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표결 직전까지 쓰나미처럼 몰아치던 언론과 정치권의 여성비하에 질려버린 듯 침묵해오던 여성들이 강력한 탄핵역풍을 몰고 올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탄핵 표결 직전인 9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여성은 77%로 80%에도 미치지 못했다. 찬성이 86%에 이른 남성들에 비해 10%p 가까이 낮았다. 또한 ‘탄핵에 반대한다’는 여성은 16%로 남성 11%에 비해 5%p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탄핵에 대한 의견을 거부한 비율도 여성 7%로 남성 3%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는 점이다. 반면 국정지지도에 관한 다른 질문에서는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응답한 여성이 4%로 남성 5%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즉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에서는 남녀 간 유의미한 오차가 없었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에 대해선 남성들과 다르지 않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탄핵만큼은 부정적(16%)이거나 입장을 유보(7%)한 여성이 25% 가량 된다는 의미다.
같은 여성이자 중장년 세대로서 박근혜 대통령에 강한 유대감을 갖는 주부들의 탄핵 반대 여론도 눈에 띈다. 가정주부는 탄핵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24%에 달해 모든 직업군 중에 가장 높았다. 응답을 거절한 비율도 9%나 됐다. 가정주부의 30% 이상이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탄핵 역풍이 분다면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대통령 탄핵을 위해 언론이 막판까지 홍수처럼 쏟아냈던 수많은 여성비하적 보도가 허위로 드러날 경우, 탄핵에 찬성하지 않은 25%의 여성들은 물론 마지못해 동조하던 여성들까지 엄청난 폭발력으로 탄핵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은 탄핵 전날인 8일 ‘정규재TV’에서 탄핵 정국을 이끈 대한민국의 언론보도를 “독신여성을 향한 집단 광기이자 성희롱”이라고 평가했다. 정 주필은 이날 방송에서 “저는 최근의 (수 많은 여성 비하적)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왜 언론과 국민들이 세월호 7시간에 그토록 집요하게 의혹을 제기했는지 이해가 됐다”며 “저 청와대 안에 있는 독신 대통령에게 뭔가 스캔들이 있을 것이다,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스캔들 비슷한 것으로 엮어 보고 싶어 아주 안달이 났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주필은 “이것은 섹슈얼 허레스먼트(sexual harassment, 성희롱) 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동안 수 없이 제기된 청와대 내 정윤회 밀회설, 굿판설, 차은택 출입설, 성형수술 설 등이 모두 깨끗이 해명되었음에도 끝내 ‘머리손질 20분’을 두고 집중포화를 해 댄 언론들을 언급하면서 정 주필은 할 말을 잃는 모습이었다.
실제, 언론이 쏟아낸 여성 비하적 보도는 모두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탄핵 직전 한겨레의 6일자 기사 ‘[단독] 박 대통령, 세월호 가라앉을때 ‘올림머리’ 하느라 90분 날렸다’로 시작된 머리손질 비난 기사가 대표적이다. 네이버 뉴스에서 ‘세월호 올림머리’를 검색하면 500여 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청와대가 머리손질에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어느 언론도 진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다.
그 밖에 우선 거짓으로 밝혀진 의혹만 해도 미용비용 2000억원, 청와대에 침대가 3개, 뒷목에 ‘리프팅테이프’ 부착, ‘최태민 목사=한국의 라스푸틴’ 미국 문서, 최순실 무당, ‘8선녀’ 명단 존재, 병원서 ‘길라임’ 가명 의도적 사용, 프로포폴 중독, 청와대서 성형시술, 세월호참사 당일 청와대 굿판 등 10개에 달한다. 이는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해명을 해서 사실관계가 모두 정리된 사안들이거나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나 당사자가 허위보도를 시인한 사안들이다.
그 밖에도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제기한 섹스 비디오 의혹부터, 김정일·최태민·정윤회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음해, 사이비종교 신봉, 세월호 인신공양, 청와대서 천도제, 최순실 허위 임신, 프티성형 시술, 최순실 성형외과 특혜, 최순실 점괴 전달, 최순실 사우나모임 등이 주류언론의 정치지면에 오르내렸다.
독신여성을 향한 집단적인 관음증을 드러내는 동시에 점(占), 무당, 사이비종교, 성형 등 중장년 여성에 대한 저급한 오해와 편견이 총 동원된 셈이다.
여성신학회 회장을 지낸 최영실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이 사건은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거나 중요한 직무를 맡을 때마다 큰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논단’ 사건은 결코 ‘여성 혐오’의 문제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언론과 국민들 앞에선 허공에 메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