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광주전라=정재학 편집위원) 고향 마을에 온 지도 벌써 6개월이다. 고향의 산과 들판 속에서 고향사람들과 더불어 삶과 일상을 함께 하면서 산 지도 6개월이다. 품이 넉넉한 호남의 평야는 지금 눈에 덮여 온통 하얗다. 일망무제 (一望無際),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이따금 들판을 가로지르는 시냇가에서 철새들이 떠오른다. 한 여름 온동네 가득 단맛 향기를 떠돌게 하던 복분자 밭이랑에 꿩 울음소리가 들린다.
시골 들판 풍경은 보이는 물상(物象)마다 그리움 같은 애틋한 촉감이 움직인다. 하얀 눈밭에 아이들이 뛰놀고, 새들이 나르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개들이 꿩을 몰고, 모든 것들이 활짝 피고 숨져가는 생명들로 가득한 곳. 정치도 저런가 싶어 발걸음을 멈춘다.
마치 감성(感性)이 풍부한 젊은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감성은 이성보다 더 뜨겁다. 뜨거운 감성은 뜨거운 몸속에서 나온다. 특히 감성이 젊은 몸속에서 움직이며 태동할 때, 그것은 거대한 숨소리를 내고 마침내 폭발하는 물결을 이룬다. 내 젊음이 그랬고, 곧 뒤따라오는 젊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성(感性),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목소리들과 뜨거운 피. 거기엔 소박한 꿈과 먼 미래를 달려가는 어여쁜 소망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자리한 마지막 끝에는 태산 같은 조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성(感性)은 그 무엇에 대한 결론과 해법을 줄 수 없다. 이성(理性)과 합리에 대한 단련이 없는, 논리와 이해가 부족한 감성(感性)은 이용당하기 쉽다. 논리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은 순수하다는 뜻이다. 권력에 미친 정치인들은 그 순수한 감성마저 이용하고 있었다.
고향마을 들판이 막다른 먼 곳엔 어린 시절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태고(太古)적부터 들녘과 마을을 지키던 산이 있었다. ‘고산’이라는 이름의 산이었다. 언제나 생명이 물결치는 고향마을 들녘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산이었다.
산은 고요한 베풂이었다. 들을 위해 말없이 물을 내려 보내고, 바람을 내려 보내고 있었다. 시대와 세월의 흐름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거대함. 들판이 움직이는 젊음이라면 산은 움직이지 않는 불변의 진리와 부모님 그리고 조국이었다. 언제나 있는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다리는 산과 조국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우리 고향마을의 정치 풍경에도 그런 산이 있었다. 손학규와 안철수가 요동치고, 민주당과 민노당이 통합진보당이 되고, 민주통합당이 되는 그런 들판에서 누군가는 움직이지 않는 장중(莊重)한 정치적 태산(泰山)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엔 흔들리지 않는 소신(所信)과 장엄하고 무거운 정치를 오래도록 경영해 오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이 사람아, 정치가 애들 장난인가?”
경로당에 겨울 농한기철 일손을 놓은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정치는 감성(感性)이 아니고, 요동치는 들판이 아니고, 태산(泰山)이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박근혜만한 사람이 없어.”
외교 국방 남북관계 통일 등 허다한 정치적 현안을 생각하고, 트위터나 SNS에서 일어나는 너무도 가벼운 감성(感性)의 정치를 지켜보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누가 있어 중국의 후진타오와 통일한국을 논하고, 미국의 항구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며, 러시아를 우군으로 만들 것인가?
그래서 들판과 마을은 산을 우러르며 산다. 산은 들판을 침범하지 아니하며, 오직 그 자리에서 장엄한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물과 바람을 내려주며, 고사리며 취나물이며 더덕이며 딱지며 온갖 버섯과 산과일을 내어 줄 뿐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촐랑대며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보다 산(山) 같은 정치를 바라는 것이었다.
“박근혜만한 인물이 없어.”
그것은 한때의 인기에 속지 않고, 그 어떤 세력이 음해를 하거나 비난을 퍼부어도 흔들림 없이 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에게 보내는 묵직한 신뢰였다. 소용돌이치는 들판에서 듬직한 태산으로 옮겨가는 시선들이었다. 산에 대한 신뢰였다. 이제 사람들은 속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대한민국의 선거에 개입한다 하여도 이제 국민들은 그 수준을 높이고 있었다.
고향 마을 들판 아득히 먼 곳, 막다른 평야의 끝에는 억만년을 움직이지 않은 산(山)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장중한 산(山)에서 정직한 정치를 배우고 있었다. 조국에 대한 미래청사진을 손에 들고 굽힘없이 걷고 있는 분에 대한 믿음이 살아나고 있었다.
치졸한 진보와 더러운 보수들이 각각 저만이 옳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은 제 몫의 지분과 이권과 자리를 요구하는 것의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철새들처럼 지저귀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도모하고 있을 때, 오직 태산처럼 묵묵히 조국의 앞날을 바라보고 있는 정치인, 박근혜였다.
2012년 1월 눈에 덮인 고향마을. 호남은 박근혜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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