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으로서 아시아에서 수십 년간 살기도 했던 캐나다 출신 작가 조너선 맨소프(Jonathan Manthorpe)의 이 책은 일단 제목을 잘 지었다. 실제로 판다는 귀여운 모습과 함께, 한편으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어 심각한 해를 입힐 수 있다.
중국과 캐나다, 두 나라가 서로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1880년대, 광둥성 주강(珠江) 삼각주(三角洲)에서 주로 광둥어를 사용해왔던 1만 7천여 명의 중국인이 금을 찾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로 건너왔다. 그들은 캐나다 최초의 중국인 커뮤니티인 바커빌(Barkerville)을 만들었다. 몇 년 후엔 1만 5천 여명의 중국인이 캐나다에 도착해서 캐나다 태평양 철도 브리티시컬럼비아 구간에서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당시 신생 국가였던 캐나다의 건립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 유입 규모에 경각심을 느낀 캐나다 당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중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편, 이 기간 동안 수백 명의 중국인 젊은이들이 캐나다군에 자원하여 새로운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1948년이 되어서야 캐나다 시민권을 얻었다.
이와 동시에, 당시 일부 캐나다인들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중국을 발견하고 있었다. 수백 명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영혼을 구하기 위해 중국 본토로 떠났던 것이다. 사회 발전(social improvement)을 위한 행동주의(activism)가 그들의 종교적 믿음 중 일부였다. 선교사와 그들의 자손인 ‘선교사의 아이들(Mish kids)’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가로 인정받는 데 있어서 캐나다 내외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너선 맨소프가 책에서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선교사의 아이들’은 심지어 공산당이 갖고 있는 호전적인 무신론이나 1949년 공산당 집권 이후 선교사들이 투옥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캐나다가 중공을 국가로 인정하는 조치는 당분간 미뤄졌다.
무역의 꿈으로 비극을 합리화하다
역설적이게도 캐나다가 중국을 다시 매력적으로 보게 된 계기는 마오쩌둥이 시도한 대약진운동으로 인한 끔찍한 비극이었다. 그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중국에서 8백만 명에서 4천만 명이 굶어죽었을 때, 오히려 캐나다 정부는 중국이 자국산 밀(wheat)의 큰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중국이 밀 수입비용을 지불할 만큼 충분한 외화를 보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국에 차관을 빌려주기로 동의했다. 수천 년의 문명을 지녔다는 중국을 믿고서 한 도박이었다. (‘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한국어판 148페이지)
한편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과 연줄이 있는 중국계 캐나다인 폴 린(Paul Lin)은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변호하는 중개자 역할을 맡았다.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거주했던 이 평론가는 중공이 저질렀던 참혹한 문화대혁명을 합리화했었는데, 그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중국을 두고 전속력으로 돌진했던 기차에 비유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돌진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마오쩌둥이 열차를 다시 돌리기 위해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평론가들은 마오쩌둥이 한 짓이야말로 기차를 탈선시키는 짓이었다고 지적했지만, 오히려 폴 린의 주장을 믿었던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충격을 줬다.
서로 다른 가치와 기대
문화대혁명이 진행 중이던 1970년,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피에르 트뤼도 총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논리는 “중국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다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외교적 설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체제를 갖추어갈 것”이었다. (‘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한국어판 170페이지)
조너선 맨소프가 지적했듯이, 캐나다와 중공이 양국 관계에서 서로 상당히 다른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공은 미래를 향한 문을 열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캐나다가 서방 국가들 중에서 외교 관계를 모색하기에 가장 적합한 국가라고 판단했다. 즉, 캐나다가 다른 서방 선진국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위한 길을 닦을 ‘소프트 타깃(soft target)’이라는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캐나다에 있어 중공과의 외교관계 수립은 계획만큼 성공하지 못한 과거 중국 대상 선교의 향수를 느끼는 창구였다. 캐나다는 중국 공산당에 정치사회 개혁을 압박하고 인권상황을 개선시킬 도덕적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중공을 비즈니스적 관점으로만 접근했다. 무역을 통해 중공의 경제가 성장하고 시간이 흐르면 법치에서 비롯된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중산층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캐나다를 팔다
폴 린은 캐나다-중국 비즈니스 위원회(Canada China Business Council)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파워 코퍼레이션(Power Corporation)’의 설립자인 폴 데스머라이스(Paul Desmarais)를 중공의 거대 국영기업인 CITIC 중신그룹(China International Trust Investment Corporation, 이하 CITIC)의 관계자들에게 소개했다. 폴 데스머라이스는 파워코퍼레이션의 지분 50%를 CITIC에 팔겠다고 제안했고, 신속하게 실행했다.
폴 데스머라이스는 성공한 사업가일 뿐만 아니라 당시 총리였던 피에르 트뤼도의 고문이기도 했다.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정계에서 은퇴한 후에 파워코퍼레이션의 고문으로 일했다.
