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 이쿠히코(秦郁彦) 교수는 위안부 문제 진상규명과 관련해 일본에선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교수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가 ‘피해자’역 김학순 등의 거짓말을 최초로 폭로하며 ‘선발투수’로 나섰다면, 하타 이쿠히코 교수는 ‘가해자’역 요시다 세이지 등의 거짓말을 확정하며 ‘마무리투수’로 나섰다고나 할까.
이번에 미디어워치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된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역작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性’(원제 : 慰安婦と戦場の性)은 원래 일본 신초샤(新潮社)에서 1999년도에 출간된 책으로,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일본내 위안부 문제 논의를 완전히 종결지어버렸다고 평가받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의 최대 핵심 쟁점인 ‘강제연행’설이나 ‘성노예’설과 관련해선 2000년대 이후로 한일 양국 학계에선 더 이상 특별히 새로운 논의도 없는 것이 사실로, 이에 이 책의 내용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마치 ‘신작’의 느낌이 나는 ‘고전’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 한국인들은 과거 일본인들이 그 어떤 사죄로도 지울 수 없는 잘못을 지질러 이에 위안부 문제를 일으켰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실은 위안부 문제는 과거 일본인들만의 그 어떤 근본적인 잘못과 관계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위안부 문제는 오히려 오늘날 일본인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관련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아무런 성찰도 없이, 특히 동북아 국제정치 역학 변화 문제와 맞물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식으로 한국인들에게 일단 덮어놓고 사죄를 하면서부터 ‘폭발’한 문제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진단이다.
위안부 문제는 더구나 당대 20세기 초엔 더더욱 양국간 시비 대상이 아니었다. 태평양전쟁 이전, 일본열도와 함께 일본제국의 일부였던 당시 조선반도는 민간의 매춘 문제와 관련해 공기관도 위생 등 문제로는 관련 일정하게 관여하는 제도인 공창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군용의 위안소 시스템이란 것도 일본이 전쟁에 돌입하면서 병사에 의한 강간과 그에 따른 성병의 만연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당대 공창제 시스템을 전쟁터에도 이를 그저 똑같이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특히 실제 이와 유사한 군용의 위안부 시스템을, 독일, 이탈리아, 미국, 영국, 소련 등 당대 주요 국가들은 물론, 한국도 역시 한국전쟁 전후로 역시 마찬가지로 다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를 과거 일본만의 특수한 문제로 위치 짓기는 분명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공공연했던 일, 또 더구나 수십여 년 전의 일이 오늘날 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주요 갈등 요인으로 대두되어버린 것인가.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부터 중대한 인권 문제로 급부상한 것은 ‘태평양전쟁 시기의 조선인 위안부’는 다른 시기나 다른 국가에서의 사창, 공창의 매춘부와 달리 ‘강제연행’과 ‘성노예’라는 두 가지 엄혹한 특질이 있었다고 잘못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한일 양국 국민에게 통념으로 굳어졌었기 때문이다.
