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제보자'는 엄밀히 말하면 10여 년 전 우리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그 황우석 사건을 다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공익적 제보자의 중요성 따위를 그린 ‘순진한’ 영화도 아니다. 물론 영화가 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의 모순이나 제보자의 고뇌와 갈등을 그리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양념에 불과하다. 시작 전 자막에서 “본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임을 밝힙니다”라고 한 것처럼 이 영화는 단지 황우석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 빼곤 모든 게 허구에 불과하다. 영화는 극중 박해일이 분한 시사교양국 PD 윤민철과 그의 팀장, 시사교양제작국장 등 그들이 얼마나 영웅적 존재인지만 부각시켰다. 줄기세포 조작이나 제보자의 이야기에서 이 영화가 그토록 강조하는 ‘진실’이란 것도 결국 PD들이 얼마나 정의감이 넘치는 존재인지, 그들의 진실추구 노력은 얼마나 고된 것인지,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강조하는데 필요한 장식으로만 소용된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또 다른 ‘영웅만들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제보자'를 거창하게 무슨 사회고발 영화씩이나 보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특정인들에 대한 미화를 목적으로 만든 혐의가 짙다. 영화의 재미만을 추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랬다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작위적이고 의도적인 대사와 장면은 이해가 안 된다. 노골적인 훈계와 미화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과거 반공영화 저리가라 수준이다. 극중 이장환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실을 취재하고 보도하려는 방송사 PD들을 (실제 MBC와 PD수첩) 제외한 언론과 정부 모든 학자들을 병신 취급하는 듯한 대사도 눈에 거슬리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속 언론사 편집국장들은 이장환 박사가 언제든 어느 곳이든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걱정마세요. 저희들이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라고 아부나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국민 호도하는 언론도 문제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혈세를 써대는 정부도 문제지만요, 이 박사 주변 어슬렁거리며 콩고물 주어먹으려는 학자들 정말 한심합니다.” “제 딸에게 떳떳하고 싶었습니다(극 중 제보자인 심민호 박사)” “방송 나가게 되면 따님도 아마 자랑스러워할 겁니다(윤민철 PD)” 극 중 6~8세 정도로 보이는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라는 게 제보의 동기라는 점이나 지극히 교훈적인 대사 등 이 영화는 완성도 자체가 떨어진다.
MBC PD들은 ‘영웅’, 간부들은 ‘악당’ 하지만 사장은 의인?
재미도 별로, 완성도도 별로인 이 영화가 특히 눈에 거슬리는 건 이 영화를 통해 실제 모델이라는 MBC 한학수 PD 등 당시 PD수첩 조직에 대한 미화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미화는 교묘하게 사실왜곡과 이미지 조작까지 하고 있다. '제보자'가 나오자마자 언론들은 한학수 PD와 최승호 PD를 영웅으로 묘사했다.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언론인으로 포장했다. 그러면서 2012년 파업 사태와 관련해 “어떻게 이렇게 정의로운 이들을 징계할 수 있느냐”며 MBC를 악당으로 몰아 비판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또한 언론을 탄압하는 불의한 정권으로 몰아붙였다. 미디어오늘 등이 그랬다. 영화 속에선 윤민철 PD는 물론 그가 사건을 취재토록 허락하고 보호해주는 팀장과 시사제작국장이 양심적 언론인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시사제작국장은 권해효가 맡았고, 윤민철 PD를 지지하고 지켜주는 팀장의 실제 모델은 뉴스타파 최승호PD이다. 이에 반해 경영진은 양심적 보도를 막는 악당에 속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니들 제정신이야. 이렇게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보고를 올리고 제보자 검증부터 했어야지”
