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항소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4-2형사부)에 새로 부임한 전연숙 재판장(부장판사)이 이미징 파일과 관련한 전임 재판부의 결정 과정을 문제 삼았다. 다만 태블릿의 실사용자로 검찰과 계약서를 위조하고 위증을 한 정황이 있는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증인신문은 받아들였다. 신임 재판부의 공정한 재판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미징파일 딴지걸기
신임 전연숙 재판장은 8일 오후 2시 30분 열린 제10차 공판에서 “검찰에서 현출한 태블릿 이미징파일에 대한 열람등사를 허가하라고 했던 전임 재판부의 결정은 위법하다”며 절차를 문제삼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는 검찰에게 새 재판부가 활로(活路)를 터 주는 듯한 발언이었다.
태블릿 이미징파일은 2개가 있다. 2016년 10월 검찰이 현출한 이미징파일과 2017년 11월 국과수가 현출한 이미징 파일이다. 전임 재판부는 이 중 검찰 현출 이미징파일에 대해선 ‘피고인들에게 열람복사를 허가하여야 한다’는 결정(2020초기2142)을 지난해 8월 내렸다. 피고인들은 이를 근거로 검찰에 이미징파일 열람복사 신청을 했지만 검찰은 현재까지 반년 넘게 재판부 결정에 불복하고 있다. 나아가 ‘이미징파일 5개 파티션 중 4개가 사라졌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고 버티는 상황이다.
재판장은 이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검찰에서 보관 중인 이미징파일에 대해서는 우선 검찰에 열람복사 신청을 해야하고, 이를 검찰이 거부하면 다시 재판부에 문서제출명령을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면서 “하지만 피고인들은 검찰을 거치지 않고 재판부에 바로 문서제출명령을 했기 때문에, 이를 허가했던 전임재판부의 결정은 위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절차상 위반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 재판부 3명이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이들 중 2명의 판사는 현재도 재판부에 남아 있다. 또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신청에 대해서 검찰에게까지 의견을 물었는데 김민정 공판검사도 역시 절차를 문제 삼지 않고 열람복사 허가에 동의하는 의견을 회신했던 바 있다. 이 같은 결정 과정에는 법원과 검찰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셈이다.
또 신임 재판부가 이제와 절차를 문제를 삼기 이전에 무려 7개월간 검찰은 재판부의 결정을 무시하며 열람복사를 거부했다. 신임 재판부가 심각한 검찰의 법 위반은 문제삼지 않고 피고인들의 사소한 절차위반만을 문제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연숙 재판장은 국과수 현출 이미징파일도 문제 삼았다. 전임 재판부는 검찰이 검찰 현출 이미징파일 제공을 요지부동으로 거부하자 재판부가 직접 국과수 현출 이미징파일을 받아주겠다고 구두 서약했다. 이 서약을 전제로 피고인들은 국과수 심규선 연구관에 대한 증인신문 진행에 동의했다.
