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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칸하나다] ‘표현의 부자유전’이야말로 ‘일본 혐오’ 바로 그 자체다

‘반일’ 소녀상 문제에 가려 언급되지 않았던 또다른 ‘반일’ 천황 초상 소각 영상 문제...“표현의 자유가 만능은 아냐”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게칸하나다(月刊Hanada)’의 인터넷판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19년 10월 8일자로 게재된 ‘표현의 부자유전’이야말로 ‘일본 혐오’ 바로 그 자체다(「表現の不自由展」はヘイトそのものだ)를 ‘게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본 칼럼은 ‘게칸하나다’ 2019년 10월호에도 게재됐다. (번역 : 황호민)





[필자소개] 이 글의 필자인 가도타 류쇼(門田隆将)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1958년 고치(高知) 현 출생. 주오(中央)대 법학부 졸업 후, 신쵸샤(新潮社)에 입사. 슈칸신쵸(週刊新潮) 출판사 편집부에 배속되어 기자, 데스크, 차장, 부부장을 거쳐, 2008년 4월에 독립했다. ’이 생명, 의에 바친다 - 대만을 구출한 육군 중장 네모토 히로시의 기적(この命、義に捧ぐ―台湾を救った陸軍中将根本博の奇跡)’(슈에이샤(集英社), 후에 가도카와문고(角川文庫)에서 출판)에서 제19회 야마모토 시치헤이상(山本七平賞)을 수상했다. 근저(近著 )로는 ‘오움 사형수  영혼의 편력 - 이노우에 요시히로 모든 죄는 자신에 있다(オウム死刑囚 魂の遍歴―井上嘉浩 すべての罪はわが身にあり)’(PHP 연구소), ‘신문이라는 병(新聞という病)’(산케이신문 출판)이 있다. 공식 사이트 → http://www.kadotaryusho.com 



‘표현의 부자유전’ 최초의 실제 체험 보고서! ‘게칸하나다(月刊Hanada)2019년 10월호에 게재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가도타 류쇼(門田隆将) 씨의 ‘르포’를 특별히 전문(全文)을 공개한다. 오늘(2019년 10월 8일) 오후 ‘표현의 부자유전•그후(表現の不自由展・その後)’가 재개되었지만, 가도타 류쇼 씨의 르포는 8월 3일, 즉 전시가 중단되기 전날의 모습을 그린 드문 체험기이다.


8월 3일 오전 11시, 나는 나고야(名古屋) 시 히가시(東) 구에 있는 아이치(愛知) 예술문화센터 빌딩 10층에 있는 아이치 현 미술관 매표소에 줄을 섰었다.

이날 나고야는 최고기온 34.8도를 기록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아침부터 온도계의 눈금이 상승했다. 땀이 끈적끈적하게 목에 달라붙는 전형적인 열파(熱暑)의 하루였다.

넓은 아트리움 공간은 냉방 효과가 그다지 없었고, 그래서 땀이 번지는 가운데 매표소에는 200여 명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창구에는 직원이 두 명 밖에 없었다. 느려터진 매표 방법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은 길어져 갔다. 창구직원 두 명 중에 결국 한 명이 사라지고 한 명만 남았다. 심각한 서비스 정신의 부족에 나는 곁에 있었던 직원에게 “긴 대기열이 보이지 않습니까? 왜 매표소에 한 명 뿐입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원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이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같은 말을 이 입구에서 다른 직원에게 세 번이나 해야 했다.

게다가 표를 겨우 구입하고 안에 들어가서도 ‘순로(順路, 관람순서)’ 안내가 없다. 어쩔 줄을 몰랐기 때문에 왼쪽으로 걸어가니 “순로는 저쪽입니다”라고 직원에 주의를 받았다. 순로를 가리키는 표시도 보여주지 않은 채 “순로는 저쪽입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직원. 이렇게 관람자를 바보로 취급하는 예술제도 드물다. (아, 아마 현의 직원일 것이다.)

