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도 자주 등장해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일본의 신세대 정치가 하시모토 도루는 일본에서 현재도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일본의 전통적 양대 정당인 자민당과 민주당이 아닌 제3세력으로서, 현재 시장을 맡고 있는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열릴 중의원 선거에서 그동안 민심을 잃은 여당인 민주당이 고전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많은 정치철새들이 하시모토가 이끄는‘오사카 유신의 회(大阪維新の)에 공천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도 현재 하시모토의 인기를 보여주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의 도 넘은‘하시모토 죽이기’
다소 강경우파 발언을 해온 하시모토는 그간 일본 좌파세력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아왔다. 또한 북한 언론 및 한국 언론으로부터도 심한 비난을 받았다. 특히 일본 노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를 치를 것이 거의 확실시 되던 지난 10월 말, 일본의 좌파언론인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주간 아사히는 10월26일자로 노골적인‘하시모토 죽이기’기사를 실었다.
해당기사는 주간 아사히가 일본의 유명 논픽션작가인 사노 신이치에 의뢰해 취재한 기사로서, 하시모토의 출신성분을 둘러싼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어린 시절 야쿠자 출신 아버지를 두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 또 과거 일본의 천민지역으로 꼽히던‘부락’지역에서 살았던 과거도 실려있었다. 그러나 이런 과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었다. 하시모토 스스로 그런 사실들을 당당하게 고백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간 아사히는 이 같은 내용을 실으면서 노골적인 네거티브 보도를 하는 과오를 범했다. 몇몇 작가들이 취재, 작성해 온 기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부에서도‘이런 차별적 표현은 사용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을 기사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등 반론이 있었지만,‘하시모토 죽이기’에 혈안이 된 편집부는 다소 차별적이고 과격한 내용이 들어있는 기사를 그대로 활자화 해 버린 것이다.
이 보도가 불러온 파장은 상당히 컸다. 주간 아사히는‘국민의 알 권리’와‘언론의 자유’라는 명분을 호소했지만, 다수 독자들은 이를 도를 넘어선 악의적 보도라 봤고, 곧 주간 아사히에 대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주간 아사히의 사장 대리 및 임원이 하시모토를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잡지를 발행하는 아사히 출판의 사장은“인권에 상처를 준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사장직에서 물러난다.
보도윤리에 대한 책임으로 사표 낸 사장
한국의 언론에선 하시모토의 불륜 사건보다도 비중 낮게 보도된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중립적이어야 할 언론의 자세다.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 정치인, 후보가 있더라도 감정이 들어간 네거티브 공세를 언론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후보를 찬양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선’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이야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부모 이야기를 반복해서 끄집어내며 공격하는 것은‘알 권리’와는 무관한 횡포가 아닐까?
둘째, 책임의 중요성이다. 세계 모든 언론은 필연적으로 오보를 생산해내며, 기사 선택에 있어서도 크고 작은 실수들을 만들어낸다. 자료와 제보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으며, 특종에 대한 욕심 문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바람직하지 않은 보도가 나간 뒤 그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역시 수많은 언론들이 네거티브 보도에 치중하다 치명적인 오보나 도를 넘은 보도를 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에 대해 사과문 게재나 정정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에 비해 이번에 아사히가 보여준 단호한 조치와 책임감은 아직 일본에 저널리즘이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는가?
한국의 경우 좌우를 막론하고 오보, 저널리즘 윤리에 어긋난 보도를 하더라도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고나 지도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사과문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기자나 편집장, 나아가 사장 같은 사람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한국에선 나라를 혼란 속에 빠트리고, 개인의 사생활을 파괴하는 오보를 전달하고서도 태연하게 펜대를 굴리고 마이크를 잡는 기자, 언론인들이 부지기수다. 법정에라도 가게 되면 그토록‘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묵비권’의 애용자로 변신한다.
왜 그럴까? 한국의 언론인들에게는 저널리즘 윤리보다 언론이라는 명함이 주는 권력과 밥그릇이 중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의 기자나 언론인 눈엔 사장까지 기꺼이 보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일본 언론이‘오버’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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