하타 이쿠히코 교수는 본서에서 압도적인 1차 사료들과 관계자 직접 증언들을 제시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런 기존 통념을 부숴버린다. 그는 일본군 등 공권력에 의한 조선 여인에 대한 강제연행은 절대 없었다고 단언한다. 제1장 ‘위안부 문제 ’폭발‘, 그리고 제7장 ’요시다 세이지의 작화‘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대로, 이 강제연행이란 개념은 요시다 세이지라는 전 일본 공산당원이 꾸며내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좌파 세력이 퍼뜨린 ’날조‘가 바로 그 실체라는 것이다. 다른 무엇을 떠나서, 외세의 군대가 쳐들어와 민간에서 버젓이 아녀자들을 조직적으로 납치해갔다는 엄청난 사건과 관련, 당사자 증언을 제외하고는 제3자의 증언, 즉 가족, 친척은 물론이거니와 마을 사람의 신고나 목격담, 하다못해 개인의 일기라도 당대에 제대로 기록된 게 단 한 건도 없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강제연행은 애초 있지 않았던 사건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성노예도 물론 역사적 사실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책 제2장 ’공창제하의 일본‘과 제6장 ‘위안부들의 신상 이야기’, 제12장 ‘ 7개의 쟁점 Q&A’를 읽어보면 우리가 그간 사실로 알았던 옛 위안부의 고생담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 그녀들의 삶은 역시 같은 민간 공창제하 당대 민간 위안부, 매춘부의 삶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오늘날 가치로 족히 수십 억 원의 돈은 벌었을 것으로 보이는 문옥주 씨의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대도 어떻든 그녀들 상당수가 당대 일반 직장인들의 급여를 크게 능가하는 수익을 얻고 있었음은 여러 사료로 확인이 된다. 매춘, 그것도 전쟁터에서의 매춘이었던 만큼 고위험, 고노동, 고수익이라는 자본주의 질서가 여기서도 여지없이 통용됐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이 모집 당시 업자들, 포주들과 난폭하다면 난폭한 계약에는 구속되어 있었던 존재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당대 또는 오늘날 성매매 여성들도 다 마찬가지이고, 어떻든 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노예’의 개념과도 무관하다. 그리고 계약 과정 자체에 범죄가 개입됐음을 증명할 수 없는 한, 그런 민간의 계약 문제 자체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이 책임져야 할 영역의 문제도 애초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의 실체가 애초 ‘강제연행’과 ‘성노예가 아니었다면, 결국 한국이 이 문제로 일본을 추궁해온 명분과 근거는 전혀 박약했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양국의 현실 정치는 이 문제의 실체를 철저히 외면하며 무려 30여 년 이상 한국과 일본 양 국민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반목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하타 이쿠히코 교수는 고노 담화,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아시아여성기금까지, 위안부 문제로 ‘진실규명’은 외면하고 문제의 책임을 온전히 일본의 우익과 과거사에 돌리고, 일본의 우익과 과거사만 제물로 삼으면 양국간 갈등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식 한국과 일본의 ‘반일 종족주의’적 ‘정치 편의주의’의 문제까지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性’은 역사학자가 쓴 책답게 역사 문제를 다루는 대목이 물론 가장 인상적인 책이다. 관련된 2장부터 4장까지는 한창 몰입해서 읽다보면 근현대 일본과 조선으로, 또 당시 일본이 치뤘던 전쟁의 중국 전선과 태평양 전선의 현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실로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은 이라면 과연 그 누가 향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강제연행’과 ‘성노예’이란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렇기에 더욱 아쉽다. 이 책은 세기말 일본에서도 학계와 언론계, 출판계를 중심으로 큰 화제가 됐었던 책인 만큼, 그냥 당연한 출판 상업 논리로도 원서 출간 직후 한국에도 바로 번역 소개되었다면, 그래서 적어도 그때 한국 지성 사회가 이 책을 얄팍하게라도 소화했었다면, 위안부 문제의 거짓이, 정대협(현 정의연)의 전횡이, 2000년대와 2010년대 내내 한국 사회를 이만치나 혼돈으로 몰아넣고 한일관계를 이토록 파탄으로 몰고 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이 책 원서 출간 바로 직전 해에 있었다는 점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지금도 마치 한일관계 개선의 모델처럼 찬양받고 있는 이 선언이 정작 그 직후에도 이런 책의 번역 출간조차 용서하지 못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달리 보면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性’의 뒤늦은 번역 출간은 지난 수십 여 년간 이 나라 학계·언론계·출판계에 고착화되어 있는, ‘일본 우익 사상·사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검열’의 문제를 그 자체로 폭로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문제로 생각이 다를 경우 일단 ‘친일파’로, ‘극우’로 몰아버리고, 그때부터 상대 주장의 근거는 들어보지도 않으며, 진위도 전혀 따져주지 않는, 언제부턴가 이 나라 지성계에 정착된 이 천박한 문화야말로 향후 위안부 문제와 한일관계 문제와 관련한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타 이쿠히코 교수는 일본 군사사의 최고 석학으로 그래서 한국의 군사사 전문가들에게도 ‘전설’로 평가받아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그의 시각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좀체 그의 작품들이 한국에 소개되지 못했다. 이번 책을 필두로 추후 그의 주전공 분야 작품들도 봇물 터지듯 한국에 번역되길 기대해본다.