나는 관람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에 “공무원이라면 아마 딱 그 정도겠지”라고 멋대로 해석했다. 직원의 낮은 수준, 그것이 이 예술제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SNS 투고 금지라는 모순

예술제의 주제는 ‘정(情)의 시대’다. 팸플릿에는 “’정(情)의 시대’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에는 분명 우리의 습관적인 지각을 흔드는 시점, 예를 들어 동물의 시점, 아이의 시점, 지금•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누군가’의 시점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가 안가는 문장이기는 하지만, 예술제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나는 먼저 10층의 전시를 보았다. 이런 전시회의 작품들은 작가의 의도가 전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명확하게 갈린다.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것인가 싶은 작품도 있고, 바로 마음에 쏙 들어오는 작품도 있었다. 대충 10층의 관람을 끝낸 나는 드디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表現の不自由展・その後, https://censorship.social )’의 전시회장인 8층을 향했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는 일본의 미술관이나 이벤트 등에서 철거되거나 공개 중지가 됐던 작품만을 20점 이상 모은 기획이다. 이미 공개 중지가 된 것들만을 모아서 전시하는 것이니까, ‘아이치 트리엔날레(あいちトリエンナーレ)’에 있어선 당연히 각오를 한 행사인 것이다. 나도 ‘도대체 어떤 것인가’하고 관심이 쏠렸다.

8층에는 길게 줄지어 있는 곳이 있었고 바로 ‘저기’임을 알았다. 가까워지니까 한 직원이 “대기 시간은 한 시간 쯤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설마 한 시간? 그렇게 생각하면서 줄을 섰다.

이미 100명 이상이 줄지어 있어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윽고 30분 정도 지나서 전시회장 입구에 왔다. 의외로 빨랐다.

“전시품에 대한 사진촬영은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SNS(소셜 네트워크)에 이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관람시의 주의사항을 직원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 또, 그런 내용이 쓰여있는 ‘촬영 사진•동영상 SNS 투고 금지’라는 주의사항이 입구 앞에 게시되어 있었다. 

분명히 ‘표현의 부자유전’은 관람하는 측에게는 ‘부자유’가 강제되는 것 같다. 부자유 문제에 대해 호소하는 전시인데 이런 ‘자기모순’을 알지 못하는 점에서 주최자의 수준이 엿보이는 것도 같았다.

쇼와 천황의 얼굴에 손괴
 
입구에는 하얀 커튼이 달려있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폭 2미터도 안되는 좁은 통로에 사람이 가득차 있었다. 좌우의 벽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그것을 사람들이 응시하고 있었다.

앞쪽의 오른쪽에는 갑자기 쇼와 천황의 두개골이 이쪽을 바라보는 판화가 있었다. 처음부터 ‘메시지성’ 전개다.

반대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거기에는 쇼와 천황의 얼굴을 도려낸 작품이 벽에 걸려 있었다. 배경에는 크게 ‘X’가 그려져 있었으며, 정장을 한 쇼와 천황의 얼굴을 손괴한 동판화였다. 제목은 ‘불태워야 할 그림(焼かれるべき絵)’. 제작자의 천황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가 절실히 전해져 왔다.





모두 말없이 보고 있었다.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말을 잃었다. 

그 전방에는 모니터 영상이 있어서 그 앞, 여기서도 또한 ‘무언의 군중(無言の人だかり)’이 있었다.

역시 쇼와 천황이 모티브이다. 쇼와 천황의 초상이 버너로 불타는 장면이 비추어 진다. 기묘한 음악이 흐르고, 뭔가 불쾌한 생각이 솟아 오른다.

점차 불타는 쇼와 천황의 초상화. 전부가 불타고서 드디어 남은 재 찌꺼기가 발로 짓밟힌다. 강렬한 영상이다. 저자의 쇼와 천황에 대한 헤이트(혐오)가 곧바로 전해진다.

어지간히도 쇼와 천황에 대한 혐오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만든 제작자는 엑스터시라도 느꼈던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영상을 바라 보았다. 떠오른 것은 ‘그로테스크’라는 표현이었다.

화면이 바뀌고 한 젊은 일본 여성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내일, 임팔(Imphal, インパール)에 종군 간호사로 떠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라를 위해 애썼다고 칭찬해주세요.”


그런 대사를 그녀는 읊었다. 그러나 임팔 작전은 1944년 3월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급도 없이 2,000미터 급의 아라칸(Arakan, アラカン) 산맥을 답파하는 가혹한 작전이었다. 애초에 간호사는 도저히 동행할 수도 없었다.

