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출범 20주년을 맞았던 2008년 11월 모처에서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당시 언론노조위원장이던 최 모씨는 이런 말들을 남겼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한발 한발 쉼없이 걸어왔다.”, “그러나 언론노조의 깃발이 서고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언론자유, 언론독립은 가장 뜨거운 구호로 머물고 있다.”, “20년 전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노동자, 농민, 시민, 학생들의 희생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다시는 정권과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한 만큼 20년 전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감사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에 언론노조가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지 않고 언론 독립을 수호하겠다고 다짐하는 차원의 얘기였다. 그런 언론노조가 출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각오를 지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JTBC의 DMZ 상업광고 무단촬영 사건에 언론노조가 별 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는 태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JTBC는 올해 초 3월 비무장지대(DMZ)의 자연환경을 창사 기획 특집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겠다며 국방부 허가를 받아놓고 몰래 특정 기업 자동차 광고를 제작해 물의를 빚었다. DMZ에는 최고의 군사보안 시설이 밀집해있는 곳으로 기본적으로 상업광고를 찍을 수 없다. 꼭 필요한 일이 있다면 국방부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국방부는 올해 5월 JTBC가 약속과 다르게 협찬사의 자동차 광고를 찍은 정황을 파악했다. 국방부는 촬영을 중단시키고 ‘영상을 광고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했고, JTBC는 서약서를 써줬다고 한다. 그런데도 JTBC는 6월 DMZ 영상이 포함된 자동차 광고 영상을 방영하겠다고 요청했고 국방부가 거절했는데도 이 광고가 일부 극장에서 방영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SBS가 16일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금도 넘은 JTBC 행태, 언론노조에도 책임
논란이 거세지자 JTBC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인사조치를 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마치 자신들은 이 사건의 전후 사정을 잘 몰랐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하지만 해명을 진실로 믿기 찜찜한 구석이 있다. JTBC 제작진은 국방부와 의견조율을 최종 순간까지 계속해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허가 없이 방영될 경우 군사시설보호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위법소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국방부가 허가해주지 않았지만 혹시 ‘될 대로 되라’식으로 밀어붙인 것은 아닌가? JTBC에게 12억 원의 광고협찬금을 지불한 광고주인 그 기업은 “광고 촬영에 대해 JTBC가 군의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상영했다”고 해명했다. JTBC가 광고주에게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가질만한 얘기다. 결과적으로 JTBC는 국방부와 광고주 모두에 사기 친 꼴이 됐다.
JTBC가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데도 광고주를 위해 무단으로 촬영한 이 사건에 군 당국 관계자 등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JTBC가 국가안보보다 자기들의 이익을 더 우선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사건에 언론노조가 가장 분개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야말로 언론이 자본의 노예가 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협찬금 때문이라도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대한민국 신뢰도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하는 JTBC가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처리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극단으로 비유해서 JTBC는 ‘돈이라면 나라도 팔아먹겠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사건으로 JTBC가 과거부터 금도를 넘는 행위를 자주 반복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녹음파일을 비정상적으로 가로챘던 사건, 비록 무죄를 받기는 했지만 지상파 공동 출구조사를 JTBC가 사용한 사건 등 모두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JTBC가 넘은 것들이었다. 태블릿PC로 상징되는 탄핵보도에서 온갖 왜곡 허위보도는 말할 것도 없다. 사드 오역 등 외신을 왜곡하여 보도해 국민을 기만한 사건도 여러 차례였다. 언론노조는 JTBC를 찬양만 할 게 아니라 이번 사건 정도는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정권과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한 언론노조 약속 중 최소한 한 가지라도 진심이었다고 믿어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국방부에도 한 마디 하고 싶다. 국방부는 당초 보안훈령 위반과 군사시설보호법,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JTBC에 법적 대응을 검토했다가 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만일 TV조선이 똑같은 일을 벌였더라도 그랬겠나. 국방부를 상대로 사기극에 가까운 일을 벌인 JTBC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