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온 우주’ 발언은 국내에서만 15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 ‘연금술사’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청와대가 19일 공식 해명했다.
최근 언론은 박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한 발언을 두고 ‘샤머니즘을 추종한다’고 몰아세웠다. 언론은 이 발언에 더해 오낭방, 혼, 굿, 사이비종교 등의 이미지를 덧씌워 대통령의 정신이 의심스럽다며 날을 세웠다.
국민정서에 비춰 ‘샤머니즘 신봉자’라는 이미지는 어떠한 부정부패보다도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 치명적이었다. 실제 야권은 공식 논평 때마다 ‘샤머니즘 대통령’이라고 꼬리표를 달고 맹비난 했다. 인터넷과 SNS, 촛불집회 현장에는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문제삼는 패러디가 쏟아졌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온 우주...’라는 표현을 자막으로 넣으며 풍자에 열을 올렸다.
브라질 순방 때 브라질 작가 인용한 ‘덕담’으로 밝혀져
청와대는 뒤늦게 박 대통령의 발언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서 인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새로 개설한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5년 4월 25일 브라질 순방 중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포럼’ 인사말에서 브라질의 문호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면서 발언 내용을 소개했다.
“양국의 경제인 여러분, 브라질의 문호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라는 소설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미래를 함께 할 진실된 아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청와대는 “순방 열흘 후 쯤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서도 박 대통령은 어린이들의 꿈과 노력을 강조하며 이 문구를 또 한번 인용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결국 언론과 야당 정치인들은 박 대통령 특유의 세심한 외교적 수사와 문학 속 글귀를 인용해 어린이들에게 전한 덕담까지 왜곡보도와 공작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언론과 정치권을 비판했다.
실제 박 대통령의 인용구는 '연금술사'의 핵심 메시지다. 문학동네 출판사는 책 띠지에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문장을 대표 문장으로 뽑아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언론은 왜 그랬을까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언론은 정말 이러한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을까. 결론적으로 언론은 ‘온 우주’ 발언이 브라질 순방 때 이미 나왔다는 사실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의 ‘온 우주’ 발언을 문제삼은 최초의 기사는 10월 21일자 조선일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다.
조선일보는 ‘靑 "대통령 연설문 崔씨가 고쳤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제하의 기사에서 연설문 수정 의혹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전하며 “정치권에선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2015년 어린이날 행사)와 같은 발언을 예로 들며 "대통령 연설문 단어로는 쉽게 생각하기 힘든 말이었다"고 했다.”고 썼다.
이후 언론들은 ‘온 우주’ 발언을 최순실 씨의 연설문 개입을 증명하는 사례로 기정사실화했다. 언론들은 그런 발언이 있었다는 것, 조금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만으로 대통령의 ‘온 우주’ 발언을 ‘샤머니즘 신봉자’로 몰아 붙이는 증거로 활용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는 우리나라 주류 언론의 보도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연금술사' 핵심 메시지, 우린 정말 몰랐을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발언을 샤머니즘으로 몰아간 기자들은 대부분 ‘연금술사’라는 책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기자들은 고의로 발언의 출처를 알고도 감추려한 것이 아니라면, ‘샤머니즘 대통령’ 프레임에 갖혀 이성이 마비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연금술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연금술사’는 문학동네가 2001년 출간한 이후 3년만인 2004년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150만 부 이상 판매돼, 문학동네 역대 최고 판매량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로마인이야기 1권(전 15권, 한길사)’ 80만 부, △‘나무(열린책들)’ 130만 부를 능가하고 △‘해리포터 1권(전 7권, 문학수첩)’ 220만 부 보다 적은 수준이다.
특히,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세계 170여 개국 81개 언어로 저서가 번역돼 총 2억10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국내에서도 최근 10년간 작가별 누적판매 순위에서 8위를 기록했다.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분’, ‘오 자히르’ 등 여러 저서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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