내가 저서 ‘태평양 전쟁 마지막 증언(太平洋戦争 最後の証言)’ 시리즈 제2부 ‘육군 옥쇄 편(陸軍玉砕編)’을 통해서, 이 작전의 생존자를 직접 취재하여며 기아에 빠져 수만 명의 전사•아사자를 내면서 백골가도(白骨街道)가 된 엄청난 상황을 논픽션으로 썼던 사람이다. 아마 저 영상 작품은 올바른 역사 등은 “부차적”이었던 것인 모양이다.

이윽고 해안의 모래 사장에 드럼통이 놓인 장면이 나오고 그 드럼통이 폭발하고 공중에 날린다. 전혀 의미가 불분명하다.

나의 머리 속에 ‘자기만족’이라는 표현도 떠올랐다. 이런 것을 만들어서 전시할 수 있는 것으로 제작자는 가슴이 후련해지고 아마 자신의 ‘창조력’(?)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취재를 허가해준 노병들, 즉 많은 전우를 잃은 병사들은 이런 것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 것인가, 하는 것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또 평범한 일본인은 이런 것을 보고서 무엇을 느낄까, 하고.

어쨌든 당시 젊은이들은 일본의 미래를 믿고서 자신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우리 후세들이 두 번 다시는 그 참화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 선인들의 무념(無念)을 말로 전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으로 10권 이상의 전쟁 논픽션을 써왔다.

호통이 나온 소녀상 앞

소녀상이 전시되어 있는 곳은 이 작품군의 전방이었다. 통로를 거쳐 넓은 공간에 나오면 거기에는 텐트와 같은 작품이 가운데에 놓여 있고 왼쪽 안쪽에 소녀상이 있었다.

소녀상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 두세요.”


“왜!”


이런 호통이 들렸다. 관람자 한 명이 소녀상 옆의 의자에 앉아 종이봉투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아마 그 봉투를 소녀상에도 씌우려고 한 것 같았다.

그것이 저지됐었던 듯 하다. 소녀상이 있는 바닥에는 “당신도 작품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옆에 앉아보세요. 손으로 만져보세요. 함께 사진도 찍어보세요. 평화에 대한 의지를 전파하기 바랍니다”라는 제작자의 호소가 있기에 그것을 보고서 소녀상 옆 자리에 앉아보려는 사람도 그럭저럭 있는 것 같았다.



“그만하세요”라고 외친 사람은 전시의 안내인인 것 같았다. 관람하는 사람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고, 또 항의가 있으면 그에 대응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수고스러운 일이다. 그 중에는 과격한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일이 이에 대응하는 일은 힘들다.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안내인같은 사람은 셔터도 눌러주고 했었다. 이날, 미술관에서 가장 힘든 ‘업무’에 종사하고 있던 사람은 확실히 이 인물이다.

호통은 즉시 수습되었고 다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 같은 공간이 됐다.

소녀상의 해설문에 적혀있는 ‘성노예’

일본인은 온순하다. 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은 항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보고 있었다. 대신 자꾸 카메라나 스마트폰의 셔터음이 울리고 있었다.

소녀상 자체는 일본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 어차피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이나 세계 각지에 세워진 동상이다. 소녀상 그 옆에는 소형의 소녀상도 전시되어 있었다. 또 그 왼쪽 벽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사진도 걸려있었다.

나는 소녀상에 대한 설명 사항을 읽어 보았다. “1992년 1월 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이하였으며,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서 여기에 평화 기념비를 건립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영어 해설문에는 ‘Sexual Slavery’(성노예)라는 말이 있었다. ‘성노예’의 상징으로서 이 소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확실히 적혀 있었다. 일본의 공식 견해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며, 이러한 설명에는 두 가지 점에서 ‘허위’가 있다.

