나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386세대의 유도에 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위 특성들은 사실상 1990년대 중반 등장한 X세대 특성과 거의 같다. 현 30대가 당시 X세대로 불렸으니, 거기서부터 굳어진 세대인식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X세대의 실체가 우습다. 각 기업 실무담당자로 올라선 386세대가 세대 판촉용으로 구미지역에서 직수입한 뒤 자신들 입맛에 맞게 한 차례 변질시킨 홍보용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단어가 국내에서 처음 쓰인 것도 1994년 한 화장품 회사의 CF에서였다.
물론 1990년대 청년세대 개인주의화는 X세대 개념과 상관없이 진행된 것이긴 하다. 그러나 386세대 주도로 온갖 미디어를 통해 이뤄진 ‘X세대 띄우기’가 이를 극단적인 방향으로 부채질한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X세대 직장인, 노래방에서 회의를 하는 X세대 기업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연신 ‘나’를 외치는 X세대 청년 등 ‘만들어낸’ X세대 개념에 부합하는 청년상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30대는 386세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 갇혀있음에도 ‘아무도 나를 규정할 수 없다’고 외쳐대다 사실상 ‘386세대 추종세력’으로 규정돼버린 상태라는 이야기다.
대중문화 통해 386세대로부터 정치 과외수업
한편 30대는 386세대와 달리 탈정치세대라는 주장도 종종 등장한다. 액면 그대로는 맞는 얘기다. 민주 대 반민주 단순 구도가 종식된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며 상대적으로 정치와 이념에 관심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30대에 정치색이 없다 보는 것도 오류다. 극단적 개인주의 탓에 조직화 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그 점만 빼고 나면 사실상 30대는 이념적으로 386세대와 방향이 거의 일치한다.
당연한 일이다. 30대는 386세대의 과외수업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30대는 1990년대 대중문화 폭발을 만끽한 세대다. 그런데 이를 리드하는 대중문화 전문미디어가 바로 386세대 손에 쥐어져 있었다. 386세대는 자신들 정치이념을 대중문화에 녹여 자연스럽게 당시 20대에 주입시켰다. 결과적으로 신좌파적 성향이 30대 정서에 뿌리 깊게 뱄다. 결국 386세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이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밖에도 30대가 386세대에 종속된 측면은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큰 의문이 생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30대가 정작 386세대보다도 더 반정부적 성향을 보인 까닭은 대체 뭐냐는 것이다. 이는 경제 불황을 기점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0대는 20대 중후반에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386세대는 외환위기 이전 사회에 안착했고, 20대는 사춘기를 불황 속에서 보낸 세대라 적응력이 강하다. 그러나 30대는 다르다. 뚜렷한 세대고민 없이 386세대 그늘에서 ‘나는 나야’만 되뇌며 살아온 세대다. 충격과 고통은 컸고, 막연한 낙관주의와 386세대의 부추김 속에서 키워진 이상은 각박한 현실과 어마어마한 괴리를 낳았다. 곧 패배주의에 휩싸였다.
그렇게 2010년이 찾아왔다.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설계해야할 시기에 제대로 자리도 못 잡았다.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세대이익을 대변할 조직 만들기는 꺼린다. ‘나는 내 개성대로 살뿐이니까.’ 누군가 나를 대변한다는 발상 자체에 거부감을 표한다. ‘나는 나일뿐이니까.’ 나아가 ‘세대’라는 개념 자체도 부정한다. ‘아무도 나를 규정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건 그저 386세대가 만들어준 놀이터 포털에서 한껏 한풀이나 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386세대가 짜준 ‘이게 다 보수우파 때문이다’ 프레임에 따라 자기 세대이익에 관심 없는 사람이더라도 일단 표를 던져주고, 다시 만족스럽지 못한 삶으로 돌아와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뿐이다.
과보호와 경제호황 속에 감성이 발달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세대가 경제 불황기에 놓이면 그 세대는 곧 가장 냉소적인 세대로 변모한다. 그러다 냉소주의가 극에 달하면 반동을 얻어 튀어나온다. 미국의 오바마 세대도 그렇게 탄생했고, 일본의 로틴 세대도 그렇게 등장했다. 당장 우리 20대만 해도 그렇다. 냉소주의를 발판으로 튀어 올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세대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30대는 딱히 냉소적이지도 않다. 그저 나약할 뿐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가 복합돼있다. 먼저 30대가 태어난 1970년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구호가 시작되던 때다. 형제가 적거나, 아예 없이 외동인 경우가 많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 사회문제화 됐던 부모의 과보호를 받고 자란 세대다. 한 마디로 ‘과보호 1세대’다. 여기까지는 현재 20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차이는 30대가 사춘기를 보낸 1990년대는 중산층이 자리를 잡아나가던 경제호황기였다는 점이다. 어려움 하나 없이 컸다.
부모의 과보호, 경제호황, 386세대의 바람, 그런 배경이 한데 뭉쳐지니 전 세대 중 가장 나약한 세대, 가장 현실극복의지가 부족한 세대, 선(先)세대에 짓눌려 살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며 오히려 존경만 보내는 추종세대가 된 것이다.
또한 그러다보니 30대는 가장 여성화된 세대, 가장 감성적인 세대가 되기도 했다. KBS 생방송 심야토론 ‘지방선거 30대 표심, 무엇을 말하고 있나?’에 패널로 출연한 시사IN 고재열 기자가 “30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향’에 안 맞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배경도 바로 이런 것이다. 나약함은 곧 감성적 사고의 폭발원인이 되고, 이성적 사고의 마비를 일으킨다.
계기는 언제 어느 때라도 닥칠 수 있다
그렇다면 30대에는 386세대에 없는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미래를 향해 치고 나갈 무기는 과연 있을까. 적어도 특기할 만한 부분 정도는 있다. 30대는 특유의 자폐화된 성향 탓에 마니아적 기질을 상당부분 지니고 있다. 주로 인터넷과 대중문화 분야에서 이 같은 기질이 발동된다. 직업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하는 일인데도 사실상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도전정신이 약해 이를 직업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기존 사회의 프레임 안에서 직업을 찾은 뒤 취미로만 몰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인터넷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30대이며, 대중문화 소비방향을 주도하는 것도 30대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트위터 등 신(新)인터넷 미디어에 열중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경제 불황기에 둔화되기 쉬운 대중문화 소비를 꾸준히 유지시키는 게 바로 30대의 사회문화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비록 생산적이라 보긴 힘들지만, 가장 왕성하면서도 민감한 소비세대로서 30대의 사회적 기능을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물론, 이들이 어떤 계기로건 세대생존을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떤 방향이 설정될 수 있을지 또한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계기라는 건 본래 극히 소수에 의해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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