폴 린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부패한 관료라고 알려진 리펑(Li Peng)에게 폴 데스머라이스를 소개했다. 리펑은 미술품 소장에 관심이 많았던 폴 데스머라이스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리펑은 추후 천안문 대학살을 통해 ‘베이징의 도살자(Butcher of Beijing)’라는 악명을 얻은 사람이다.
조너선 맨소프의 말을 빌리자면, 낭만이 현실을 만나면서 가혹한 현실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부패와 스파이 활동
1980년대에 베이징 주재 캐나다 대사관은 양국 관계가 악화되자 중공의 캐나다내 스파이 행위에 대해 경고를 했다. 캐나다 경제위원회(Canadian Economic Council)의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에는 투자 자금이 풍부하여 해외로부터 자금이 유입될 필요가 없음이 확인됐는데도, 투자금을 유치하겠다는 명목으로 투자이민 정책이 고안되었고, 이는 즉시 변질됐다.
부패세력은 불법으로 번 돈을 들여올 통로로 투자이민을 이용했고, 시민권을 얻기 위해 허위 서류를 구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50건의 이민법 위반으로 기소된 후 보석으로 풀려난 주요 혐의자 중 한 명이 1991년 호텔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적도 있다. (‘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한국어판 234페이지)
1997년에는 캐나다 안보정보청(CSIS, 미국의 CIA와 같은 기구)과 캐나다 왕립기마경찰대(RCMP, 미국의 FBI와 같은 기구)가 공동으로 작성한 중공의 공작에 대한 비밀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사이드와인더(Sidewinder)’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중공 국가안전부(ChIS)가 전문가와 학생들의 교류를 적극 활용해서 캐나다의 산업에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경제 및 기술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초부터 은행, 부동산, 첨단기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200여 개의 캐나다 기업이 중공의 삼합회와 중국 공산당 산하의 대기업 및 국영기업 등을 통해 중공의 소유가 되거나 그 영향력권 밑으로 들어갔다. 삼합회는 중공 국가안전부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기업들을 이용해서 돈세탁, 마약밀매 등 범죄 활동까지 했다.
중국의 메시지 통제 시도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중공은 ‘인종차별’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관련 내부고발자들은 경력에 타격을 입기가 쉽게 됐다. 조너선 맨소프에 따르면, 중공 정부는 메시지를 통제하려는 노력을 강화했다. 공산당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어 신문들을 새로 사들이거나 창간했다. 저항하던 기자들은 해고되었다.
중공 정부는 ‘NTD TV(New Dynasty TV)’와 ‘에포크타임스(Epoch Times)’의 관계 인사들이 중공 관련 행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고, 캐나다 정치인들도 이에 굴종했다. 이들 매체들은 중국 공산당로부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위험한 종교‘라고 낙인이 찍혀서 금지되어 버린 파룬궁과 연관이 있다.
캐나다의 교육기관들도 중공의 영향을 받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중공 유학생들이 내는 등록과 공자학원을 통해 제공되는 교육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국부(National Riches)를 매각
지난 2012년에 캐나다 캘거리에 본사를 둔 석유가스 회사인 넥센(Nexen)이 중국해양석유공사(CNOOC)에 인수된다고 발표하면서 캐나다 정부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오른팔인 CNOOC가 북해, 멕시코만, 서아프리카, 중동 등지에 넥센의 자산을 소유하게 됐으며, 캐나다 앨버타에 있는 수십억 배럴의 석유도 확보했다.
캐나다 정부는 결국 이 협정을 승인했다. 하지만 추후에는 어느 나라의 국영기업도 캐나다 석유에 대한 지분을 차지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년 후 새 총리는 중공 남부 도시 선전의 ‘하이테라 커뮤니케이션스(Hytera Communications)’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본사를 둔 ‘놀샛인터내셔널(Norsat International)’을 인수하는 것을 승인했다.
화웨이 사건으로 확인된 주권 침해 문제
조너선 맨소프는 최근 멍완저우 CFO가 체포되면서 논란이 된 거대 통신기업 화웨이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중공 정부가 중공 내 캐나다 시민을 대상으로 보복하고 특정 캐나다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면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조너선 맨소프는 중국 공산당이 캐나다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캐나다의 주권에 도전할 정도로까지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중공에 대한 우려가 캐나다의 지속적 의심으로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캐나다가 중공의 세력권으로 흡수되면서 일시적인 소란으로 끝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조너선 맨소프가 확인했듯이 캐나다의 정보기관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반면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지금도 그렇다.
저자는 낙관적인 분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공산당이 자유세계의 개인들을 매수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의 강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인들과 중국 공산당의 사회적 계약이 허물어지면서,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대한 중국 공산당의 우려는 강박관념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권위주의 국가는 외부에서 보기에 난공불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본질적인 취약성을 노출한다. 유리는 그저 잘못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박살이 나며 파편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