첫째,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가난한 시대 때문에 매춘을 하게 된 여성들이다. 당시 조선의 신문에 “위안부 모집 월수 삼백 원 이상 직장 후방 〇〇 부대 위안소 상세는 면담” 등의 신문 광고가 있었고, 상병 월급이 약 10원인 시대에 그 ‘30배 이상’의 수익을 보장받아서 모인 여성들이다. 그녀들의 수입은 당시의 군사령관의 급여를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풍족한 수익 측면에 대해서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여기서 그것까지 다루지는 않겠다. 어쨌든 위안소(‘P가게(屋)’라고 불렸다)에는 일본인 여성이 약 40%, 조선인 여성이 약 20%, 나머지는 ..... 라는 식이었고, 어디까지나 그 중심도 일단 일본인 여성이었다. 덧붙여서 일본인 여성으로서 위안부를 자칭한다거나 보상을 요구한 이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물론 기꺼이 위안부가 된 여성은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사연을 갖고, 돈 때문에 위안부 모집에 응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일본인은 그녀들 위안부의 신상을 매우 동정했고, 행복이 적었을 그 인생도 동정했다. 실제로 일본은 대대로 총리가 이 문제로 사죄했고, 재단도 만들었으며, 그런 마음을 담화로 전했다.

아사히와 한국이 빠져있는 허위의 역사

그러나, 아사히신문과 한국에서는 이를 두고 일본군과 일본의 관헌이 억지로 ‘강제연행한 여성들’이라는 식의 ‘허위 역사’를 창작하고 나왔다. 한국은 전세계에 이른바 위안부 동상을 세워서, 일본인을 두고 성노예를 농락한 국민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명예를 계속 더럽히고 있다. 우리 일본인으로서는 이런 허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하물며 “소녀가 성노예로 끌려갔다”라는 추가적인 허구를 한국이 주장하겠다면 그것은 이제 아예 논외다. 그리고 내 눈 앞의 소녀상은 그 ‘허위’를 전세계에 유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제 저 소녀상이 허위의 역사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소녀상의 존재는 확실히 ‘양국의 분단’을 더 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이 계속해서 허구를 고집한다면, 더 이상 양국에 ‘우호’라는 개념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군수공장 등으로 근로동원된 '여자근로정신대'를 위안부와 혼동한 아사히신문의 대형 오보에서 시작된 허구가 이 정도까지 한국인들을 오류에 빠지도록 한 것에 대해서, 나는 양국의 운명에 불행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같은 일본에서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아사히신문에 대해 정말 화가 난다. 또 억울하게 생각한다.



매우 불쾌한 작품군

나는 소녀상 바로 앞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했었다. ‘시대의 초상-멸종 위기종 idiot JAPONICA 원분-(時代の肖像―絶滅危惧種 idiot JAPONICA 円墳―)‘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텐트 같이 생긴 ‘가마쿠라(かまくら)’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외벽의 천정 부분에는 출정병사에 대한 ‘요세가키(寄せ書き, 여럿이서 종이 등에 응원 메시지의 친필을 남기는 것)가 적혀있는 일장기(日の丸, 히노마루)를 붙였다. 

그리고 가마쿠라 주위에는 헌법 9조(이른바 평화헌법)를 지키라고 하는 신문기사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비판 기사, 아베 정권 비난의 문구 등을 스티커로 붙였으며, 바닥에는 미국의 성조기를 깔아놨다.

idiot은 “어리석은”이라는 뜻이고, JAPONICA는 ‘일본 취향’이라고 번역하던가. 어쨌든 “멸종 위기종” “원분(円墳, 둥근 무덤)”이라는 말만 보더라도, 멸종 위기종인 “어리석은” 일본인 또는 일본 취향의 사람들에 대한 ‘무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일장기의 요세가키를 작품의 정점(頂点)에다가 붙인데다가 이러한 제목이기 때문에, 적어도 전사한 선조들에 대한 경멸을 품은 작품인 것으로 내게는 느껴졌다.

어느 작품에서도 ‘반일(反日)’이라는 통일된 테마가 있는 전시였다. 전시회장의 벽에는 ‘표현의 부자유를 둘러싼 연표’도 걸려 있었다. 하지만, ‘표현의 부자유’라고 하면, 으레 ‘차타레 사건(チャタレー事件, 영국의 작가 D • H • 로렌스의 작품 ‘차타레 부인의 사랑’ 번역이 음란문서 배포죄가 논란이 됐던 형사사건)’을 비롯하여, ‘요죠한 후수마노 시타바리 사건(四畳半襖の下張事件, 성적 묘사가있는 문학 작품을 잡지에 게재해 음란 문서 판매죄가 논란이 됐던 형사사건)’, ‘닛카쓰 로망 포르노 사건(日活ロマンポルノ事件, 로망포르노 성인영화와 관련하여 외설 도화 공연진열죄가 논란이 됐던 형사사건)’ 등, 포르노와 헤어를 둘러싸고도 당국과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가 일본에는 존재한다.