더 어이없는 건 영화는 경영진을 진실보도하려는 정의로운 PD들을 가로 막는 나쁜놈들 취급하면서도 사장만큼은 또 미화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윤민철 PD가 “우리는 방송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심하고 공정성, 정확성, 객관성을 바탕으로 진실만을 전달한다~” 운운하며 퇴근 길 사장차를 가로 막자 사장은 “바로 방송하자. 내가 집에서 볼 테니까”라고 말한다. 뜬금없이 사장 차를 가로 막고, 그 긴 시간 방송 강령을 읊어대는 동안 회사 측 보디가드들은 그를 곱게 붙들고만 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의도가 느껴지는 이 허술한 장면도 그렇지만, ‘나쁜 놈들’로 그려지는 경영진 가운데서도 사장만이 정의롭게 그려지는 이유를 추정해보면 더 실소가 나온다. MBC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보도했을 때 당시 사장이 바로 최문순 현 강원도지사이기 때문이다. 최 지사는 MBC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상식을 깨는 초고속 승진으로 사장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사장은 청와대의 외압에 당당히 맞서는 인물로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가 찾아와 방송이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지적하니 “치우치다니요. 저희 방송은 공정성이 모토입니다.”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제보자'의 진영논리, 정치성, 이 영화가 왜곡한 것
'제보자'가 서두와 말미에 영화가 허구임을 강조했지만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대목 때문이다. 영화는 마치 보수정권이 진실보도를 지키려는 방송사와 윤 PD를 압박하는 것처럼 그렸다. “청와대는 이쯤에서 모든 게 정리되길 바라십니다.(청와대 관계자)” “정치적 외압으로 비춰지면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사장)” “윤민철 PD인가요? 그 친구 대학시절 총학생회 출신이더군요. 노조위원장 출신 국장에, 앞에 계신 사장님까지. 아주 코드가 잘 맞는 조합이네요. 한쪽으로 치우친 방송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청와대 관계자)” “치우치다니요. 저희 방송은 공정성이 모토입니다.(사장)” “우리한테도 NBS(현실의 MBC)에 대한 몇 가지 일급 정보가 있어요.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알다시피 황우석 사태가 발생했던 당시 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실제 인물을 따다 그렸다면 당연히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외압을 그렸어야 했다. 그런데 유독 청와대의 외압 부분은 ‘보수정권의 언론탄압’으로 가공했다. '제보자'의 인물과 사건 모델은 노무현 시절 이야기인데 당시 배경인 청와대만은 보수정권으로 그렸다? 거기엔 아무 의도도 없다? 지나가는 소도 웃을 얘기 아닌가.
'제보자'는 박해일이 분한 윤민철 PD의 실제 모델인 한학수를 비롯해 MBC PD들을 미화하는 데 목표를 둔 영화라는 게 합리적인 분석일 것이다. 상업적 흥행을 목표로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영화적 만듦새보다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는데 더 주력한 영화다. 네이버 영화 검색 시 등장하는 네티즌 리뷰처럼 이 영화는 황우석 박사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당시 국민적 충격을 준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통해 사회부조리를 조망하겠다는 의도라던가 영화적 재미에 목표를 둔 것으로도 보기 어렵다. 다만 방송사 윤민철 PD와 그 팀의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그러면서 허구임을 내세워 사실을 왜곡하고 이미지를 조작하여 ‘보수정권의 언론탄압’을 부각시킨 정파색 물씬 나는 질 낮은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임순례씨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자막에서 “법률 자문 박경신”이란 대목을 발견하는 순간엔 ‘아하’ 하고 고개까지 절로 끄덕여진다. 영화 마지막 부분, 다음의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걸 말해 준다. “PD가 없는 말 지어낸 건 아닐 거 아녀. 내가 딴 프로는 몰라도 'PD추적' 이 프로그램은 정말 믿고 보는 프로여. 정치하는 놈들 개구라 치는 거 다 여기서 까발린 거 아녀. 개놈새끼들. 대한민국이 이래 같고 이게 나라여 이게.” 유치한 영화 '제보자'가 한편으로 역겹게 다가오는 이유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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