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MBC 사장이 작년 언론노조 MBC본부(MBC 노조)의 내부 부조리를 폭로하고 정면 비판하면서 노조와 대척점에 섰던 배현진 앵커를 뉴스데스크에서 하차시킨 일은 대중은 물론 시민사회에도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배 앵커는 작년 노조 파업을 거치면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MBC를 벼랑 끝 위기로 몰아넣은 노조와 싸워 위기를 극복한 상징적 인물로 떠올라서다. 김종국 사장이 그런 인물을 뚜렷한 명분도 없이 뉴스데스크에서 하차시키고 MBC 노조 소속 기자와 아나운서들로 채운 것은 일종의 도발로 여겨졌다.
언론관련 단체에 몸담고 있는 한 관계자는 “김종국 사장이 도대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면서 “MBC는 노조가 경영하는 방송이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 작년에 김재철 사장을 비롯해 이진숙 본부장 등이 그렇게 애를 썼고, 노조와 싸운 사람들을 보수시민사회도 열심히 지지했는데, 김종국 사장이 들어와서 모두의 뒤통수를 때린 격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종국 사장에 대한 이와 같은 성토 분위기는 배현진 앵커 하차를 계기로 본격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좌파세력을 제외한 시민사회에서 더 납득하기 힘들었던 것은 김 사장이 전 사장인 ‘김재철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방문진으로부터 어이없이 해임당한 이후 김종국 사장이 후임 사장으로 낙점될 수 있었던 것도 김재철 전 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것도 한 이유로 전해진다. 최소한 노조와 야합하거나 ‘노영방송 MBC’를 벗어나려던 기존 경영진의 개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인 김종국 사장의 행보는 이런 기대감을 완전히 깼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언론인협회 박한명 사무총장은 “김종국 사장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속된 말로 김 사장이 지금 똥오줌 못 가리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김 사장을 후임 사장 자리에 앉힌 것은 사장 자리에 앉아 권력이나 누리고 노조에 선심이나 베풀면서 연임할 궁리나 하라는 게 아니다”라며 “김 사장이 본인이 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를 지금이라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애초 김재철 전 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만큼 현재의 MBC 노조에 보내는 ‘화해의 손짓’이 예상 밖이라는 지적이 많다. MBC의 한 관계자는 “김종국 사장이 좌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측근들이 모두 작년 파업, 극렬했던 노사 분쟁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로, ‘노조와 왜 싸우냐,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면서 “김 사장은 그런 기회주의자들, 박쥐형의 인간들을 측근에 앉혔고, 그들이 김 사장을 망쳐놓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 기구 개편설 도는 MBC, 김종국 사장 김장겸 등 개혁세력 제거에 나설 우려 나와
복수의 MBC 관계자에 따르면 MBC 안팎에서는 연말 기구 개편설이 돌고 있다고 한다. 내년 연임을 목표로 김 사장이 기구 개편이란 승부수를 띄워 방송문화진흥회에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이 배현진 앵커를 내치고 MBC 노조 소속 기자와 아나운서들을 기용하는 등 MBC 노조에 우호적으로 나오는 행태를 보면, 이들의 눈엣가시인 보도국을 전면 물갈이하고 미디어오늘 등 좌파매체들이 ‘시용기자’로 폄훼하는 기자들과 언론노조 소속이 아닌 기자들을 보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 충격적 일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김장겸 보도국장의 보직 해임 등으로 현실화할 우려가 있다. 작년 파업으로 무너진 MBC 곳곳의 누수를 막고 구멍을 메워 다시 일으키는 데 큰 공을 세웠던 MBC 내부 직원들을 김 사장이 불신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셈이다.
만약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파시민사회는 사실상 ‘김종국 사장의 쿠데타’ 쯤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김 사장이 오히려 MBC 개혁의 본격적인 불을 당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MBC를 사실상 방기했던 정부여당의 무관심을 깰 시발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김 사장이 이런 충격적인 행보를 예상할 만큼 실제로 좌편향적 인물은 아니지만 이미 현재의 행보를 예상할 수 있는 조짐은 있었다. 미디어오늘 기사에 의하면 지난 5월 차기 사장으로 선임된 직 후 김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에서 ‘김재철 전 사장의 측근이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은 “김재철의 아바타도 ‘김재철 시즌2’도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사장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애초에 밝힌 셈이다. 배현진 앵커 등을 하차시키고 MBC노조에 유화적 행보를 보이는 지금의 행태를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말 김종국 사장의 위험한 승부수설이 떠돌고 있는 가운데 김 사장이 김재철 전 사장이 지핀 MBC 개혁의 불을 자신의 손으로 끄는 역사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MBC 사장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언론인협회 박한명 사무총장은 “김종국 사장의 오판은 단지 개인의 오판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MBC를 다시 ‘노영방송’ 시절로, 정권의 충실한 개 노릇이나 다름없던 노무현 정권 선동방송 시절로 돌리는 것이다. 김 사장이 역사를 거꾸로 돌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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