나는 이러한 역사는 “왜 무시되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즉, 이 전시는 어디까지나 어떤 정치적인 주장이 목적인 것이지 순수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호소 등은 고려되지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일본인의 세금이 10억 엔이 투입되고 공공 시설에서 열리는 ‘공공의 이벤트’다. 그런 곳에서 일부러 다른 나라가 주장하고 있는 ‘허위의 역사’에 어필을 해보고자 하는 뜻이 무엇일까. 그것을 허용하는 책임자, 즉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아이치 현 지사는 그렇게 ‘바보(愚か者)’인지, 아니면 한국의 주장에 확고히 ‘동조하는 인물’인지, 어느 쪽인가.

나는 오무라같은 사람이 아이치 현 지사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수장을 선택하는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역할이니까 내가 더 이상 이러쿵 저러쿵 할 얘기는 아니다.

나는 시험적으로 한국과 중국에 가서도 같은 짓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세금이 투입된 예술제에서, 몇 대 전 대통령의 초상을 버너로 불태워서 그 재 찌꺼기를 마음껏 짓밟아 본다. 그리고, 그 대통령의 얼굴을 손괴하여서 뜯어낸 동판화를 전시해 본다. 한국인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또한 중국에 가서 중국 공산당의 공금이 지출된 예술제에서 똑같이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버너로 불태운다 ... 어떤 상황이 될지 쉽게 상상이 간다. 제작자는 아마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결코 ‘무제한’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절제’와 ‘상식’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 이슬람 사회에서 만약 그런 짓을 했다면 아마도 생명이 끊어질 것이다. 반대로 나는 “일본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이번 전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국민 통합의 상징인 쇼와 천황이 이렇게까지 폄하되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작품을 보고서 쇼와 천황, 그리고 쇼와 천황의 가족에 그치지 않고, 일본인들 자신의 ‘마음’과 ‘존엄’이 짓밟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즉, 이 전시들은 확실히 일본인 전체에 대한 혐오(헤이트)를 표현한 작품인 것이다.

만약 이것을 “예술이다”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진짜 아티스트들이 그에게 화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다. 그저 치우친 사상을 가진 정치 활동가일 뿐이야”라고.

그 작품들은 쇼와 천황을 혐오하지 않는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단지 ‘불쾌’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적어도, 많은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이런 것들이 ‘예술’일 리가 없다. 내게는 제작자가 일본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터뜨린 것일 뿐인 전시회라고 느껴졌다.

지리멸렬한 오무라 지사

내가 전시회장을 뒤로 한 직후인 오후 5시. 이 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오무라 히데아키•아이치현 지사는,

“테러와 협박과 같은 항의가 있어서 안전한 운영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라고 하면서 갑자기 전시회 중단을 발표했다. 예술제 사무국에 “미술관에 가솔린 휴대캔을 가져간다”고 협박하는 팩스가 날아와서 안전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을 사유로 “중단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개막되어서 불과 사흘. 믿지 못할 전개였다.

전시중단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고 전시를 한 것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협박과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오무라 씨는 아이치 현 지사다. 아이치 현 경찰을 대거 동원 해서라도 “폭력에는 결코 굴하지 않는” 자세를 의연하게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다.

한편으로 나는 “아, 도망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시물을 보면 상식이 있는 어른이라면 이것에 세금을 투입하는 불합리함을 느끼고 비난이 점점 커질 것은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을 눈치챈 오무라 지사는 테러의 위험성을 일부러 강조하고서 자신들을 ‘피해자의 입장’에 세우고 ‘도망(遁走)’을 간 것이다.

그 증거로, 나흘 후에 실제로 팩스를 보낸 바로 그 협박범이 체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무라 지사는 전시의 재개를 거부했던 것이다.