결론적으로 전임 재판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났으며, 지난 2월 재판장이 바뀌어 새 재판부가 구성된 상황. 신임 전연숙 재판장은 “(국과수 현출 이미징파일에 대한) 1월 29일자 문서제출명령 신청서는 형식상 문서제출명령이나 내용상으론 열람복사 신청서”라며 “형식에 맞지 않으므로 기각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동환 변호사는 “전임 재판부의 문서제출명령을 철회하시는 겁니까”라고 반복해서 물었지만, 재판장은 답변 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명령을 철회한다면 이는 즉각적인 기피신청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전임 재판부의 구두 서약은 녹취파일에 남아 있으며, 또한 심규선 증인신문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곧 이와 관련된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피고인 측 입장에서 검찰과 국과수가 각기 현출해, 현재 모두 검찰청에 보관 중인 태블릿 이미징파일은 ‘실질적 무기 대등의 원칙’에 있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전임 재판부도 피고인들이 밝혀낸 태블릿 조작 증거와 불법 포렌식 증언 등을 확인하고 이미징파일 필요성에 동의해 내린 결정이다. 신임 재판부의 이미징파일 딴지걸기에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김한수 증인신문 허가
전연숙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신청한 사실조회와 증인 목록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중복되는 것과 필요성 등을 변호인에게 물었다. 재판장은 이 중 김한수 증인신문은 꼭 필요하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홍성준 검사는 “이 사건은 명예훼손 재판에 불과한데 피고인들은 1심부터 계속 태블릿 감정을 요구하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검찰은 포렌식 보고서와 진술조서 등으로 태블릿 실사용자를 다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한수 증인신문도 왜 필요한지 의문스럽지만 재판부 결정이면 따르겠다”며 “더 불필요한 사실조회와 증인신청을 받아주지 말고 재판을 종결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고인들 입장에서 하나하나의 사실조회 신청과 증인신청은 모두 핵폭탄급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태블릿 감정과 이미징파일 열람복사 역시 검찰 공소장의 핵심 근거를 반박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태블릿은 조작됐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고 유죄를 구형했다. 태블릿 이미징파일을 받아 포렌식을 하면 태블릿 조작 여부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피고인 측은 검찰이 제출한 포렌식 보고서가 진실하지 않다는 증거를 다수 찾아냈다. 검찰의 포렌식 보고서는 검찰이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축소 은폐 조작이 가능하다. 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전 한양대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검찰과 국과수 등 권력기관의 포렌식 보고서는 조작이 만연하다”며 “이미징파일을 받아 피고인이 직접 포렌식을 해야하며 이는 당연한 권리”라고 밝힌 바 있다.
변희재 피고인은 “피고인들은 지난해 5월 하나카드에게 할부매매계약서를 요청하는 사실조회신청서를 제출하며 문서 보관기간이 6월까지므로 신속히 받아달라고 수 차례 강조했다”며 “그러나 재판부가 고의로 늑장을 부린 탓에, 결론적으로 최근 하나카드는 보관기관 도과로 파일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은 “하나카드가 보관 중이던 문서를 제 때 확보했으면 그 즉시 검찰의 계약서 위조를 확인하고 바로 재판을 끝낼 수도 있었을 사안이었다”며 “사실조회만큼은 재판부가 검찰의 눈치를 보지말고 바로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전연숙 재판장은 “그 이외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것 말고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JTBC 변호사의 열람복사 신청
사실, 이날 재판의 첫 장면은 피해자 변호사의 열람복사 신청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태블릿을 조작한 당사자일 수 있는 JTBC 측 변호사(피해자 변호사)가 거의 모든 재판서류에 대해 열람복사를 신청하고 있으며 재판부가 이를 허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전연숙 재판장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재판부가 피해자 변호사의 열람복사 신청을 ‘모두’ 허가했습니까. 변호인은 확인했습니까”라고 질타하듯 물었다.
차기환 변호사는 “재판부께서 ‘전체’를 다 허가하신 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20년이 넘는 제 법조인 경력에 비추어도 ‘너무 많이’ 허가해주고 계신다”며 “JTBC가 태블릿을 가지고 있던 기간 중에 카카오톡 닉네임 ‘선생님’이 생성된 기록도 저희가 확인하고 이를 재판부에 말씀드렸다. 태블릿을 조작한 범인이 JTBC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재판부가 JTBC에 열람복사를 허가하면 피고인들의 방어권이 침해되며 범죄 은닉을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연숙 재판장은 “어떤 취지인지 알겠는데 재판부는 모두 허가하지 않고 선별해서 허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환 변호사는 “그렇다면 JTBC 변호사가 항소심 이후 신청한 열람복사 내역과 재판부의 허가 내역을 저희가 열람복사를 신청하겠다”며 “재판부는 이를 허가해달라. 어떤 것들이 허가됐는지 피고인들이 직접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전연숙 재판장은 변호인의 신청을 허가해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는 않고 다만 “하십시오”라고만 답했다.
홍성준 검사는 “피고인들은 이 재판의 내용과 서류를 다 공개하고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차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당사자”라고 응수했다. 재판장은 “열람복사 허가는 필요한 경우 허가하고 선별해서 결정하겠다. 이건 여기서 넘어가자”며 양측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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