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굴에 호랑이가 두 마리나 들어왔습니다. 기겁한 토끼들 일제히 비명을 질러댑니다. “여긴 당신들 올 데가 아니에요. 다른 데 가서 놀아요!” 호랑이 한 마리는 신중한 걸음걸이에 눈이 날카롭습니다. 어디서 산전수전을 겪었는지 온 몸이 상처투성이네요. 다른 한 마리는 꼬리에 붉은 색 반점이 찍혀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토끼들의 아우성을 뒤로 한 채 두 마리, 서로 노려보는 눈에 불꽃이 튑니다. 부르스 리의 용쟁호투를 뛰어넘는 호쟁호투가 펼쳐지기 직전이네요.
짐작하셨겠지만 경기도 교육감 선거 이야기입니다. 앞의 호랑이는 조전혁입니다. 학부모의 알 권리를 위해 전교조 명단을 공개했다가 폭격을 당했죠. 덕분에 교사들의 전교조 가입이 주춤했다고 합니다. 뒤의 호랑이는 이재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짜증나는, 노무현-김정일 회담의 조연으로 그를 떠올리겠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중량감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신영복을 교수 자리에 앉혔습니다.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간첩 김질락의 수기에 보면 신영복은 당시 숙대 강사였던 걸로 되어있네요. 이어 조희연, 박성준 등 공안 사건으로 별을 단 인물들을 줄줄이 학교로 끌어들였고 정해구, 한홍구 같은 좌파 학자들도 캐스팅했습니다. 이렇게 성공회대를 좌파들의 아성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이재정입니다.
1914년 성 미가엘 신학원에서 출발, 1992년 성공회신학대학이라는 간판을 달 때까지만 해도 신학과와 사회복지학과 두 개 뿐이던 학교가 급성장해 남한 좌익 이데올로그들의 본산이 된 것은 오로지 이재정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토끼들이 예민해진 것은 당연합니다. 선거가 두루뭉술한 공약 설전舌戰이 아닌 첨예한 현실 문제로 전개되면 자신들의 입지는 없을 테니까요. 이들은 두 사람이 “교육의 전문성과 순수성을 훼손했다”며 비난합니다. 전문성이라. 글쎄요, 알고 있기에 두 사람 모두 교육자 출신에 교육운동으로 성과를 올린 인물들입니다. 이건 이유가 되기에 조금 구차해보입니다.
순수성은 어떨까요. 아마 두 사람 모두 정치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놓고 그리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토끼들은 정말 몰라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요. 인간 세상, 모든 것을 정치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것도 정치를 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요.
현재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쟁점은 김상곤 전 교육감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느냐 브레이크를 거느냐입니다. 무상급식(참으로 이상한 표현입니다. 무상이 아니라 도민 세금 지원 급식이 맞겠죠)과 혁신학교라는 전교조 버전의 명품 학교 문제 그리고 교권을 바닥에 처박고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학생 인권 조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놓고 벌이는 싸움인 것이죠.
실제로 이재정은 “혁신교육이 중단 위기에 놓이는 등 경기교육이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다.”고 출사표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생이 보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오로지 이념 대결인 것은 아닙니다.
이 선거는 오히려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학교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교육 소비자들에게 묻는 선거입니다. 밥 한 끼 덜 먹이더라도 학생들에게 적성과 진로를 제시하고 그것을 산업 현장과 연계하는 조전혁식 교육 청사진인지 인권만 존중하고 교육은 뒤로 밀어 선의의 경쟁을 만악의 근원으로 학생들에게 설명하려는 이재정 스타일의 계획인지에 대한 소비자는 이념에는 관심 없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교육에서도 당연합니다.
결과가 정말 궁금합니다. 그나저나 토끼들 여전히 볼 멘 소리입니다. “그럼 우리는 대체 어쩌라고요!” 어떻게 하긴요. 호랑이가 되세요.
남정욱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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