예술제 실행위원장 대리인인 나고야 시의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시장은 이 전시에 대해서 잘 몰랐었고, 당황한 속에서 관람을 한 후에,

“소녀상 설치는 한국 측의 입장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입장과 분명히 다르다. 그냥 중단한다고 하면 해결, 그런 문제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오무라 지사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에 대해 오무라 지사는,

"(가와무라 씨의) 발언은 헌법 위반 혐의가 매우 짙다. 헌법 21조에는 ‘집회, 결사 및 언론, 출판 기타 일체의 표현의 자유는, 이것을 보장한다. 검열은, 이것을 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다. 공권력이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공권력을 행사하시는 분이, 이 내용은 좋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헌법 21조에서 말하는 검열이라고 봐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을 자각하시는 것이 좋다.”


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헌법 12조에는 ‘표현의 자유’ 등의 헌법상의 권리는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항상 공공의 복지를 위해 이를 이용하는데 있어 책임을 진다”고 적혀 있다. 표현의 자유를 마치 ‘무제한’인 것처럼 믿고 있는 오무라 지사의 인식부족이 분명했다.

진실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

또 하나의 문제점은 보도 방식이다. 산케이신문과 후지TV를 제외한 언론은 오직 소녀상에 대해서만 보도하고쇼와 천황의 초상화 소각 문제나, 얼굴의 손괴 등의 혐오 작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표현의 자유가 압살되는 일본’이라는 보도 프레임에 집중했던 것이다.

만약 전시 중단이 당연할 정도로 작품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면 애초 자신들의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소녀상의 문제로만 왜소화하고서 얼마나 일본에서 '표현의 자유'가 바람 앞의 등불인가, 하는 식의 보도 방식에만 철저했던 것이다.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 전개에 적당한 것만을 채택하는 것은 일본 언론의 특징이다.

8월 4일 아사히신문의 텐세이진고(天声人語, 아사히신문의 간판 칼럼)에서는 “75일 동안 공개될 예정이었는데, 불과 3일로 끝난 것은 너무 안타깝다 ▼ 어떨 때는 관헌에 의한 검열이나 비판, 어떨 때는 항의와 협박. 표현의 자유는 어이없이 후퇴해 버린다. 가치관의 차이를 실감시키고 그렇게 논의를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은 우리가 지금 무엇보다 소중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8월 6일자 기사에서도 ‘표현의 부자유전 정치인 중지 요청 헌법 21조 위반일 수도 있다고 응수(表現の不自由展 政治家中止要請 憲法21条違反か 応酬)', ‘나가타쵸(永田町, 정치권)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 ‘정부 만세 밖에 말할 수 없게 된다’(永田町からも危惧する声「政府万歳しか出せなくなる」)’고 하면서, 전시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은 채 오무라 지사를 전면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재빨리 작품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전해져서 예술 감독을 맡은 쓰다 다이스케(津田大介) 씨와 기획 어드버이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씨가 쇼와 천황의 초상을 소각하는 작품이 전시되는 것에 대해 웃으면서 말하는 영상 등, 다양한 정보가 차차 밝혀졌다.

이번에도 신문과 테레비만 보는 층과 인터넷을 보는 층의 현저한 정보량의 괴리가 드러났다. 지금 일본은 정보 면에서 완전히 ‘이분화’가 되어 있다.

인터넷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언론이 숨기는 정보조차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편향된 주장을 가진 언론에 쉽게 유도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서 크고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예술이다”라는 주장만 하면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것인가, 매우 편향된 정치 주장에 의한 혐오 행위도 전부 인정되는 것인가, 라고 하는 매우 단순한 문제가 다뤄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에 대한 비판은 ‘혐오(헤이트)’, 일본을 깎아 내리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곡해된 언론 논리에 국민이 “N0” 쪽에 ㅅ 손을 든 일이기도 했다.

일부 반일(反日), 반황실(反皇室), 친한(親韓) 세력에 의한, 공공 예술제 탈피라고도 말할 수 있는 행위는 이렇게 도중에 좌절됐다. 그리고 일본 언론의 ‘있을 수 없는 모습’도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일본인은 일본의 ‘내부의 적(内なる敵)’인 언론과, 특이한 주장을 전개하는 일부 정치 세력에 대한 ‘경계’와 ‘감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또다시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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